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버스 프로젝트 | 버스는 종이 위에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놓네


지하철과 버스는 가장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이다. 이동을 도와준다는 점은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둘은 같은 점만큼이나 다른 점 또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하철은 거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며 정해진 역에서만 선다. 반면 버스는 도로의 상황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며 신호에 따라 멈추기와 가기를 반복한다. 지하철이 1과 2라는 정수만을 보여준다면 버스는 정수뿐만 아니라 1과 2 사이 무수히 존재하는 실수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어쩌면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수보다 복잡다단한 유리수와 끝없이 이어지는 무리수가 우리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에 더 가까운지 모른다.

버스를 탄 한 사람이 손에 ‘생각버스’ 책자를 들고 있는 모습을 내려다본 사진이다.
이미지 출처 : <생각버스> 블로그

버스가 들려주는 이야기

평소대로 지하철을 타려다 마음을 바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약속 장소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보다 10분 남짓 더 걸렸지만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 10분은 그냥 흘려 보낸 낭비의 시간이 아니라, 버스 창문 너머로 주변을 둘러보고 창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나를 바라보는 생각의 시간이었다.

목적지인 홍대의 한 카페에 도착해 <생각버스 프로젝트Thinking Bus Project>의 주인공 이혜림•이예연 씨를 만났다. 격월간 독립잡지 <생각버스thinking Bus>는 2012년 9월 서울 시내 몇몇 카페와 식당 등에 무료로 배포하는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격월간지 열 권과 자그마한 단행본 <버스생각> 한 권을 발행했다. 버스 번호와 키워드를 엮어 ‘472X낭만’, ‘143X노래’, ‘402X공공미술’ 등 정겨운 이야기를 버스를 통해서 전한다. 그렇다면 <thinking bus>, 이것은 어떤 잡지인 걸까.

이혜림 학교를 오갈 때 주로 버스를 타고 다녀요. 요즘에 버스에서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게 조금 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예전에는 사실 스마트폰이 없어도 잘 지냈잖아요. 버스를 타면서 발견할 수 있는 풍경을 소개하면서 많은 사람과 그것을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친구(이예연)랑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고 지금은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둘 다 인쇄물에 관심이 있었고 버스와 버스를 통해 볼 수 있는 도시의 풍경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2012년 9월에 472번 버스를 주제로 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격월로 발간하고 있어요. ‘생각하는 버스’ 또는 ‘버스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로 <생각버스Thinking Bus>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첫 시작은 저희 둘이었죠. 하다 보니 인쇄물 제작뿐만 아니라 학교 생활과 병행하며 일이 많아져서, 팀원을 모집하여 현재는 총 네 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 후로는 탄력을 받아 강연을 한다거나, 단행본을 출간하거나, 전시를 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생각하는 버스’라. 늘 곁에 있지만 그저 이용수단으로만 여겨 왔던 ‘버스’라는 소재에 이들이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혜림 제가 2011년에 런던을 다녀왔어요. 런던의 명물인 빨간색 이층 버스를 실제로 처음 봤죠. 그 버스는 런던을 대표하는 상징이잖아요. 서울시도 2004년 버스 체계를 개편하면서 버스가 총 네 가지 색으로 나뉘었거든요. 런던과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도 버스가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예연 버스는 도시의 곳곳을 다니잖아요. 그리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늘 친숙하게 타기 때문에 그 안에 재미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생각버스의 두 주인공 이혜림, 이예연 씨가 밝게 웃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이자 공동 작업자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두 사람이다.

버스의 이야기가 종이 위에 실리기까지

지금은 ‘읽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읽을 게 너무 많아서’ 문제인 시대다.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그 작은 화면에 글, 사진, 영상 가릴 것 없이 온갖 종류의 정보가 쏟아진다. 그 사이 종이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기는 모습보다 밀어서 화면을 넘기는 모습이 익숙해진 지금, 그럼에도 두 사람이 종이를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예연 지금은 콘텐츠를 전달하는 방법이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해졌잖아요. 그럼에도 저희가 2차원의 매체인 인쇄 매체를 통해서 저희의 이야기를 전달한 이유는 저희 둘의 전공(혜림 씨는 서양화, 예연 씨는 시각디자인 전공이다)과 관련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저희는 요즘 버스에서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만 바라보는 게 조금 아쉬웠어요.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볼 수 있는 밖의 풍경이 정말 많잖아요. 많은 사람이 버스에서 저희의 잡지를 여행 지도처럼 펴서 서울의 아름답고 개성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으면 해요.

이혜림 씨가 생각버스 잡지를 펼친 모습이다. A4용지 정도의 종이 네 장이 붙은 정도의 크기다.
잡지를 다 펴면 이렇게 넓어진다. 각 호에는 버스 노선과 노선에 따라 있는 볼거리가 소개되어 있는데 지도처럼 들고 다닐 수 있게 제작했다고 한다.

모든 매체가 그렇겠지만 인쇄물 작업이 동반되면 그때부터는 금전 문제, 편집 문제 등 실질적인 어려움이 생겨난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이들은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을까.

이혜림 사실 저로서는 제작비에 대한 문제를 가장 신경 쓰는 편인데, 저희는 <Thinking Bus>를 좋아하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의 지원과 힘을 받아서 계속 이어가자는 마음이 가장 컸어요. 작업을 시작하고서 인연을 맺게 된 분들, 기업들의 후원이나 소셜 크라우드 펀딩, 서울시의 지원금을 받아 큰 작업들을 진행하고, 그 외에도 저희가 제작한 다른 제품들을 가지고 아트마켓 등에 참여해서 이를 판매하며 유지하기도 해요. 그리고 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점이 독립 출판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지만, 저희는 그럼에도 많은 사람과의 접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나만을 위해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걸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요?
이예연 사실 인쇄할 때 경제적인 부분을 많이 고려한 것 같아요. 여행지도와 같이 꾸민 이 포스터는 제본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했고, ‘올컬러’로 하는 것도 굉장히 크기에 비해 과할 수 있거든요. 버스색깔과 검정색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색깔도 2도만 썼어요. 보통 천 부를 인쇄하는 데 일일이 하나하나 저희가 다 접었어요. 저희가 다 손으로 접어야 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아요.(웃음) 물론 배포도 직접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작은 카페라든지, 독립서점에 두곤 해요. 처음에는 직접 찾아 뵈어 부탁하는 게 많이 어색했는데 이제는 좀 익숙하고 친해져서 그래도 쉽게 하고 있어요.

버스를 이해하는 인쇄물을 만들고, 이를 다시 버스를 타고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오롯이 버스에 의한, 버스를 위한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거친 이들, 직접 다양한 버스를 타면서 겪은 일 중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순간도 많았으리라.

이혜림 아주 초창기에 처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기업의 이름을 틀리게 써 넣은 거예요. 이미 인쇄를 끝내고 일부 지역에 배포까지 마친 상태에서 이걸 발견했죠. 어쩔 수 없이 다 회수하고 다시 새로 인쇄를 했어요. 그 사건 이후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경우에서 오〮탈자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이예연 정확히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버스 마니아’ 분들이 계시잖아요. 저희도 버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분들은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어떤 노선이 어디를 지나는 건 기본이고 버스의 차종, 연식까지 다 외우고 계시더라고요. 그분들이 많은 관심을 주고 계세요. 그리고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요. 한 번은 저희가 심야버스를 취재하러 새벽에 심야버스를 탔는데 한 분이 저희에게 되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셔서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어요. 블로그랑 페이스북에 댓글도 정말 열심히 달아주세요. 항상 많은 관심을 주시니까 저희로서는 정말 감사하죠.

생각버스가 발간한 잡지와 책자들. A4 용지가 접힌 크기의 격월간지가 왼쪽, 여권 크기의 하늘색 노트와 같은 책이 소책자다.
현재까지 10권의 격월간지와 <버스생각>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한 <생각버스 프로젝트>다.

현재 시즌2를 준비중인 둘은 앞으로 계속 서울과 버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생각버스>의 블로그(http://blog.naver.com/thinkingbus)와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thinkingbus?fref=ts)에서 과월호와 무료 배포처 등 더 많은 정보를 볼 수 있다. 또한 9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서교동 상상마당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제 5회 KT&G상상마당 ABOUT BOOKS : INDEPENDENT BOOK MARKET’에서도 <생각버스>를 만날 수 있다.

이 가을, 버스 타고 떠나볼까
‘생각버스’가 추천하는 버스노선

서울의 예술을 만나다, 402번 버스(이혜림 씨)
<생각버스>에서 공공미술을 주제로 402번을 버스를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최근에 어느 정도 크기 이상의 건물 앞에는 공공미술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이 생겼어요. 이 버스를 타면 서울 곳곳의 공공미술을 볼 수 있어요. 걸어 다니셔도 좋지만 버스를 타면서 서울의 공공미술을 보면 어떨까 싶어요.

성장하는 가을을 느끼다, 406번 버스(이혜림 씨)
406번은 제가 좋아하는 버스인데, 순환버스라 어디에서 타도 뱅글뱅글 순환해요. 이 버스가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삼청동, 명동, 경복궁 등 제가 좋아하는 장소를 다 가거든요. 미술관도 지나고 남산 앞도 지나는 아주 문화적인 버스에요. 미술관을 돌면서 여유를 즐기고, 남산 앞의 빨갛고 노랗게 물드는 산을 보고, 경복궁을 거닐면서 가을을 즐기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경복궁 안에 있는 큰 은행나무가 아주 멋지거든요. 저는 매년 그 나무를 보러 가요. 가을은 성장의 계절인 것 같아요.

일상 속 여행, 7022번 버스(이예연 씨)
저는 7022번 버스를 좋아해요. 작년에 출퇴근하면서 자주 탔던 버스예요. 경복궁을 지나고 부암동으로 간 다음 고개를 넘으면 나무가 정말 많아요. 산 근처라서요. 마치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아무 생각 없이 밖을 보거나 안에 탄 사람 구경하는 게 참 흥미로워요. 특히 맨 뒤에 앉으면 버스 방향에 따라 사람의 몸이 똑같이 움직이는 걸 보면 정말 재미있어요.

생각버스의 두 저자가 손에 잡지와 소책자를 들고 카메라를 보고 있다.

<생각버스>를 소개하는 글 말미에 이런 이야기가 쓰여있다. “내가 자주 타지 않는 노선의 어느 정류장에 나에게 꼭 맞는 카페가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자주 내리는 정류장에서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내가 가고 싶었던 값싼, 심지어 공짜 여행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 그 중에서도 서울에는 맛있고 재미있는 곳이 넘쳐나니까요.” 아주 가끔은 평소에 타지 않던 버스를 무작정 타보자. 새로운 서울의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른다. <생각버스>가 당신의 편리하고 소소한 낭만을 꿈꾸게 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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