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 국경의 요람을 넘다

여행작가 태원준이 어느 카페의 벽에 부착된 갈색 소파에 앉아 인터뷰이를 바라보고 있다. 흰 티셔츠를 입고 있는 태원준 옆에는 ‘국경의 요람을 넘다 / 여행작가 태원준 / 2013년 10월 19일, 마포역 café 4°C’라고 쓰여 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와 늘 함께한다. 아이에게 어머니란 보살핌 속에서 커가는 존재이자, 성장하면서 떠나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여행작가 태원준의 특별함은 거기에 있다. 자신이 떠나왔지만, 동시에 품어야 할 존재인 어머니와 함께 국경을 넘었다는 점이다.

‘일단’으로 시작하여 ‘해피 엔딩’으로 끝난 여행

한 권의 책이 나왔다. 여행의 기록을 책으로 만나는 건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만 어딘가 들여다보게 되는 책 한 권이 나왔다. 어머니와 함께 세계를 누비며 기록했던 책,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가 그것.

책의 주인공은 어머니의 환갑잔치 대신 여행을 선택한 용감한 사람, 태원준이다. 환갑의 연세에 그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아들과의 세계 일주에 흔쾌히 나섰을까. 그녀도 처음엔 안 간다는 뜻을 분명히 했지만, 어머니의 음식점에 찾아가 서빙 하는 일을 하며 꾸준히 설득한 아들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의 허락이 떨어진 후 그는 여행에 대한 설렘을 함께 나눴다. 가게 TV에 은근슬쩍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말이다.
세계일주를 하며 어머니와 함께 촬영한 사진들. 왼쪽 사진은 어느 폭포 앞 모래 사장에 앉아 폭포를 바라보고 나란히 앉은 태원준과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이고, 오른쪽 사진은 어느 수목원 같은 공간에서 어머니와 함께 거울에 비친 모습을 찍은 태원준의 사진이다.

어머니가 힘들어하시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계획할 때뿐이었어요. 떠나기 전에 어머니가 받으신 건강검진 결과도 정상으로 나오고, ‘이제는 무조건 가는 겁니다’ 하고 조금씩 걱정을 거뒀던 것 같아요. 어머니도 여행을 즐기셨기 때문에 고생이 아니라 보고 느끼는 것이 더 많은 여행이 되었어요.

친한 친구와 여행을 가도 다투기 마련이라는데, 어머니와 아들은 국경을 넘었다. 우여곡절도 많고, 모두 나열할 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한 여행이었다고 하는 그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어머니와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해외여행 중 촬영한 태원준의 어머니 사진. 길거리 카니발이 열리는 듯한 왁자지껄한 사람들이 가득한 어느 길거리에서 그의 어머니가 남색 티셔츠와 흰색 바지를 입고 한 손에는 장난감 물총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브이를 그리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이미 물총놀이를 매우 즐긴 듯 티셔츠에는 흰색 물이 여러 방울 튀어 있다.

저는 어머니하고 매우 친해요. 친구처럼 지내는 정말 편한 사이거든요.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것보단 수평적인 관계로 지내는 것 같아요. 학창시절 풀지 못한 일에 대해 상의를 많이 드리고, 어머니는 좋은 답변으로 길잡이가 되어주셨어요. 이젠 지금 이대로만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어머니와 각별한 사이인 그는, ‘공부해라’는 말보다 ‘재미있다면 계속 놀아라’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가르침을 꺼냈다 . 커다란 울타리로 가두기보단 더 넓게 품어준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딱딱하고 수직적인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닌, 그야말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고 처음 2주 동안엔 어머니에게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썼어요. 어머니를 보필한다는 입장이었죠. 여행을 하면서 제가 기대했던 점과 걱정했던 점 모두는 바로 어머니였어요. 사실 여행을 오래 못할 것 같단 생각을 했지만, 어머니께서 또 저와 함께 계속 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어요.

중국, 동남아시아 정도만 계획했던 여행은 더 멀리 나아가 유럽까지 닿는다. 300여 일의 시간 동안 그들은 매 순간 일어나는 새로운 상황과 환경을 마주했다. 어머니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간 속에서 그는 어머니와 다투기도 했지만 이를 봉합하여 다시 나아가 더 멀리 갈 수 있었다.

그의 사전에 여행은 ‘현재진행형’

여행작가 태원준이 카페 테이블 앞에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을 두 컷 연속해 보여주는 사진. 그는 테이블 위에 두손을 모으고 잡거나 혹은 무언가를 설명하듯 두 손을 펴 보이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주중에도 떠난다. ‘일’이긴 하지만 국내의 명소를 구석구석 취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어머니와의 여행이 각별했지만, 그에게 있어 ‘여행’이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은 더욱 특별하다.

학생 때도 여름방학이 끝났지만 여행지에서 1주일 더 머물기도 했고, 수강신청도 해외에서 했어요. 현실에서의 일은 현실에서 해결될 일들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죠. 우선은 여행을 가고자 하는 용기와 시간을 내는 것이 더 힘든 일이잖아요. 꿈꾸는 이상은 자기 자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거니까 후회 없는 선택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는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것들은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무한하다고 했다. 여행을 하면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즐기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점, 그리고 그때마다 떠오르는 감흥들로 긴 여운을 갖게 되면서 현실에서 잠시 잃게 되는 것을 보상받는 것은 언제나 그에게 고마운 일이라 그는 말한다. 포기한 시간만큼 더 많은 것을 얻는 여행의 시간이 소중한 것처럼 말이다.
인도 같은 동남아의 어느 나라에서 길거리에 놓인 소파 위에 앉아, 네 명의 어린 아이들과 나란히 앉은 태원준이 활짝 웃고 있다. 아이들 또한 그를 바라보거나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춘의 특권은 별 거 없는 것 같아요. 건강한 자기의 몸뿐이죠. 가진 것이 많지 않으니 잃을 것도 특별히 없다고 생각해요. 덤벼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밑져야 본전인 시기라고 생각해요. 뭘 해도 어떤 분야든 관계없이 아무 걱정 없이 덤벼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지나온, 혹은 지나가고 있는 시간들 속에는 무모하리만치 대담한 용기가 있었다. 그 용기는 마음먹는 대로 되든 되지 않든, ‘첫발’을 내딛는 시도의 중요성을 가르쳐줬다.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후회할까 시작하지 못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일은 그에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태원준이 해외여행을 하며 촬영한 사진들. 왼쪽 위 사진은 이집트 다합의 바다에서 현지인들이 납작한 요트를 타고 그 위에서 한 명이 다이빙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어느 바닷가에서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배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석상을 촬영한 사진. 왼쪽 아래 사진은 싱가폴 해안가의 어느 마을을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이다. 삼각형 모양의 마을이 바다와 맞닿아 있어 독특하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몬테네그로 코토르 사진으로, 화려한 건물이 서 있고 거기에서 불빛이 나와 밤하늘을 향해 쏘고 있는 풍경이다.

자기 자신을 건너는 방법

그는 한 인터뷰를 통해 ‘자유로워지되 나태해지지 말라’는 말을 했다. 할 일을 미루거나 하지 않으면서 방치하는 시간을 ‘나태함’이라고 의미를 둔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소일하고 있었다.

저는 세세하진 않지만 기록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대학생 때부터 줄곧 하던 방법이 있는데요. 아침에 깨어나서 어딜 가든 자리에 앉아있는 그 짧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들을 쭉 적어요. 꼭 오늘 해야 하는 일들만요.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빨간 펜으로 지워요. 별 건 아니지만 적어두지 않으면 잊게 되는 일들을 기록해두면 그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카페에 앉아 인터뷰 중인 태원준이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네 장의 연속 사진들. 사진 속 그는 손으로 얼굴을 살짝 가리며 웃고 있고, 손을 뻗어 누군가를 가리키듯 손짓하고 있으며, 마시고 있던 테이크아웃 아이스 용 커피잔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다.
항상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는 어머니와의 세계 여행을 통해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기억 속에서 남겨진 아버지에 대한 후회는 잔상에 맺혀있다.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고 보내드린 것 같아 후회가 많이 남아요. 여행을 다닐 때마다 좋다, 멋지다, 부모님과 와야지 하면서도 어릴 땐 매번 혼자 여행을 했었거든요. 어머니랑 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도 어머니가 건강하실 때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했거든요. 떠나면 후회하게 된다는 말에 공감해요. 아버지가 살아 계셨더라면 꼭 여행을 갔을 거예요.

돌아가신 아버지와 여행을 가지 못한 후회는 남았지만, 아버지의 소중함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기억하는 그의 여행마다, 길을 잃을 때 그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손을 내미실지도 모른다.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소중함은 늘 중요한 것이다.

자유를 즐기기 위해선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불특정 다수일지라도 내가 얻고 싶은 것 때문에 피해를 주고 싶진 않아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해요. 상대에 대한 존중,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은 자유롭지만 꼭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낯선 곳으로 몰아넣는 ‘자유’지만, 그 자유를 권리처럼 누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조심스러움’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태원준. 그가 삶에서 규격으로 세운 최소한의 예의야말로 여행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내디딜 두 번째, 세 번째 발걸음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태원준이 그의 책 앞 페이지에 독자에게 남기는 메시지를 쓰며 사인을 하고 있다.

용기는 온전히 자신만이 만들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자기 용기로 첫발을 내디뎠으면 좋겠어요. 잃을 것이 없는 시기인 만큼, 젊은 시절에 부딪히고 넘어지는 경험들이 나중엔 꼭 써먹을 수 있게 될 거예요. 내딛기만 한다면 그 모든 것이 자기 자신에게 시간이 걸릴지라도 돌아오거든요. 무엇을 꿈꾼다면 망설이게 되는데, 첫발을 내디뎌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은 항상 남아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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