상처 많은 이들의 힘찬 노랫말, <발자국이 녹기 전에> 서결 작가

웹툰 구독 경력 도합 20년, 웬만한 건 다 본 소채리 두 명이 생각했다. 이 작품 독특하다. 더 알고 싶다! 웹툰작가님, 인터뷰해주세요!

기획1 작가님 만나주세요!ㅣ상처 많은 이들의 힘찬 노랫말, <발자국이 녹기 전에> 서결 작가
기획2 작가님 만나주세요!ㅣ해봐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아기 낳는 만화> 쇼쇼 작가

모순 가득한 세상 속 힘없고 상처 많은 이들의 힘찬 노랫말.
기생(妓生)이란 두 글자만으로 담을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Q. 안녕하세요 서결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6년 8월부터 올해 6월까지 다음 웹툰에서 <발자국이 녹기 전에>를 연재한 서결입니다. 반갑습니다.


<발자국이 녹기 전에> 메인 페이지.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메인 일러스트가 눈에 띈다.

Q. <발자국이 녹기 전에>를 정식 연재 이전부터 봐왔는데, 이렇게 완결까지 함께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웹툰 연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오래전부터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친구들은 연재 전부터 연재가 끝날 때까지 응원을 많이 해줬지만, 부모님은 걱정이 많으셨어요. 여전히 안정적인 직업을 바라시면서도 지금은 옛날보다는 많이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요.

Q. 전공이 웹툰 쪽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전공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물론 아주 두려웠습니다. 제 주변에 웹툰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도 했고요. 그래도 한번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않는 편이라, 연재를 결심하고 나서는 망설이지 않고 열심히 달렸답니다.

Q. <발자국이 녹기 전에>는 사료를 많이 참고해 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조선 시대 배경의 웹툰을 연재하시며 특히 어려웠던 점이 있으신가요?
제가 조선시대에 대해 아는 게 고등학교 교과 과정 외에는 거의 없었다는 게 큰 문제였습니다. 닥치는 대로 자료를 모으고, 벼락치기를 하듯 공부했어요. 저는 궁녀와 의녀의 신분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조차 몰랐답니다! 새로 지식을 쌓을 때마다, 언제 어디서 고증에 실수할지 몰라 연재에 들어가기 두려웠어요.


<발자국이 녹기 전에>를 연재하며 참고하셨다는 자료들. 작가님의 꼼꼼한 노력이 엿보인다.

Q. 문학적인 대사와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이런 대사나 표현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제 웹툰의 대사가 문학적으로 느껴졌다니 영광입니다. 고전 문학을 정말 좋아하는데 여기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Q. 조선시대 기생을 예악에 능통한 문화 예술인으로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이 작중 기생들, 특히 서련방의 행수인 ‘현매’를 통해 잘 나타납니다. 작가님은 조선시대 기생을 어떤 존재라고 정의하시나요?
저는 역사가가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조선시대 기생을 정의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만, <발자국이 녹기 전에>에 등장하는 기생들을 어떻게 설정했는지는 설명해드릴 수 있습니다. <발자국이 녹기 전에>는 조선 후기, 성리학의 발달에 따라 기녀 제도의 존속과 폐지에 관한 논란이 있던 시기를 모티브로 잡은 픽션이기에 조선 전기의 기생보다는 사회적인 지위가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작품 속 ‘서련방’의 기생들은 관에 속해 궁중 악무를 담당하는 전문성을 가진, 비교적 지위가 높은 관기들입니다. 하지만 관기의 매음이 금지되어 있음에도, 권력자의 요구에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 모순의 피해자이기도 하죠. 저는 기생을 시서예•가악무에 능통한 예술인이지만, 결국 남성 주도의 질서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가진 존재로 설정하고 작품을 그려 나갔습니다.


천화각의 행수 연연아. 악역이지만 악역일 수밖에 없는 그녀 역시 사회 모순의 피해자였다.

Q. 작중 서련방을 비롯한 기생들이 억울한 사건을 기점으로 함께 연대하여 맞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련방의 인물과 그 외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신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이디스 워튼의 명언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빛을 퍼뜨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은
촛불이 되거나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서련방을 비롯한 기생들이 연대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면은 처음 작품을 기획할 때만 해도 없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저는 2016년 이후 여러 사건 속에서 여성들이 연대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고, 촛불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빛을 전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리하여 그 빛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Q. 주인공 ‘홍조’의 고향은 나주이며 전라도 사투리가 이따금 튀어나온다는 귀여운 설정이 있는데요. 전라도 사투리를 작중에 넣은 이유가 따로 있나요?
지방 관련된 이야기를 꼭 넣고 싶었습니다. 대기근과 전염병이 성행할 때 도성 사람들보다 지방 사람들이 훨씬 더 큰 피해를 보았다는 사료를 봤거든요. 그 아픔에 대해서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전라도로 정하게 된 이유는, 이 이야기를 만들 당시 제가 조정래 작가님의 <태백산맥>에 빠져 있기도 했고, 제 어머니께서 전라도 출신이시거든요.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북 쪽이셔서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 쓰시더라고요. 그래서 댓글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답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사투리를 쓰지 않는 지역에 살아서 그게 틀린 지도 잘 몰랐어요. 틀린 부분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수정할 생각입니다.


어려운 사투리의 세계지만, 이런 홍조의 모습 역시 작품의 소소한 관전 포인트.

Q. 작가님의 화려한 ‘단짠’ 완급 조절로 늘 설레는 토요일을 보냈습니다. 로맨스 작가로서 겪는 좋은 점이나 고충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장르가 로맨스이다 보니, 주인공 남녀의 로맨스가 드러나지 않는 회차를 그릴 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는 둘의 로맨스 외에도 가족 간의 불화, 기녀들 간의 우정, 군신 간의 신의, 정치적인 갈등, 신분제의 아픔 등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간연재로 그릴 수 있는 분량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로맨스가 빠진 회차를 올리는 주도 있을 수밖에 없었죠. 로맨스를 기대하고 보러 오실 독자님들께 죄송해서 마음이 불편했어요. 하지만 둘의 달콤한 부분을 그릴 땐 그리는 제가 몇 배로 즐겁기도 하고, 좋은 반응도 예상되어서 기분 좋은 한 주를 보낼 수 있었죠.

Q. 정식 연재 이전부터 지금까지, 작품을 연재하시며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매주 재밌고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시던 분들의 닉네임이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자주 보는 닉네임은 외우게 되거든요. 이 자리에서 줄줄 외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69화에서 한이 보고 쿨톤이라고 하신 분 댓글이 너무 재밌었어요. 파란 옷을 입힐 때마다 생각나서 자주 웃었답니다. 또 제 웹툰을 읽다가 한복 만드는 걸 시작하셨다는 분 댓글도 기억나네요.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는 건 참 기쁘고 뿌듯한 일 같아요.


작가님을 웃게 한 쿨톤 댓글. 덕분에 한이의 파란 옷을 자주 보게 된 것일지도.

Q. 저도 일을 많이 벌이는 편이라, 완결 후기에서 ‘이번에는 마음도 몸도 조금 덜 고생할 걸 그리고 싶은데, 자꾸 지옥불로 빠지려 합니다…’란 말이 정말 공감됐습니다. 앞으로의 서결 작가님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 장르를 그려보고 싶어요. 사실 제일 좋아하는 건 시대극인데, 여러 나라의 이야기가 얽힌 대서사시를 그려보고 싶어요. 하지만 시간도 역량도 많이 필요한 일이라, 당장 차기작은 좀 더 가벼운 걸 그려야 할 것 같아요. 언젠가는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걸 맘껏 그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Q. LG소셜챌린저는 20대들로 꾸려진 매체입니다. 꿈과 목표, 가치관 등에 대해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도 아직 20대라서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고민이 많아요. 남들은 벌써 꿈을 이룬 것 같고, 나는 엄두도 못 낼 멋진 목표를 가진 것 같고… 과연 내 가치관이 옳은가? 내 주관에 확신이 없는 것 같아 자괴감도 들고. 이런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올 때면 우울해서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자. 천천히 가자. 나에게는 내 속도가 있으니까. 이런 말을 되뇌며 자신을 도닥입니다. 그러니까 20대 동지분들, 우리 너무 초조해 말아요. 가끔 길을 잃은 것 같이 느껴질 때면, 머리를 식히다가 또 다른 길을 찾기도 하더라고요. 예를 들면, 좋아하는 웹툰을 읽으면서요!

Q.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흑역사가 될 말을 한 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혹시 <발녹전> 독자님들 중 읽고 계신 분이 계신다면, 이 자리에서도 감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독자님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완결까지 달릴 수 있었을까요?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이시라면, 한번 정주행해보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특출난 작품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제가 4년 동안 영혼까지 쏟아 부었다고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대로 보내긴 아쉬워 다시 보는 <발자국이 녹기 전에> 명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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