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페디 | 감각으로만 성공하는 디자이너는 없다

성원모가 디지페디 간판을 들고 책상 위에 걸터 앉아 있다.
초현실적인 연출과 특유의 색감으로 유명한 그들의 작업에는 항상 새로운 시도가 있다. 세로 형식의 뮤직비디오로 한창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에픽하이의 ‘Born Hater’는 물론이고 초밥이라는 비주얼로 충격을 줬던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까지… 디지페디는 매번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세간의 관심을 주목시킨다. 1월의 어느 한가로운 오후, 가로수길에 위치한 그들의 작업실에서 디렉터 성원모를 만나보았다.

성원모가 디지페디 간판을 들고 책상 위에 걸터 앉아 있다.
디지페디 디렉터 성원모

디지페디DIGIPEDI = 디지털DEGITAL + 페디큐어PEDICURE

디지페디는 디지털(DIGITAL)과 페디큐어(PEDICURE)의 합성어로 성원모(원모어타임)과 박상우(오로시)가 디렉터로 있는 팀이다. 그들은 무려 초, 중, 고 동창이다. 어려서부터 함께 그림을 그리며 꿈을 키우던 두 친구는 현재 우리나라 뮤직비디오 업계의 흥행 보증수표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루키 소설 중에 ‘캥거루 날씨’라는 이름이 나와요. 캥거루라는 단어와 날씨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뉘앙스가 있잖아요. 디지페디도 마찬가지에요. 디지페디는 대학교 때 상우와 티셔츠 브랜드를 만들려고 지었던 이름인데 당시 전혀 상관없는 단어로 이름을 만들거나 하는 장난을 많이 쳤었어요. 브랜드 이름도 그렇게 하자고 해서 디지페디가 된 거에요. 제가 그날 발에 페디큐어를 바르고 있었거든요.(웃음)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그는 졸업 후 회사를 다니던 도중 다이나믹 듀오에게 뮤직비디오 의뢰를 받게 되었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해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완성하게 되고, 그 이후 뮤직비디오의 매력에 빠져 오랜 친구 박상우와 함께 뮤직비디오 제작 스튜디오 ‘디지페디’를 만들게 되었다.

뮤직비디오 캡쳐 사진이다. 에픽하이의 멤버들과 여자 모델들, BI가 화면 중앙에 있다.
유투브 조회수 400만이 넘는 에픽하이의 ‘Born Hater’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최초로 세로 프레임 촬영을 택해 주목받은 작품이다.

“처음에는 저랑 상우 둘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점차 일이 많아지게 되고, 이젠 팀원을 꾸릴 때가 됐다 싶어 사람들에게 소개를 받았어요. 소위 대기업에 다니던 능력 있는 친구들을 ‘뺏어온’ 거죠.(웃음) 또 대학원 수업을 나갔었는데 거기서 잘하던 학생에게 팀에 들어오라고 제안을 했어요. 이렇게 저렇게 총 6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현재는 저와 상우가 메인 디렉터인 팀이 되었습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하게 된 디지페디. 뮤직비디오 회사에 다닌 적도 없고, 정식으로 디자인을 배운 적 없는 그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뮤직비디오 디렉터가 되기까지 무엇이 가장 중요했을까?

“조감독도 안 해보고 막무가내로 일을 시작한 케이스다 보니까 다른 업체들의 일반적인 룰이 궁금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항상 결론은 ‘내가 생각한 게 맞다’였어요. 색보정 같은 경우도 후반 업체에 맡기는 게 엄청난 색소 차이가 있대요. 근데 제 눈으로 보기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제 눈을 믿었어요. 굳이 돈을 더 들여서 색소 차이에 대한 어떤 걸 하기보다는 그냥 내가 보기에 좋은 쪽으로 구현하고, 남는 예산으로 차라리 미술과 무대 디자인에 투자를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중요한 건 본인이 하는 것에 대해서 믿고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아이디어 제작소, 디지페디의 작업실

매번 새로운 작업들이 쏟아져 나오는 그들의 스튜디오에 가 보았다. 여기저기 쌓여있는 무대 소품들과 에너지 음료들은 빠듯한 그들의 스케줄을 보여주고 있었다.

디지페디의 작업실 모습. 책상 위에 다양한 소품들이 보이고, 테이블 위에는 노트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디지페디의 작업실 공간.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위해서는 기획사부터 작곡가, 아티스트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의견 조율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물어보았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는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어요. 모션부터 아트웍까지 모두 생각하고 오는 케이스도 있고, 뭔가 아이디어가 있긴 한데 그게 전혀 시각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죠. 물론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대부분 바로 쓸 수 있는 의견은 전혀 없어요. 예산 문제도 있고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있는데 클라이언트들은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냥 말하는 것이잖아요. 어차피 그대로 되진 않으니까 최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달라고 해요. 최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그 다음엔 저희 맘대로 찍는 거죠.(웃음)”

인어 분장을 한 오렌지 캬라멜 멤버 세 명이 초밥 랩 속에 있다.
오렌지 캬라멜을 초밥으로 묘사한 ‘까탈레나’ 뮤직비디오다.

초밥으로 분장한 오렌지 캬라멜부터 세로 형식의 뮤직비디오까지. 독특한 소품과 실험적인 형식으로 유명한 그들의 작업에서는 언제나 틀에 박히지 않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어디서 영감을 얻는 것일까?

“제가 얼마 전에 ‘영감’이라는 것에 대한 강의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 강의의 결론은 ‘영감은 없다’였거든요. 이번에 많은 관심을 받았던 에픽하이의 ‘Born Hater’도 마찬가지예요. 세로 형식의 뮤직비디오라는 게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경험에 의해 나온 거라 말씀드릴 수 있어요. 2013년에 진보의 ‘판타지’라는 뮤직비디오를 작업했었는데, 어떤 실험적인 요소로 생각했던 것이 레이아웃을 나누는 거였거든요. 그렇게 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봤는데 괜찮더라고요. 그 다음 작업에서는 음악의 리듬감에 맞게 크롭하는 형식을 달리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로로 된 뮤직비디오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되어 만들게 된 것이지 특별히 영감이라거나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대개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면 9시에 시작, 촬영이 끝나는 시간은 새벽3~4시. 정리하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5시가 넘는 시간이 된다. 하지만 일을 한다는 건 곧 노는 거고 많은 게 뒤섞여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 그런 그에게 뮤직비디오의 의미는 무엇일까?

“뮤직비디오는 저와 제일 잘 맞는 장르인 것 같아요. 제일 재밌어요. 그런데 뮤직비디오 없인 못 살고 그런 건 아니에요. 방송도 재밌고 광고도 재밌고. 제가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어요. 저는 일러스트도 좋고, 그래픽 디자이너도 좋고 뭐든 다 좋으니까 창작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예전부터 규모가 큰 곳에서 일하기보다는 좀 작은 규모로 제가 다 컨트롤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뮤직비디오라는 분야가 제가 원하던 형태에 잘 맞는 포맷이라 뮤직비디오를 하는 것이지 없인 못 살고 하는 건 아니에요.(웃음)”

키보드가 연결된 듯한 전자렌지 앞에 성원모가 앉아있다.
작업실에 설치된 전자렌지 컴퓨터. 그들의 작업실에는 이처럼 깨알같은 소품들을 볼 수 있다.

지금 가장 트렌디한 디지페디, 그가 청춘을 말하다

성원모는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공대생이다. 하지만 1, 2학년 때는 영화동아리를 통해 계속해서 독립영화를 만들었고, 공익근무를 할 때는 꾸준히 일러스트를 그렸다. 그러다 보니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저는 대학교 복학했을 때가 제일 잘 나갔어요. 그때는 이름도 필요없었죠. 그냥 차 있는 오빠!(웃음) 당시 싸이월드 클럽에 제가 그린 일러스트를 올렸는데 일이 들어왔어요. 모 기업 광고에 나오는 일러스트를 그리는 일이었는데 저작권료가 꽤 많이 나오더라고요. 그 돈으로 차를 샀어요. 물론 중고차였고 소형차긴 했지만 대학생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학교 안에선 꽤 부자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런데 저도 당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일러스트로 일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이게 직업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고, 디자인 일을 한다고 확정지은 적도 없어요. 또 디자인 수준에 대한 확신이 있던 것이 아니라 일반 기업 쪽으로 지원을 하기도 했었어요.”

성원모가 커피를 든 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대학생 시절엔 같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꾸준히 발전시켜 직업으로까지 연장시켜왔다. 그런 그가 그저 부럽기만 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제가 생각했을 때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는 것 같아요. 되게 위험한 말이에요. 그 말대로라면 모두가 게임하거나 운동을 하지, 법 공부가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들이 흔하겠어요?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기본적인 어떤 형태나 태도로만 말을 한다면 매 순간 성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열정적으로 살 수 있고 더욱 집중해서 할 수 있으니까 더 좋은 것이지,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는 건 꼭 필요해요. 요즘 잘한다는 디자이너건 감독이건 공통적인 특징은 다 진짜 열심히 한다는 거예요. 다들 밤 새가면서 열심히 하는 거지 감각과 센스로만 하는 사람은 절대 없어요.”

감각과 센스로 유명한 성원모는 역설적이게도 감각과 센스’로만’ 성공하는 디자이너는 절대 없다고 한다. 성실한 것이 가장 중요하며 성공하는 모든 일에는 언제나 피 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학생 디자이너라면 현역에 있는 사람보다 포트폴리오가 훨씬 나아야 해요. 현역에 있는 디자이너는 주어진 곡을 가지고 주어진 예산 안에서 만들게 되지만, 여러분이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하고 싶은 주제를 골라서 하고 싶은 기간 동안 마음대로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대부분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요 정도가 되었으니 너네 회사에 들어가면 더 잘할 수 있다.’ 하는 자세가 보여요. 그런데 언제나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하면 그것보다 더 낮은 레벨이 나오게 되거든요. 제약이 있으니까. 본인의 기준치를 매우 높게 잡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현직에 있는 사람들 중에 자기가 이길 수 있는 사람 한 명은 있어야 해요. 포트폴리오건 뭐건 기존의 디자이너들보다 훨씬 잘 해야 기회가 주어질까 말까 한 거죠. 그게 나는 대학생들이나 디자인과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예요. 정말 성실하게 해야 해요.”

성원모가 작업실 의자에 앉아 왼쪽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청춘들에게 괜찮다는 위로의 말보다는 따끔한 질책 한 마디를 전한다. 또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은 경험이라 말하며 일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노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였다. 가장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대한민국에서 감각 있기로 유명한 그가 말하고 있다. 성공이란 어쩌면 아주 간단한 자세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초현실적인 연출과 특유의 색감으로 유명한 그들!
세로 형식의 뮤직비디오로 한창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에픽하이의 ‘Born Hater’는 물론이고 
초밥이라는 비주얼로 충격을 줬던 오렌지 캬라멜의 ‘까탈레나’까지 
매번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세간의 관심을 주목시킨 그들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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