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옷장 | 혼자가 아닐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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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을 입는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혹 실제로 어른이 된 게 아니더라도, 지금 발 딛고 있는 곳에서 앞으로 발 디딜 곳으로 향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부과되는 책임과 해결해야 하는 일은 점점 늘어난다. 정장을 입는 순간 혼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여기 ‘열린옷장’과 함께라면 말이다.

열린옷장 스티커 사진. 노란 원 안에 ‘누군가의 도전을 응원하러 가는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이야기는 정장을 타고

열린옷장이 하는 일은 대강 이렇다. 정장을 기증받고 다시 그 정장을 대여해주는, 의류 대여 사업 정도다.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아주 간단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열린옷장의 문을 연 순간, 그것은 착각임을 깨닫게 된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열린옷장 사무실에서는 이 옷 저 옷을 권하며 대여자에게 꼭 맞는 정장을 찾아주고, 대여할 옷을 다림질하고, 반납된 옷을 정리하고, 예약 전화를 받고, 모두가 분주한 오후의 막바지를 보내고 있었다. 손님이 모두 나가도 끝이 아니었다. 정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바쁜 틈 사이로, 열린옷장 김소령 공동대표를 만나 보았다. 그녀는 왜 열린옷장을 ‘열게’ 된 것일까.

정장 앞에서 찍은 김소령 대표 사진. 수많은 정장이 걸린 행거 앞에 그녀가 앉아 있다.

특별히 어떤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살아오면서 이를테면 ‘난 어떻게 살고 싶다’ 하는 방향이 생기잖아요. 그 방향에 있는 이런저런 분야에 참여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함께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리고 운이 많이 따랐던 것도 같아요. ‘희망제작소’에 SDS(Social Designer School)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꿔나가고 싶은 사람이 같이 모여서 배우는 곳인데, 그곳에서 지금 공동 대표인 한만일 대표를 비롯해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함께 ‘열린옷장’을 시작했죠.

하고많은 프로젝트 아이템 중 그들이 정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거기 다니는 사람이 대부분 직장인이에요. 예전에 다 면접을 봤었고 면접에 대해 고민을 한 적이 있잖아요. 자연스럽게 면접을 보는 후배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나온 아이템이 정장이에요. 청년 구직자를 위한 많은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있지만 저희는 옷, 그중에서도 정장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리고 정장이 필요한 사람이 구직자뿐만 아니라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는 사람, 졸업 사진을 찍는 사람, 당장 정장이 필요한데 현실적인 이유로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단순히 옷을 기증하고 대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나를 응원하고 있음을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전하고 싶었죠.

정장에 달린 사이즈 표와 무료로 나눠주는 향수를 촬영한 사진.
옷 한 벌 한 벌에는 기증자의 이름이, 대여자에게 선물로 주는 향수에는 기증자의 마음을 담은 응원 메시지가 쓰여있다.

열린옷장의 정장에는 기증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처음에 몇몇 사람이 정장을 기증하며 옷의 사연이나 대여자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 등을 적은 쪽지를 함께 보낸 것에 아이디어를 얻어 모든 옷에 기증자의 이름을 적은 것이다. 또한 대여자에게 기증자의 메시지가 담긴 자그마한 향수를 나눠주고 있다. 열린옷장은 정장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정장, 거기에 나눔을 더하다

단순히 정장을 대여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이 모여야 하는 프로젝트인 열린옷장. 기억에 남는 기부자도, 대여자도 많았을 것이다.

사실 기억에 남는 분은 정말 많아요. 특정하게 어떤 분이라기보다는 대여하면서 동시에 기증해주시는 분, 대여하고 나중에 반납할 때 갖고 계신 옷을 기증해주시는 분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죠. 요즘에는 그런 분이 차츰차츰 많아지고 옷도 그때보다는 많아졌는데, 처음에는 옷이 부족해서 되게 난감했어요. 정장 특성상 딱 맞는 옷을 입어야 하잖아요. 단순히 XL, L, M, S, 이렇게 따질 수가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하체는 말랐는데 배가 나온 사람이라든가 유독 팔이 긴 사람이라든가, 키와 몸무게가 같다고 해서 체형이 같은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때와 장소에 따라 디자인과 색깔까지 따지면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고 많은 옷이 필요하죠. 과거에 비하면 많아졌지만 아직도 옷이 부족한 것 같아요.

옷이 부족하다며 손사래를 치는 김소령 대표. 하지만 열린옷장에는 정장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정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분에게 도움을 받지만, 간단한 수선을 비롯해 와이셔츠 세탁과 다림질은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책장에 꽂힌 세탁기능사 자격증 책이 그들의 노력과 열정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루 평균 60명 정도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한 달로 치면 천 명 가까이 되겠네요. 보통 3, 4월 9, 10월을 취업시즌이라고 생각하시잖아요. 그런데 저희에게는 일 년 내내 취업시즌이에요. 직종에 따라 모집하는 시기가 다 다르잖아요. 예를 들어 공무원이 면접 보는 시기, 간호사가 면접 보는 시기가 다 다르죠.

열린옷장에서 옷을 관리하는 모습. 왼쪽은 스타일러, 오른쪽은 손세탁하는 모습이다.
열린옷장은 세심하게 정장을 관리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의류 관리 전자기기를 이용하고 와이셔츠는 직접 손세탁한다.

분명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김소령 대표와 열린옷장의 옷장지기들에게도 특별히 보람되거나 유난히 고되던 순간은 있었을 것이다.

대여자 분들이 옷을 입었는데 진짜 멋있을 때, 진짜 보람차요. 옷을 입었을 때 본인에게 어울리는지 잘 맞는지 스스로 가장 잘 알잖아요. 그럴 때면 표정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보기에도 멋있고요. 그리고 취업에 성공한다든가, 좋은 결과를 전해줄 때 정말 뿌듯하고 즐겁죠.
그래서 사실, 즐거울 때랑 반대의 상황이 되면 참 난감해요. 오셨는데 맞는 옷이 없을 때 어렵고 당황스러워요. 옷이 급하게 필요해서 왔는데 막상 맞는 옷이 없으면 정말 난감하죠. 그런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잖아요. 지금은 이런 경우가 별로 없는데, 과거에는 종종 있었어요. 또 예전에는 팔이 조금 길거나, 품이 조금 커도 그냥 넘어갔는데 이제는 저희도 눈이 높아져서 스스로 성에 안 차요. 옷이란 게 처음 만났을 때 딱 보이는 거잖아요. 본인에게 잘 맞는 옷,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게 매우 중요하죠.

열린옷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김소령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해맑은 미소의 옷장지기들, 정장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따뜻한 미소가 오롯이 배어있다.

열린옷장을 시작하기 전 광고 회사에서 카피를 쓰고 광고를 만들었다던 김소령 대표. 그녀는 열린옷장이 그녀에게는 또 다른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일이라 고백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때와 지금이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무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을 하는 게 지금도 필요한 일이라 따지고 보면 광고를 만드는 방식과 지금 열린옷장에서 일하는 방식이 비슷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니까요. 구체적으로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한 것 같아요. 단지 지금은 아무래도 정장을 다루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옷 한 벌 관리하는 데 정말 많은 걸 알아야 하더라고요. 공부할 게 정말 많아요.

야심찬 의욕에 비해, 그녀의 바람은 다소 소박했다.

지금 공간이 좁고 불편해요. 단기적으로는 대여자가 오셨을 때 더욱더 쾌적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옷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달라지면 하는 바람이에요.

Tip
열린옷장 김소령 대표가 전하는 정장관리 비법

“정장을 너무 자주 세탁하면 안 좋아요. 드라이클리닝 그 자체가 옷에 반드시 좋은 건 아니거든요. 많이 더러워지지 않으면 햇볕에 말리는 게 좋아요.
옷을 오래 입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대여하고 입었을 때 보송보송해서 기분 좋게 입으실 수 있게요. 무엇보다 정장은 소중히 입어야 하는 옷이에요. 평상복처럼 막 입는 게 아니라 아끼는 마음으로 입는 게 중요하죠.”

옷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 잘 어울리는 정장을 입은 대여자를 봤을 때의 즐거움, 정장을 보다 깨끗하고 예쁘게 관리하기 위한 노력, 김소령 대표의 이야기는 항상 정장에서 시작해 정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끝은 나눔과 공유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 스며들기 기대하는 바람으로 맺어졌다. 모든 물건이 마찬가지겠지만, 매일매일 자신의 몸에 붙어 지내는 옷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각별한 사연의 흔적이 남아있다. 옷 중에서도 각별하고 중요한 날에 입는 정장, 정장 중에서도 열린옷장의 정장은 조금 더 특별하다. 누군가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세상에 전하는 열린옷장의 따뜻한 목소리가 그득히 담겨있다.

정장 빌려드립니다, 열린옷장
Location 서울특별시 광진구 화양동 48-3 웅진빌딩 403호
Open 월~금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
Information 070-4325-7521 www.theopenclos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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