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국 | 80년 헌신의 삶, 그녀의 뻔하지 않은 선택


‘의사’ 하면 흔히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다. 드라마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을 겪으면서도 동료와 연애를 즐길 수 있는 상황, 거기다 만만치 않은 듯한 경제적 수입까지. 그러나 여기 드라마 속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사가 있다. 바로 홀트일산복지타운의 대모 조병국 선생이다. 약 60년을 의료에 헌신한 선생에게는 의사 특유의 냉철함도, 부유함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모두를 포용할 것 같은 친할머니의 푸근함과 수수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조병국 선생이 수수한 옷차림으로 자리에 앉아 자세를 취하고 있다. 80이 넘는 나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선생은 정정하고,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수수한 옷차림의 그녀는 80이 넘는 나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정하고, 힘이 넘쳤다.

그녀가 의사가 될 즈음의 시절, 당시의 의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부유해질 수 있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기꺼이 박봉을 받으면서 약 6만 명의 입양아들을 보살핀 것이 바로 조병국 선생이었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역시 예상대로 따뜻했다. 홀트일산복지타운에 2시간 걸려 도착한 노고도 손주처럼 맞아주는 선생의 인품에 잊을 수 있었다. 선생의 방 곳곳에 놓여있는 약 60년간의 추억들에서도 이러한 선생의 인품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유리구슬 안에 들어있는 입양아 사진과 박스를 가득 채운 앨범들, 그리고 입양아와 그의 가족들에게서 온 수북한 편지들은 선생의 인생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검은 테이블 위에 유리 구슬이 놓여 있다. 구슬 안에는 조병국 선생이 한 어린 아이를 돌보는 모습의 사진이 들어 있다.

이렇게 평생을 입양아들을 위해 헌신한 조병국 선생.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지금의 청년들에게 그녀는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어할까.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 스펙을 위한 봉사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로 인해 진정성을 잃어버린 청년들의 실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자립심 부족한 청년들에게

조병국 선생이 먼저 지적한 것은 ‘자립심’ 없는 청년들의 세태였다. 어릴 때부터 학원에 의존하고, 대학까지 부모의 치맛바람에 놀아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선생의 손자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내 손자가 어느 날 엄마한테 그랬대. 학원 보내달라고. 학교 수업하는데 선생이 ‘이 부분은 학원에서 배웠겠지’라면서 넘어갔다는 거야. 그날부터 결국 학원을 보내긴 했는데, 착잡했지. 학교만으로 교육이 완성되지 못하니 말이야.

그렇다면 그녀는 교육적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전쟁의 상처가 아문지 얼마 되지 않고, 여성교육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음이 분명한 시절이었다. 1950년대에 연세대 의예과를 졸업한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나는 중학교 다닐 때부터 동생들 데리고 서울과 평양을 오갈 정도로 용감했지. 전쟁도 겪고 말이야. 물론 대학 다니는 것은 아버지가 반대를 했었지. 그래서 나 혼자 아르바이트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줬었어. 그러니 이걸 또 어떻게 말리겠어.

10여년 전 해외 장애입양아들과 그들의 가족을 초청하는 행사에서의 조병국 선생. 검은 머리에 깔끔하게 차려 입은 선생의 양 옆에는 곱게 한복을 입은 해외 장애입양아들이 있다. 이들은 국내의 장애아동들보다 자립심이 강한 편이다.10여 년 전 해외 장애입양아들과 그들의 가족을 초청하는 행사에서의 조병국 선생. 선생은 입양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지만 자립심을 길러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학창시절 일제강점기와 전쟁, 그리고 피난의 과정을 거친 선생은 나라는 정체되어 있을지라도 배움에 있어서 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평소 과학을 좋아했었다는 선생은 교원생활을 했던 아버지에게서 물리와 화학을 배웠다. 또한 영어에 대한 관심도 못지않아 대학에 가서는 교수님을 통해 소개받은 미군과 그룹 스터디를 통해 회화를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YMCA에서 주관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도 참여하여 전차표를 받는 등 욕심 많은 대학생이었다. 앞길을 가로막는 벽이 될 수 있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선생은 ‘자립심’을 잃지 않고자 스스로를 부던히도 채찍질해 왔다.

부족했던 당시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원천으로 ‘자립심’을 손에 꼽은 조병국 선생. 하지만 이렇게 자립심이 강하면 일에 있어서도 독립적이고 냉철해지게 되는 법. 게다가 그녀는 수시로 이성적 판단을 해야 하는 의사다. 소아과 의사로 서울시립아동병원과 홀트의료원에서 수많은 입양아들을 진찰했던 선생은 냉철한 의사였을까, 아니면 인자한 의사였을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아이들

타인에게 냉철했을진 몰라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따뜻했던 선생이었다. 간호사가 라디에이터에 잠깐 빨래를 올려놔도 사정없이 던져버렸지만, 수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후원한 그녀였다. 이렇게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은 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됐고, 수십 년 후 다시 돌아와 선생을 찾게 되었다. 찾아온 아이들 하나하나를 반갑게 맞이했던 선생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1. 뇌성마비 의사 영수씨
뇌성마비를 갖고 있던 영수 씨. 그는 9살 때 선생에게 오게 되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가정은 그를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난했던 그 시절, 보육원에선 그를 수술시킬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결국 어린 그의 재활을 위해 ‘벽 보고 서 있기’와 같은 힘든 자세를 시켜야 했다.

10살이 되던 해, 그는 미국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 그로서는 체계적인 재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지내는 것이 다행이었을 것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도 달라서 양부모를 비롯하여 누구든지 그를 도우려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그는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의사가 되었다. 그도 그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된 것이다.

앨범 안에 영수씨의 사진과 보도사진이 있다. 뇌성마비였던 그는 미국으로 입양되어 의사가 되었다.실제 언론에 보도된 영수 씨의 모습. 뇌성마비였던 그는 미국으로 입양되어 의사가 된다.

이렇게 성공한 그는 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선생과 다시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선생이 일하고 있는 곳이자 자신이 자랐던 복지원에서 봉사를 하던 그는 그곳의 자원봉사자와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고, 어렵사리 딸을 얻었다. 딸의 이름은 간단하게 지었다. 복지원의 이사인 말리 홀트 씨와 조병국 선생의 이름을 딴 ‘말리 병국’이라고.

# 2. 쌍둥이의 고아 어머니
하지만 잘 되는 경우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루에 10장이 넘는 사망진단서를 끊어야 했던 선생은 정신적으로 온전할 수 없어서,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교수와 상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은 당사자야말로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쌍둥이의 어머니였던 입양아를 소개하였다.

고아원에서 살았던 ‘맹맹이 언니’로 불렸던 한 입양아는 냄새를 맡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통원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선생과 친해지게 되었다. 독립을 할 나이가 되자 그 소녀는 선생의 집에서 베이비시터 일을 하며 지내게 되고, 완전한 사회적 독립이 필요했었기에 선생의 도움으로 미용실 보조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글을 깨우치지 못하여 자격증 시험까지 따지는 못하고, 한 기술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소녀의 고통은 자신이 고아였던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서를 자주 들락날락했던 남편에 쌍둥이까지 임신하여 빚이 엄청나게 늘어났던 것이다. 선생의 도움으로 입에 풀칠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병으로 죽게 되었다. 이런 압박이 몰려들자 쌍둥이를 입양 보내는 것까지 고려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선생과 주변의 도움으로 근근이 버틸 수 있게 되고, 쌍둥이도 착실하게 자라 은행에 취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결말은 해피엔딩이라 볼 수 있겠지만 그 과정이 당사자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이다.

# 3. 수많은 이야기가 담긴 선생만의 앨범
조병국 선생이 앨범 속의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선생의 박스 안에는 세계 곳곳에서 입양아들이 보내온 사진과 편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앨범 속 사진들, 그곳에 담긴 추억들을 찬찬히 펼쳐 보여준 조병국 선생. 선생의 박스 안에는 세계 곳곳에서 입양아들이 보내온 사진과 편지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많은 앨범들 중 몇 권을 펼쳐보았다. 사진들 중에는 외국인 가정에서도 잘 어울려 지내고 있는 한국 입양아들의 모습과 그들이 보낸 편지가 눈에 띈다. 이처럼 선생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입양아와 그 가정들과 인연을 맺어와 그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다.수많은 앨범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한 몇 권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입양아와 그 가정들과 맺은 인연은 하나하나 간직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와 같은 선생의 이야기들은 앨범 속에 고이 간직되고 있었다. 이 이야기들이 하나의 앨범에 담아내기는 부족하여 여러 권에 쌓아둔 것이 어느새 한 박스가 가득 찰 정도였다. 영수 씨의 사진과 기사, 이야기가 담긴 것부터 전 세계의 입양아들이 보내온 사진과 감사편지로 가득했다. 이뿐만 아니라 같이 입양아들을 도왔던 후원인들과의 인연도 앨범 속에 간직되고 있었다.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의 봉사

선생은 후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봉사에 대한 인식에 대해 꼬집었다. 수많은 후원인 중에는 40년 동안 지원을 아끼지 않던 할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남편을 여읜 후 삶의 의미를 되찾고자 시작했던 봉사활동이 어느새 40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8시간의 무료 서류정리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도 위탁모까지 도맡았던 할머니는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후에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1년에 한 번 적금 만기가 될 때면 그 돈을 홀트재단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스토리는 비단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었다. 해외 각지에서 수 십여 년간 후원을 지속해온 사람들은 많았다. 수단이 아닌 봉사, 그 자체로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러한 봉사의 삶을 살고, 다른 사람들을 지켜본 선생은 봉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에 친구가 손자를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봉사시간이 필요하니 채워달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딱 거절했지. 그 후로 그 친구랑은 절교하게 되었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런 꼴을 내가 못 보고 다니니깐 후회는 없지. 요즘에도 봉사하겠다고 여기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은데 봉사는커녕 휴대폰 만지고, 딴짓하고 시간만 때우고 가기 일쑤야. 그러면서 어떻게 봉사를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어. 봉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거지, 단순히 스펙 쌓기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거야.

선생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와 사인. 왼쪽은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는 제목의 책 표지로, 아기를 안고 있는 조병국 선생의 옆모습 사진이 책 표지로 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책 내지에 사인한 그녀의 글귀. ‘오늘의 만남을 축복하소서’라는 글귀와 ‘홀트일산타운 조병국’이라는 그녀의 자필이 쓰여 있다.선생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와 사인. 아쉽게도 책은 절판되어 서점에서 만나기 힘들다.

평생을 헌신의 삶을 살아온 선생에게 봉사를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단순히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활용되고,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보여주기’ 식의 봉사활동에 일침을 놓으신 것이다. 돌이켜보면 진정성 없는 봉사는 누구에게나 피해만 줄 뿐이다. 그 자신마저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제는 이런 진정성 없는 봉사활동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삶이란 고되고 힘든 법이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내미는 온정의 손길들이 더해질 때 결국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기 마련. 그리고 따뜻해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온전한 진심으로 누군가를 위해 살아온 삶이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조병국 선생은 60년의 의사 생활로 몸소 증명해 보였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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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멋지신 분이네요~ 여성의사인것도 멋지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것도 멋지고 정말 멋지다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 윤수진

    우와... 정말 멋진 분이신듯해요... 본받을 점도 정말 많으시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분이시네요 ㅎㅎ 재미있고 멋지게 풀어주신 기자님 감사합니다~~
    댓글 달기

    송종혁

    감사합니다~ 수진 기자님도 본받아서 따뜻한 세상 만드는데 도움주셨으면 좋겠어요~_~

  • 메모리

    선생님 도서가 절판되었군요..
    예전에 꼭 구매해야지..하고 잊고있었는데..
    정말 존경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참 선생님이세요.
    의술을 제대로 쓰시다 가시는 날 온 국민이 울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댓글 달기

    송종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대학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꽤 남아있었으니 참고하세용~

  • 김율화

    자신이 가진 능력을 통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오신 선생님의 모습이 멋있네요. 저도 저렇게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있는,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기사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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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혁

    감사합니다~ 율화기자님도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한다면 정말 멋지겠어요:)

  • 이유진

    에피소드 중심으로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보여주셔서 책 한 권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대학 진학부터 복지재단에서의 봉사까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일들을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모습 오래도록 보여주시면 좋겠네요.
    첫 인터뷰 기사 잘 읽었어요 기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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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혁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 됐길 바래요:) 선생님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소에 조금씩 봉사를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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