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재우 | 너와 나 사이의 동네를 꿈꾸며


어떤 사람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 어색함을 풀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나누는 이런저런 대화들, 그중에서는 ‘사는 곳’에 대한 질문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에 대한 답으로 행정구역상 명칭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곤 한다. 만약에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사는 곳 근처에 친한 사람이 있는지, 서로의 비밀을 터놓을 만큼 친하지는 않더라도 마주칠 때마다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있는지, 그리고 그 지역의 역사와 고유한 특징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상대방에게 묻는다면 과연 그는 어떤 반응을 할까?

설재우, 서촌의 이야기꾼

이 물음에 대해 십중팔구는 당황하거나 ‘그런 걸 왜 묻지?’ 하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여기에 그 질문을 반기며 자세하고 재미있게 몇 시간이고 자신이 사는 동네의 이야기를 할 사람이 있다. 서촌의 옥인상점을 운영하며 ‘서촌 지역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설재우 씨다. 서촌은 인왕산과 경복궁 사이, 청운동과 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가리킨다. 태어나서부터 잠시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여행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서촌에서 살아온 그는 책 『서촌방향』으로, 잡지 <서촌라이프>로, 강연으로 서촌과 서촌에 사는 사람에 담긴 정겨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옥인상점 앞의 설재우 씨. 이 둘은 서촌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옥인상점 앞의 설재우 씨. 이 둘은 서촌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기존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을 ‘지역문화콘텐츠 디렉터’라고 소개했다. 지역문화콘텐츠 디렉터라니, 이게 무슨 의미일까.

“그건 제가 만든 말이에요(웃음). 좋은 걸 다 갖다 붙였어요. 문화, 지역, 콘텐츠, 이 셋 중에 가장 중요한 건 콘텐츠라고 생각해요. 웹툰 작가 중에 저 사람은 이렇게 재미있게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상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게 바로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아닐까 싶어요. 자신이 잘 알고 자주 겪는 일에서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고 재미있게 생각할 만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거죠. 동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미처 모르고 지나치는 것을 놓치지 않고 찾아내 유지하고 그것의 이야기를 전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이와 관련해서 서촌과 관계가 있는 예술가를 주목하고 있어요. 서촌을 거쳐 간 예술가가 되게 많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의 개인적 삶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단순히 ‘맛집’, 카페뿐 아니라 문학,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이야기가 동네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그렇다면 그가 현재 운영중인 서촌의 옥인상점도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의 하나일까. 옥인상점의 시작, 이른바 ‘창업 스토리’는 어땠는지 물었다.

“2011년 5월부터 옥인상점을 시작했어요. 시작을 옥인상점으로 한 건 아니에요. 원래 동네의 오래된 오락실이 있던 자리인데, 그만두신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다른 사람이 자리를 이어받으면 기존의 모습이 많이 없어질 것 같아서 제가 할머님께 말씀드려서 자리를 유지하고 있어요. 지금은 나름대로 잘 운영되고 있어요. 손으로 만든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어떨까 싶어서, 여기 지역과 인근에 사는 수제 공예가의 제품을 들여놓고 있어요.”

상점 내부 모습. 여러 매대에 물건이 전시되어 있고, 매장 앞쪽에는 두더지 잡기 오락기도 놓여 있다.
옥인상점의 내부 모습이다. 상점 안 곳곳에 설재우 씨의 서촌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묻어있다.

그의 활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2년에는 서촌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은 『서촌방향』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현재는 동네의 이야기를 전하는 매거진 <서촌라이프>를 발간하고 있다. 서촌을 다양한 모습의 책으로 담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블로그에 열심히 서촌에 관한 이야기를 올렸죠. 지역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보람을 느끼면서 꾸준히 했어요. 그러다 보니 책으로 나오게 된 거고, 그게 『서촌방향』이죠.
<서촌라이프>는 월간지의 형태예요. 사실 『서촌방향』 책보단 많은 어려움이 있죠. 우선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잡지 제작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도 그렇고요.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저 스스로 이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어려움이 크긴 하죠. 최근 언론에서 서촌의 문제가 많이 다뤄졌잖아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지만 지역의 미담, 실제로 사는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도 있거든요. 그걸 계속해서 다루고 싶고,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서촌을 찾는 발걸음이 많아지면서 생긴 여러 현상에 대해 다룬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다. 수많은 기사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다루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이러한 접근도 중요하지만 정작 서촌에서 발붙이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구체적인 생활과 생생한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설재우 씨가 전하는, 서촌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세하고 세세한 이야기는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그는 서촌을 찾는 이들을 대상으로 동네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른바 ‘서촌 가이드’처럼 서촌의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제가 쓴 『서촌방향』과 관련해서 독자 모임 비슷하게 비정기적으로 탐방프로그램을 했어요. 한동안 날씨가 추워서 거의 하지 못했었는데 다시 날이 따뜻해지면서 자주 동네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해요. 프로그램은 좋지만 잘 안 알려진 곳이 있잖아요. 맛집, 예쁜 카페도 물론 좋지만 서촌에서만 볼 수 있는 장소와 풍경을 위주로 돌아다니면서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에요.”

상점 내부에서 찍은 ‘서촌라이프’와 ‘서촌방향’ 책들. 위 사진은 진열된 책들, 아래 사진은 설재우 씨가 서촌라이프 한 권을 들고 촬영한 사진.
주민의 입장에서 서촌에 담긴 이야기를 전하는 책 『서촌방향』과 매거진 <서촌라이프>.

서촌, 나아가 도시와 마을에 대해

사는 곳, 산다는 것과 어디에서 사는지를 담은 말이다. 어떻게 사는지에 따라 ‘곳’이 달라지고 어떤 곳에 사는지에 따라 ‘사는 방식’이 달라진다. 방이 한 개인지 두 개인지, 단독주택인지 아파트인지,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신도시인지 오랜 세월 동안 걸쳐 자연스럽게 생긴 주거단지인지, 새롭게 유입된 사람이 많은지 몇 대째 살아온 사람이 많은지에 따라 사는 방식이 달라지고 반대로 비슷한 집과 동네라고 해도 사는 사람과 그가 사는 방식에 따라 그곳의 모습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도시는 그 자체로 도시민들의 집단기억이고 기억처럼 사물 및 장소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알도 로시Aldo Rossi의 말처럼, 사람과 장소는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설재우 씨는 서촌과 서촌에 사는 사람, 서촌을 찾는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 좋은 쪽으로 나아가게 하고자 항상 고민한다. 고유함을 지켜나가지만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은,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개방적인 장소지만 무질서하고 난잡하지 않은 서촌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소개하는 서촌은 과연 어떤 곳인지 물어보았다.

“서촌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같은 곳이에요. 북촌이라는 동네도 있듯이, 서촌이나 북촌과 같이 방향성을 가진 지명이 기록을 찾아보니 예전부터 쓰던 이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방향성의 기준이 조금 불명확한 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쪽에 있는 동네, 경복궁 서쪽 인왕산의 밑에 있는 동네라서 서촌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간혼 서촌을 ‘세종마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던데, 이 동네에서 세종대왕을 비롯한 많은 왕이 태어났어요. 하지만 아무래도 세종대왕이 많은 존경을 받는 왕이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지명에 쓰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관할 지역자치단체에서 붙인 이름인데, 이 이름은 관광 주도적인 차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동네의 올바른 명칭인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최근 상업화 때문에 서촌에 대한 이야기는 매체 등에서 다양한 시각에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어느 정도 만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

“많은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해결하기에도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일단 가장 중요한 건 급상승한 임대료인 것 같아요. 경제 논리에서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지대가 높아지는 건 어쩔 수 없죠. 그럼에도 그걸 어느 정도 조절하는 정책과 대책이 필요한데 그게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 문제인 것 같아요.”

서촌의 모습. 일반적인 골목길의 모습이다
서촌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서촌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지역문화콘텐츠 디렉터’라는 명칭에 걸맞게, 그는 동네와 마을에 대한 자신의 생각 또한 확고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각자 나름의 동네와 마을에 대한 정의를 가지고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 좋은 동네, 이상적인 마을은 주민끼리 ‘인사를 나누는 동네’예요. 지역 안에 자발적인 커뮤니티가 많이 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고 나아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동네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야죠. 그리고 그 커뮤니티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커뮤니티 대부분은 상점과 상가에서 시작되거든요. 주민들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상점들이 있고 또 그 상점과 주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가 생기고 꾸준히 유지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죠.”

그렇다면 서촌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와 동네는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할까. 그는 ‘정체성’을 강조했다.

“각각 지역마다 이름이 다르듯이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 고유함을 유지해나가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일례로 똑같은 신도시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게 지역의 정체성 유지〮발전에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동네와 그 안의 주민들이 갖고 있는 고유함과 참신함을 돌아보고 지켜나가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파리를 동경하면서 왜 파리 같은 동네는 없을까? 이야기가 있는 동네, 그런 동네가 많아지기 위한 작업이 부족한 거 같아요. 물론 파리의 지역적〮역사적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파리를 아름답고 이야기가 풍성한 곳으로 가꾸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지금의 파리를 세계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방면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서울도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문화유산도 어떻게 보면 이와 마찬가지죠. 문화유산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범주에 들어가는 게 천차만별이겠지만, 문화유산 전반에 대한 우리의 인식 전반에는 복원에 지나치게 치우친 것 같아요. 한편으로 현재의 보존, 그러니까 지금 있는 것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여겨서 꾸준히 관리하고 체계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적이고, 일상적인 개념의 문화유산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말로 살고 싶은 동네

한 번도 휴일이 없었던 그곳에서 나는 – 나의 필요를 아는 척해주는 그곳에서 나는 – 그러므로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누구도 껴안지 않았다. 내가 편의점에 갔던 그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찾아갔고, 내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거대한 관계가 하도 낯설어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다.
–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 『달려라 아비』 중

김애란의 단편소설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편의점을 통해서 현대 도시의 모습을 그려낸다. 도시의 풍경은 무관심과 냉소로 가득하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람을 마주치지만 이름은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우리의 모습은 급한 일이 생겨 자주 찾는 편의점의 자주 보는 점원에게 열쇠를 잠시 부탁하려 하지만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점원의 반응에 당혹스러워하는 소설 속 화자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 모른다. 도시라는 ‘그 거대한 관계’ 속에서 낯설어하며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만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무관심과 익명성의 동네에서 살고 싶은지 아니면 출퇴근길에 이웃과 정다운 인사를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우연히 마주쳐 짧게나마 웃고 떠드는 동네에서 살고 싶은지 말이다. 만약 후자를 선택하고 싶다면, 서촌의 이야기꾼 설재우 씨의 모습이 좋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그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포부를 이렇게나 소박하게(!) 밝혔다.

“지금 하고 있는 걸 쭉 하고 싶어요. 지속가능한 삶을 사는 거요. 제 바람은 변함없이 옥인상점을 운영하고 잡지를 내고 동네에서 사는 거예요.”

설재우 씨가 옥인상점 내부에서 찍은 사진.
‘서촌의 파수꾼’ 설재우 씨가 정성스럽게 담아낼 서촌, 나아가 동네의 이야기가 더욱더 많아지고 오래오래 이어져 ‘이야기 다발’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가 가꾸고 키워가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인터넷 사이트(www.seolnal.net, www.seochonlife.net)에 접속하거나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옥인상점을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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