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 따뜻한 마이크로 세상의 온도를 높이다


<김현정의 뉴스쇼>. 라디오를 듣지 않아도 인터넷 뉴스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철저한 당사자주의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국민들의 가려운 등을 긁어주던 CBS 대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_서수현(제20기 학생 기자/명지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따듯한 이미지를 소유한 김현정 CBS PD. 그녀의 앞에는 라디오 진행을 위한 마이크, 그리고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CBS 라디오 방송국에서 만난 김현정 PD.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특유의 냉정한 이미지를 기대했지만 직접 마주한 그녀는 오히려 온기가 넘쳤다.

냉철하면서도 따듯한 진행으로 아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간판 역할을 한 지도 어언 10년. 그간 받은 상도 여러 가지다. 작년 한국PD대상 시상식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으로는 이례적으로 올해의 PD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크나큰 호응을 받아왔던 <김현정의 뉴스쇼>가 작년 11월 막을 내렸다. 30살. 젊은 나이에 시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녀는 어떻게 프로페셔널한 PD이자 앵커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지난 1월 27일, 부푼 기대감과 궁금증을 안은 채 김현정 PD를 CBS 사옥에서 만나보았다.

“젊음은 계산이 아니다, 미쳐라!”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임하는 김현정 PD의 사진. 두 손을 무언가 설명하듯 손가락을 뻗쳐 보이고 있다.
“젊음은 계산이 아니다, 미쳐라!” 김현정 PD는 도서관에서 오롯이 취업에만 매진하는 대학생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현정 PD의 대학시절은 ‘미쳤다’는 말로 모두 설명 가능하다. 어렸을 적부터 라디오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던 그녀는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을 직접 만드는 꿈이 있었다. 결국 그녀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교 방송국 PD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방송에 ‘미친’ 시초인 것이다.

“학교를 다닌 건지 학교 방송국을 다닌 건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열정적이었어요. 학점도 돌보지 않고, 다른 스펙도 쌓지 않았어요. 미친 듯이 모든 걸 방송에 쏟아 부었어요. 단지 20분짜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학교에서 밤을 새울 정도였어요. 대학 막바지에 학점 때문에 고생하긴 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아무 계산도 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활동했기에 지금의 방송활동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처럼 대학시절 방송국 생활은 PD로 활동하는 그녀에게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쥘 기회를 주는 게 언론인의 역할이라 강조하는 그녀의 신조는 이때부터 시작된 듯 했다.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는 기자는 결코 좋은 기자가 될 수 없어요. 그들이 어떻게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대학 방송국 시절에 달동네의 마지막 철거민들을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이 있어요. 용역깡패들이 오는데 벌벌 떨면서도 도움이 되고 싶어 앞장서서 촬영에 임했죠. 내가 아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이분들은 힘이 없는데 무슨 손을 쓸 수 있겠어요. 직접 찾아 다니면서 만나봐야 해요. 어떻게 가만히 있으면서 이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직접 찾아 다니고 경험해봐야 한다는 말에서 그녀가 얼마나 세상경험을 중요시하는 지 알 수 있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그녀가 전하는 청춘에 대한 조언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젊음은 계산이 아니다, 미쳐라!” 취업이라는 복잡한 방정식에 얽매여 있는 젊은이들에게 허를 찌르는 말이겠다. 김현정 PD에게 도서관에서 책만 붙잡고 있는 청춘들은 참으로 안타까운 실루엣들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언론, <김현정의 뉴스쇼>

이렇게 20대에게 진귀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김현정 PD. ‘미쳤던’ 청춘 시절을 거친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오랜 시간 대한민국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간판이었던 <김현정의 뉴스쇼>와 함께 그녀의 30대를 되돌아 보았다.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김현정 PD님의 사진. 살짝 옆을 보며 웃고 있다.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허물어 청취자들과 교감했던 것이 <김현정의 뉴스쇼>만의 강점이었다.

김현정 PD가 뉴스쇼를 맡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그녀가 연출했던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가 지각을 하는 바람에 잠시 마이크를 잡았고, 시사 프로그램에 어울리겠다는 평이 있었다. 결국 이 잠깐이 효시가 되어 그녀는 시사 프로그램의 앵커가 됐다. 30살의 젊은 여성이 진행하는 시사 프로그램. 기대보다는 우려가 많았을 법한 상황. 그녀는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

“실제로 주변의 우려가 많았어요. 회사 내에서도 음악 프로그램 맡던 PD가 어떻게 나이 지긋한 국회의원들과의 이야기를 이끌 수 있겠냐는 말도 있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이가 어렸던 게 강점이었던 것 같아요. 박사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니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방송으로 만들 수 있었어요. 청취자들이 궁금한 부분을 쉬운 용어로 설명해주니 그들이 쾌감을 느낀 거죠. 또 하나는 음악 프로를 연출했던 감성이 남아있다 보니 슬플 땐 슬프고, 웃길 땐 웃었던 독특한 진행자였어요. 인터뷰이∙진행자∙청취자가 교감을 할 수 있는 방송이 됐던 거죠. 이렇게 눈높이 시사, 감성 시사로 진행하니 ‘김현정’이라는 사람을 어필할 수 있었어요.”

청취자들이 쉽게 다가가고, 공감할 수 있는 시사 프로그램이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김현정 PD. 그렇다면 그녀가 방송을 진행할 때 내세웠던 철칙은 무엇일까.

“’당사자주의’예요. 우리는 조금만 검색해도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죠. 때문에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자나 제3자가 아닌 사건의 당사자를 통해 ‘날 것’을 보여줘야 해요. 가공되지 않은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청취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 신문의 한 꼭지에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진 아이를 손으로 잡은 아저씨가 나온 적이 있어요. 하지만 딱 사건만 다루다 보니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었던 상황이죠. 이 때 우리 방송 팀에서는 이 분을 섭외하고, 당시 상황을 재현했어요. 무미건조한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현장을 되살려놓으니 다시금 이슈가 됐죠.”

당사자주의를 통해 신선한 정보를 전달했던 김현정 PD. 하지만 한 쪽 입장만 편들어 보일 수도 있기에 그녀는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그것은 바로 당사자를 인터뷰 하기 전 철저한 사전조사로 그가 전하는 말의 팩트를 확인했던 것. 배후에서 사건과 관계된 여러 사람들과의 사전인터뷰를 통해 신빙성을 확인하고, 합당치 않으면 여지없이 커트했다. 이 때문에 놓친 인터뷰이도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객관주의를 표방해야 하는 언론이기에 그녀는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신중하게 인터뷰에 임하는 김현정 PD의 사진입니다.
“인터뷰이 섭외를 위해서는 끈질겨야 해요. 당사자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방송을 위한 신중한 기다림은 <김현정의 뉴스쇼>의 질을 높였다.

하지만 이러한 당사자주의를 위해서는 사건에 적합한 인터뷰이를 섭외해야 하는 것이 관건. 김현정 PD에게 적재적소의 인터뷰이를 섭외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물어보았다.

“끈질겨야 해요. 당사자가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일주일에 몇 번씩 안부전화를 드리면서 인터뷰 요청을 했어요. 그러다 당사자가 세상에 할 말이 있다 싶으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연락하겠어요. 한번은 한 고위공직자 분의 한 마디가 필요했는데, 그 분이 인터뷰에 전혀 응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한 마디를 위해 계속 연락했죠. 그러다 필요한 순간이 되자 그분께서 저희에게 연락을 하셨어요. 섭외에 성공한 거죠. 이후로도 그 분은 마이크가 필요하면 저희에게 연락해요.”

‘나’를 만들고 언론을 보라

이처럼 <김현정의 뉴스쇼>가 가진 매력들은 새로운 정보에 목마른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 언론은 부족한 현실이다. 사건∙사고마다 과열되는 취재분위기에 당사자들의 인권은 보장받지 못하고, 왜곡된 정보가 흘러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기레기’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 현 상황에서 기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김현정의 뉴스쇼’ 프로그램 포스터가 담긴 액자 앞에 있는 김현정 PD의 사진입니다.
약자를 배려하는 언론세상을 꿈꾸는 김현정 PD. 그녀는 그런 미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힘있는 사람, 사회에 영향력 있는 이들을 위한 마이크는 많아요. 그러나 세상에 할 말이 있지만 언론계에서 관심을 주지 않아 말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사회의 약자인 거죠. 억울하고 꼭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들, 즉 이러한 약자들을 놓치지 않는 언론이 되어야 해요. 최근에는 언론 매체들이 급증하면서 한 가지 사실이 알려지면 이에 대한 똑같은 기사들을 양산해내는 상황이잖아요. 이런 언론이 아니라 항상 세상의 약자들, 마이크가 필요하지만 어떤 마이크도 다가가지 않는 그런 분들에게 집중해야 해요.”

대학교 방송국 PD 활동을 할 때부터 약자들을 놓치지 않았던 김현정 PD. 어쩌면 약자를 담아낸 기사는 읽히지 않는 기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녀는 기사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방안도 고민하여 읽히는 기사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이크를 전달하는 그녀의 자세는 그녀가 생각하는 언론상에도 그대로 녹아져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현재 언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고 한다.

“영어 점수와 학점 조금 더 높이려는 데 매진하지 마세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거예요.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세요. 비판해야 할 것에는 냉철한 자세로, 소외된 자들에게는 따듯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세요. 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세요. 막상 언론인이 되고 나서는 쳇바퀴 굴리는 일상이 반복될 거예요. 그러니 대학시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시도하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약자를 배려하는 언론세상을 꿈꾸는 김현정 PD. 한없이 냉정할 것만 같았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에게서 느꼈던 따뜻함은 그 어느 마이크보다 사람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비록 당장은 그 마이크를 내려놓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막힌 속을 과감하게 뚫어줄 날이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해 본다.

젊음에게 뜨거운 조언을 아끼지 않은 CBS 김현정 PD! 그녀가 오랫동안 진행해 왔으며, 작년 11월, 10여년 간의 여정을 끝으로 막을 내린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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