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석 | 도로 위의 행복한 DJ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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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신월동과 서울역을 오가는 6211번 버스는 승객들에게는 조금 더 특별하다. 10년 간 승객들에게 음악을 선물해 온 ‘도로 위의 DJ’ 고창석 씨가 운행하는 버스이기 때문이다. 버스는 단순히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고창석 씨에게 버스는 소중한 일터이자 귀중한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이다.

버스기사 고창석 씨가 운전석에 앉아 두 손을 들어 포즈를 취한 모습이다. 한쪽 귀에 이어 마이크를 끼고 있다.

평생을 사랑해도 상처받지 않는 것, 음악

고창석 씨는 이미 승객들에게는 꽤 알려진 버스기사다. ‘DJ 버스기사’의 원조로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10년 동안 DJ로 활동한 데에는 그만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처음부터 버스기사를 평생 직장으로 여겼던 것은 아니다.

“가정을 가지고 나서 참 많은 일들을 해왔어요. 인쇄출판업 영업부장을 시작으로 의류계통 회사에서 일을 했었고, 개인사업도 잠깐 운영했었고요. 하지만 IMF를 맞으면서 회사가 부도가 나고 사기를 당하기도 했어요. 어려운 상황이 많았죠. 돈을 벌어야 했기에 급하게 자격증을 따서 버스 운전직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렇게 1995년 9월 1일에 처음으로 중부운수에 입사를 했죠.”

처음으로 마을버스를 몰았던 그는 종점에서 운행을 시작하거나 마칠 때면 밖에 서서 승객들을 일일이 맞이했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진심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승객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하니 며칠만에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반응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버스기사직을 평생 직업으로 생각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인들에게 알려지는 게 싫었다.

고창석 씨가 운전석에 앉아 한 손을 악수하듯 내밀며 유쾌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다가 2003년이 되어서야 직업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했어요. ‘그래, 이 일이 내 평생 일터가 될 수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내 직업에 어울리게 열심히 살아보자’라는 그런 결심이 들었거든요. 버스라는 게 서민들이 애용하는 수단이잖아요. 안 그래도 서민들의 현실은 삭막한데 버스 탈 때만이라도 화기애애하게 탈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서 음악을 틀기 시작했어요.”

그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음악이었다. 많은 것들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 그의 선택은 음악이었을까.

“버스에서 무엇인가를 대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사실 제가 젊었을 때는 대중적인 만남의 장소 중 하나가 다방이었거든요. 함께 음악을 듣고, 사람들의 사연이 녹아있는 그런 장소였는데요. 지금은 오래되어서 거의 없어졌지만 그 묻힌 추억을 버스에서 다시 재생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스에 타서 삭막하게 앉아있기보다는 사람들의 상처된 마음이 있다면 조금은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평생을 사랑해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행복을 전달하는 DJ 버스기사의 노력과 원칙

고창석씨는 DJ 버스기사가 되고 나서도 승객들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일상이 고단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멘트와 음악 한 곡을 선물하기 위해 대중가요들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좋은 말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는 승객들을 만나는 시간이 비록 잠깐일 수 있지만 그 짧은 시간도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국내외 음악을 가리지 않고 가수와 노래 정보들을 모은 공책이 20권이 넘었고, 노트북에는 5만 3000천여곡이 들어찼다.

그가 여태까지 공부하고 써 내려간 음악 일지, 좋은 글귀 등이 모여 있는 파일과 종이들이 수북이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모습이다.
10년 동안의 노력이 만들어 낸 결과물. 한 글자 한 글자 직접 손으로 써내려 간 이 자료들은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다.

“제가 DJ 버스기사를 하면서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뉴스 하는 시간에는 꼭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려줘야겠다는 것, 오전 9시 이전에는 버스에서 주무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조용하고 잔잔하게 방송해야 한다는 것, 늦은 저녁에도 마찬가지고요. 오후에는 활기차게 신청 곡을 받아요. 마지막으로 주행 중에는 절대 방송하지 않고 정차할 때만 한다는 것이었죠.”

그의 이러한 원칙 때문일까. 그는 2001년에 눈길에 버스가 미끄러져 당한 단 한 번의 접촉사고 외에는 19년 동안 운행 중 사고를 낸 적이 없다.

운전석에 앉아 DJ 장비의 볼륨을 조정하는 고창석 씨, 그리고 운전석 옆의 작은 바구니에 사탕을 넣고 있는 모습 등이 보인다.
버스를 운행하기 전 DJ 장비와 사탕바구니를 세팅하고 있는 고창석 씨. 자연스럽게 볼륨을 조정해 보는 모습이 영락없는 베테랑 DJ다.

물론 승객들에게 음악을 선물하는 일이 좋은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모든 승객들이 그 선물을 반겼던 것은 아니다.

“좋은 말, 음악을 들려준다고 해서 승객들이 다 좋아하지는 않아요. 버스는 어떻게 보면 목적지에 가기 위해 타잖아요. 승객들 중에는 싸운 분도 있을 거고, 술 드신 분도 있고, 화난 사람도 있을 테고.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버스에 탈 거잖아요. 그래서 음악을 꺼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바로 사과 드리고 끕니다. 왜냐하면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만약 친절로 생각하고 승객들에게 베푼다고 생각했다면 제 마음이 많이 상했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많은 승객들이 그의 선물을 반가워하고 감사함을 표한다. 그의 팬을 자처하는 승객들까지 생겨날 정도다. 10년 간 DJ를 해오면서 그의 기억에 남는 승객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DJ 버스기사를 하면서 어떻게 보면 저의 팬들이 생긴 거죠.(웃음) 여름이면 버스에 탈 때마다 직접 시원하게 갈아 만든 과일 음료를 주시는 여자분도 있었고, 일부러 제 시간에 맞춰서 버스를 타시는 손님들도 점점 많아졌어요. 기억에 남는 부부가 있는데요. 이혼을 결심했던 부부였는데 제 버스를 타시고는 제가 틀어드린 음악과 멘트에 마음이 움직여 고맙다고 따로 감사의 말을 해주신 적이 있었어요. 요즘은 외국인 손님들도 신기해 하고 좋아들 하세요. 제가 타는 승객 분의 국적에 맞게 음악을 틀어주거든요. 그러면 좋아서 노래를 듣고 박수 치면서 좋아하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서 내리는 외국인도 많아요.(웃음)”

고창석 씨가 입고 있는 조끼를 클로즈업한 사진. 회색의 니트 조끼로, 팬에게서 선물받은 것이란다.
DJ 버스기사의 인기는 연예인의 그것 못지않았다. 팬이 한 땀 한 땀 짜주었다는 조끼.

현재를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 고창석

그와의 인터뷰 내내 엿볼 수 있었지만 그에게 직접 물었다. ‘선생님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라고.

“제가 버스를 운전하다가 강변을 지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전 항상 손님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저 강물을 보세요. 강물은 흘러가고 있고, 절대 같은 자리로 되돌아 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여러분들의 인생을 아름다움으로 채워주세요.’라고요. 저는 지금 이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하고 있는 지금의 일과 제가 만나고 있는 이 사람이 가장 소중한 거거든요. 오늘이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의 행복은 없으니까요. 이 인터뷰도 마찬가지죠. 버스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운전하는 그 시간, 제 버스에 오르는 손님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하다는 거죠.”

운전석에 앉아 실제로 운행하듯 앞쪽을 보고 있는 고창석 씨의 모습.

그는 오랫동안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지금까지도 일을 할 수 있는 건 가족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오래 전부터 간직해 온 또 다른 목표가 있다.

“지금까지는 가족들을 위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60세 정도가 되면 작은 것이라도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요. 제게 일어났던 10년간의 모든 아름다운 일들을 책으로 엮어서 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면 좋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들도 해보고 싶어요. 사실, 제가 찰리 채플린을 좋아해요. 그의 위트 있는 몸짓 같은 걸 따라 해보고 있는데 잘 연습해서 나중에는 개그맨 오디션에도 한번 나가보고 싶네요.(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나중에는 시골에 농사를 지으면서 어려운 사람들과 모여서 버는 돈으로 공동생활을 해보고 싶어요.”

1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누군가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1만 시간으로 정의하지 않았나. 그러한 시간을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DJ 버스기사라는 일을 해온 고창석씨. 자신의 직업전선에 불평하지 않고,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치를 고민하고 노력해 온 그는 진정 행복을 전하는 DJ다. 그리고 그는 DJ이기 전에 현재를 소중히 여길 줄 알고 새로운 꿈을 꿈꿔가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고창석 씨가 운전석에 앉아 버스에 거는 팻말을 들고 웃고 있다. 팻말은 세로로 긴 직사각형으로, ‘신청곡을 받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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