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운 | 맹꽁이 서당, 다시 문을 열다

윤승운 작가의 정면 사진. 두 손으로 맹꽁이서당 논어편의 원고 원본을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무심히 그린 듯한 선 줄기, 어수선해 보이는 컷. 처음 그림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림이 이게 뭐야’라며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컷 속에서 팔딱 팔딱 살아 숨쉬는 인물들. 옛날 위인들의 활약과 교훈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학동들 사이에서 눈을 초롱초롱 한 채 훈장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맹꽁이 서당의 한 흑백 장면. 대 여섯 명 되는 학동들이 일시에 부모님들한테 매를 맞고 있고 바위 위에서 훈장님이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훈장님 몰래 소풍 나온 학동들이 매 맞는 장면. 윤승운 작가의 그림은 늘 이렇게 ‘가득 찬’ 느낌을 준다.

만화 인생 50년, 한반도 역사와 위인들의 삶을 그려온 윤승운 작가는 대한민국 역사 만화의 대부라 해도 손색이 없다. 학습만화는 대개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수많은 성인 연령층의 팬을 확보한 그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역사 이야기와 더불어 효, 불교 등 다양한 이야기로 대한민국에 값진 교훈을 전해온 윤승운 작가. 그가 8년간의 휴식을 마치고 이번엔 ‘논어’를 그리기 위해 다시 펜을 들었다.

윤승운 작가의 정면 사진. 두 손으로 맹꽁이서당 논어편의 원고 원본을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원고를 제출하고 흔쾌히 인터뷰 시간을 내준 윤승운 작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목소리에는 활기가 넘쳤고, 활짝 웃는 얼굴엔 그가 그리는 인물들만큼이나 밝고 유쾌한 기색이 느껴졌다. 과연 50년 경력의 이야기꾼답게, 넋 놓고 들었던 그의 삶 이야기에는 역시 웃음과 재미가 빠지지 않았다.

만화, 그리고 윤승운

대한민국에 ‘윤승운’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많아도 그 생동감 넘치는 그림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보면 볼수록 유쾌하고 깊은 정감에 빠지는 그 그림체는 사실 대한민국 1세대 만화가이자 명랑만화의 원조인 길창덕 작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길창덕 작가가 데뷔한 1955년 당시에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그때는 딱히 어린이 잡지가 없어서 아무 잡지나 읽다 보면 만화가 눈에 들어오는데, 우연히 길창덕 작가의 그림을 접하고 익히게 됐죠. 그러다 고2 때 학교를 중퇴하고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는데 두어 달 있다 답장을 받았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됐죠.
제가 그림을 참 못 그려요. 옛날에 출판사로 원고를 갖고 오면 거기에서 일하는 친구가 ‘또 발로 그려왔냐’며 막 웃고 그랬으니까요. 당시로서는 그림체가 파격적이긴 했죠. 얼마 전에는 몇몇 대학교랑 만화박물관에서 제 전시회를 했는데 주제를 ‘못 그리는 그림, 윤승운 만화전’으로 올리더라고요. 암만 그림을 배우고 잘 그린다고 해서 능사는 아닙니다. 만화적인 요소가 있고 생동감이 있어야 진짜로 재미있는 만화가 되는 법이죠. 물론 너무 그쪽으로 치우쳐도 문제가 되지만요.”

맹꽁이 서당의 첫 편은 1986년에 나왔지만 2014년에 나온 최근 편과 비교해도 크게 눈에 띄는 차이가 없다. 30년 동안 그 구성진 그림체와 배꼽 잡는 내용들이 꾸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원고의 모든 제작과정을 윤승운 작가가 직접 맡는 것이었다.

“저는 만화란 것은 오로지 한 사람의 머리와 손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진짜로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고 좋은 내용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일본 만화가들은 도제식으로 아이디어 담당, 그리기 담당을 마련해서 만화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그런 방식은 좋지 않다고 봐요. 하지만 분명 장점은 있죠. 만화를 제작하는데 참여하는 40~50명이 어엿한 직업을 가짐으로써 실업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저는 밑에 월급을 주는 사람이 없으니 결국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꼴이죠.(웃음)”

맹꽁이 서당의 한 장면. 훈장님과 학부형이 대화를 하면서 서당 이름이 본래 공맹서당임을 알려주고 있다.
‘맹꽁이 서당’이라는 이름은 사실 ‘공맹 서당’이 맞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30년째 맹꽁이 서당이라고 부른다.

50년이면 강산이 다섯 번 변한다. 그 긴 세월 동안 오직 한 가지 일만 해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터. 천하의 윤승운 작가도 분명 한 번 이상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의외였다.

“제가 한 번 몰입하면 정말 바보처럼 일하는 성격이에요. 뭐, 슬럼프가 생긴다고들 하는데 그 당시 저는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계속 받기 위해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야 했거든요. 아이디어를 마구 짜려면 당연히 힘듭니다. 재미가 없으면 안 팔리고 안 보니까요. 그렇게 쫓기듯이 생각하고 그리다 보면 지치고 쉬고 그런 게 없어요. 마냥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그나마 다행인 건 어느 정도 되면 아이디어가 막 나오는 단계가 있어요. ‘대박 치는’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 쑤지도 않는, 그럭저럭 쓸 만한 내용들은 얻게 되죠.”

세상의 모든 창작인들이 공감하는 고통이 있다면 바로 ‘마감기한’일 것이다. 윤승운 작가도 본인 스스로는 마감기한을 지키기란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마감을 아주 잘 지키는 만화가로 정평이 나 있다. 무언가 특별한 비결이 있을 법도 했지만 그 해답은 비교적 단순했다.

“우리는 마감기한을 지켜서 원고를 내는 게 직업입니다. 그것을 못 맞춘다는 건 자살행위죠. 옛날에도 마감 안 지키는 작가들은 많았어요. 내 친구 작가가 있었는데 하도 펑크를 내니, 나이가 한참 어린 편집장이 몽둥이를 챙겨서 거처로 쳐들어갈 정도였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마감기한은 생명줄이고 신용이에요. ‘죽어도 이날까지는 가야 한다, 이게 내 생명이다’라고 스스로 명심하면 맞춰지게 돼 있죠. 펑크난 분량을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는 담당자는 정말 굿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거예요.”

역사, 그리고 윤승운

윤승운 작가의 상측 정면 샷. 두 손을 모은 채 편안한 자세로 미소 짓고 있다.

윤승운 작가도 초창기에는 전형적인 명랑만화를 그리는 평범한 만화가였다. 다만 할아버지 집에 있던 역사책 한 권을 우연히 접하고 언젠가는 역사를 주제로 한 만화를 그려보겠노라 다짐했다고. 그 다짐을 품기만 해온 지 20년, 한 출판사 관계자가 역사만화 제작을 권유했고 바로 그렇게 맹꽁이 서당이 탄생했다.

“집에서도 반대하고 주위에서도 반대했어요. 다른 출판사의 친한 사람은 ‘그건 자해다. 만화가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짜야지, 왜 이미 있던 역사 이야기를 베끼냐’라고 만류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우리 역사를 리얼하게 알리는 만화를 꼭 그려보고 싶었어요. 제가 한 번 빠져들면 제대로 파고드는 성격이다 보니 역사책도 엄청나게 많이 구했죠. 그때 당시 책이 몇 권 있나 세어봤는데 역사책만 대략 2500권에 달했어요. 서재 어디에 어떤 책이 있는지 찾는 것도 일이었죠.”

윤승운 작가의 작품들은 재미도 높지만, 그의 작품 특유의 풍부한 일화와 생동감 넘치는 현장묘사의 향연은 사학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다루는 배경에는 서적을 통한 철저한 조사와 더불어 당시 역사와 관련된 장소와 인물들을 발로 뛰어 찾아 다닌 수고도 있었다.

“일단 왕릉이나 궁은 서울과 경기도 안에 다 있어서 비교적 가기 쉽습니다. 일하다 머리가 안 풀리면 스윽 다녀오고는 했지요. 그게 발전해서 나중에는 ‘한길 역사기행’이라는데 참여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몇 년 동안 대한민국에 있는 웬만한 역사적인 장소는 다 다녔어요. 그러면서 역사 전문가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정보도 많이 얻었죠. 인터뷰까지는 아니지만 제가 좋아했던 위인들의 후손도 더러 만나봤어요. 예전에 김파라는 시인을 만났는데 그분의 외삼촌이 ‘유동하’씨였어요. 유동하씨는 18살이라는 나이에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치르던 날 길 안내를 했던 위인이지요. 거사를 성공한 후 유동하씨도 붙잡혔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살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의 정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저도 그것을 전수받아서 안중근 의사 편을 디테일하게 그릴 수 있었습니다.”

맹꽁이 서당의 등장 인물 소개 장면. 김종서, 남이장군, 유자광 등 조선시대 인물들이 각기 다양한 표정과 포즈를 지은 채로 나열돼 있다.
맹꽁이 서당의 등장 위인 소개. 간신배 유자광을 뱀으로 표현한 것이 눈에 띈다.

수많은 역사적인 인물을 그려온 윤승운 작가, 그들의 삶이 보여주는 교훈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빛 바래지 않는다. 만약 그에게 타임머신이 생겨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 누구일지 궁금했다.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문명이 움트는 삼왕오제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기는 해요. 그런데 만나고 싶은 인물 한 명을 갑작스럽게 콕 찍기는 조금 어렵네요. 작품을 그리면서 분명 ‘이때는 어떤 일이 있던 것인가, 이 정황은 어떻게 된 것일까’ 골똘히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막상 집어내려니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순신 장군, 정약용 선생, 이익 선생이 있지만 이외에도 너무 많아요.”

위대한 인물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각종 기법을 동원해서 늠름함을 표현하는 윤승운 작가. 그만큼 악인에 대한 혹평과 부정적인 표현 기법 역시 아끼지 않는 그다. 이번에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이 사람은 정말 못됐구나.’ 싶었던 인물을 묻자 윤승운 작가는 간신배들을 손꼽았다.

“연산군 때 수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유자광, 광해군 때 횡포를 부린 이이첨, 매국노 이완용 등이 있어요. 사실 이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능력도 출중하고 나름의 인품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이첨의 경우에는 자신의 집이 쫄딱 망할 거라는 점쟁이에게 오히려 후한 물품을 베풀었다는 일화도 있지요. 아무리 똑똑한 인물들도 권력의 맛에 빠지고 길을 잘못 들면 이렇게 타락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어쨌든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놓는 악행들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열정, 그리고 윤승운

윤승운 작가님의 정면 샷. 상체로 클로즈업 돼 있으며 정면을 바라본 채 활짝 웃고 있다.

맹꽁이 서당이 30년이라는 긴 세월에도 인기를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윤승운 작가의 탁월한 유머감각에 있다. 가벼운 일화, 툭 던지는 대사에도 웃음이 그치지 않는 개그코드는 그린 사람 스스로도 뿌듯할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막상 윤승운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는 당시에는 자신감이 없었다고 한다.

“그냥 억지로 어떻게든 그리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겁니다. ‘억지춘향’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만화를 그리면 당장은 이게 재미있는지 알 수 없어요. 적어도 한 두 달 후에는 다시 보아야 ‘아, 이 부분은 좀 낫구나.’ 하는 걸 알게 되죠. 옛날이나 지금이나 출판사에 원고를 건네는 순간엔 이렇게 재미없는 원고를 내도 되나 하면서 마음에 비가 내려요. 어떤 친구는 자기 만화에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저는 그게 안 돼요. 실제로 원본을 보면 오려 붙인 부분이 참 많습니다. 다 그려놓고 나서도 자꾸 부족함을 느껴서 고치고, 고치게 되죠.”

60~70년대에 ‘만화’는 결코 생업을 꾸리기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고된 시절을 지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는 데는 혼자의 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응원과 도움이 있었을 터. 본인에게 가장 힘이 되어준 사람을 묻자 윤승운 작가는 자신의 ‘큰아버지’를 손꼽았다.

“집사람, 아들•딸, 친구들 등 제게 힘을 준 사람들은 많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큰아버지가 많은 의지가 됐습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실질적으로 많이 도와주시기도 했고 그 인품이 특히 존경스러웠거든요. 큰아버지를 보면 공자가 생각나는데 이번에 논어 편을 그릴 때도 공자와 큰아버지의 모습이 많이 겹치곤 했죠. 물론 큰아버지를 공자와 같은 반열에 세울 수는 없는 것이지만 어쨌든 집안에 그런 성품의 어르신이 계시니 우리 가족들도 모두 성품이 좋고 집안이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남철 같은 어르신입니다. 그리고 길창덕 선생님이 계시지요. 제가 어렸을 때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 뒤로 제 만화인생에 큰 도움이 돼 주셨으니까요.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대전에 있는 그분의 묘소에 들릅니다.”

맹꽁이 서당의 학동들 소개 장면. 가운데서 곰방대를 피며 활짝 웃는 훈장님을 중심으로 학동들이 산만하게 배치돼 있다.
맹꽁이 서당의 학동들.

윤승운 작가가 역사•교육만화를 그리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 때문이었지, 결코 어떤 사명감을 품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이 겪는 고통과 현실을 보면서 윤승운 작가도 자신이 그들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오래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옛날에 이인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자녀가 다섯 살 때부터 너무 산만했어요. 그래서 허리에 방울을 차고 다니게 했는데, 방울이 딸랑거리면 스스로 자신을 경계토록 한 것이죠. 이렇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교육을 해야지, 무조건 그르다 잘못됐다 윽박지르면 안돼요. 제가 교육자는 아니지만 교육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봅니다.
일단 제가 그리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무언가 그리다 보니까 일이 잘 되고 돈이 된 것이죠. 그렇다면 그 다음의 목표는 무엇인고 하니 바로 자식교육이에요. 그럼 제 자식만 자식인가? 남의 자식도 제 자식처럼 잘 가르치고 자라게 하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요즘 ‘아이들이 잘 자라고 살아가게 하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저 또한 크게 공감하고 있습니다.”

윤승운 작가에게 청춘들에게 자유롭게 남기고 싶은 말을 요청하자 “열심히, 성실하게, 바르게 사세요. 너무 큰 욕심을 내지 말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흔한 얘기였지만 이미 작품 중에 ‘다섯 살 아이도 알지만 마흔 먹은 성인도 지키기 어렵다’라고 인용할 정도로 중요한 진리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윤승운 작가 작품 중 한 장면. 작가 자화상이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진정 부끄럽다.’라는 대사와 함께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작품을 만드는 윤승운 작가,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위인의 업적을 가리키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장면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평생 위인들의 삶을 그려온 윤승운 작가, 비록 스스로를 위인이라고 칭할 수는 없어도 그 열정과 겸손한 태도만큼은 이미 위인들과 너무나도 닮아 있지 않을까?

윤승운 작가의 싸인. 좌측에 ‘대한민국 젊은 꿈 파이팅!’이라는 자필과 함께 우측에는 앉아있는 자화상을 그렸다.

본인 스스로는 ‘너무 늙어서 더 이상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굽혀 말했지만 여전히 넘치는 에너지와 유쾌함은 그런 겸손함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세월이 세월인 만큼 윤승운 작가도 이제는 그림 그리기가 지긋지긋해 졌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수많은 팬들은 할아버지에게 조르는 손주처럼 앞으로도 재미있는 작품을 언제까지나 기다릴 것이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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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맹꽁이 서당 넘 반갑네요 ^^
  • 팜므파탄

    오 맹꽁이 서당!! 다시 만나니 좋아요~
  • 윤수진

    오!! 익숙한 그림체... 럽젠 기사에서 맹꽁이 서당을 다시 만나게 되다니 정말 반갑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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