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양 | 당신이라는 런웨이

사진_이유진/제19기 학생기자(세종대학교 역사학과)
사진 제공_모델 김지양

165cm에 88사이즈. 아직 그녀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런데 모델이라고?” 그리고 다시, 그녀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나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렇게 예쁜데 88사이즈라고?” 세계 최대 규모 플러스사이즈 모델 패션쇼 “풀 피겨 패션 위크(Full Figure Fashion week, FFF)” 2010년 데뷔. 미국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 플러스사이즈 모델 온라인 투표 991명 중 8위. 미국 캐러비안 패션위크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장식한 최초의 동양인. 모두가 그녀, 모델 김지양이다.
모델 김지양 씨가 바닥에 엎드린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에 머리를, 오른쪽에 다리를 둔 방향으로 엎드려 팔은 바닥에 붙이고 다리를 위로 들어 살짝 꼬았다. 2010년 세계 최대 규모 플러스사이즈 모델 패션쇼 “풀 피켜 패션 위크”에서 데뷔한 모델 김지양이다.

제1막,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2010년 초, 한 케이블 채널의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무엇을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 건지, 스스로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1차 서류심사를 통과한 그녀는, 2차 비키니 심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어쩌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의 기분, 그 순간을 잊지 않았다.
김지양 씨가 촬영 중인 사진 스튜디오의 현장 모습. 흑백의 멋진 화면 안에 포즈를 취하는 김지양 씨와 그녀를 향해 사진 카메라, 영상 카메라를 들고 작업에 열중하는 스텝들이 보인다.

2차에서 떨어지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해볼 수 있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당장 키가 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극심한 다이어트로 한순간에 아주 마른 몸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내가 설 수 있는 무대를 알아보는 중에, 미국의 FFF를 알게 된 거죠.

FFF week는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플러스사이즈 모델 패션쇼다. 그만큼 FFF week의 런웨이에 서는 과정도 매우 까다로웠다. 그녀는 오디션을 보기 위해서 1차적으로 워킹 동영상을 포함한 개인 프로필을 보내야 했다. 프로필 사진을 찍고, 모델 에이전시에서 한 달 동안 워킹을 배워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잠이 오지 않던 밤 새벽 세시. 메일함을 열었다. “Congratulation!”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확인하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예매하려고 하는데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그렇게 큰돈을 한 번에 써본 적이 없었으니까! 또, 오디션을 볼 동안 필요한 숙소나 생활비도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으니 스스로 감당할 수 있으면 오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고민이 됐죠.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동안 모아뒀던 1,500만원, 전 재산을 들고 무작정 미국으로 간 거예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오디션에 통과했다. 오디션을 통과한 모델들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각 런웨이에 채택된다. 사흘간의 패션위크 동안 열 개에서 열두 개 정도의 런웨이가 펼쳐지는데, 그녀는 총 6개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무대로 걸어나간 그녀에게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토록 원했던 순간인 만큼, 또, 모든 것을 쏟아 준비했던 순간인 만큼 첫 런웨이는 너무나 찬란하고 황홀했다.

제2막, 넘어져도 괜찮아

‘하고 싶다, 행복하다.’라는 이유 하나로 내가 마주한 일에 온 힘을 다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행동이나 생각에도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듯해서, 이미 하고 있는 일-그 일이 실패로 끝마쳐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더욱-을 벗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은근히 답을 정해놓고, 그녀에게도 물어보았다. “새로운 일을 도전한다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요?”

새로운 일? 잘 생각해보면 누구나 처음이 있지 않나요? 그게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을 뿐이죠. 거꾸로 말하면 지금은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고요. 도전이 어려운 이유는 실패를 두려워해서 아닐까요? 애들이 넘어지면 무릎이 까지는 정도? 그런데 어른들이 넘어지면 살이 패이고, 팔다리가 부러지고. 덩치가 커지고 동선이 커져서도 있겠지만, 넘어지기 전에 이미 겁을 내기 때문도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넘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미리 겁을 내고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저는 그런 겁이 없어서, 또 안 내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던 중 티포트를 들어 찻잔에 가만히 차를 따르는 김지양 씨의 사진 두 장. 민트색 시스루 원피스, 찰랑거리는 까만 생머리, 빨간 입술의 그녀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카메라에 잡혔다.
그녀는 이제 4년 차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플러스사이즈 모델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는 활동을 하고 있다. 브랜드 베네통 코리아와 아메리칸 어패럴 각각에서 주최하는 모델 콘테스트에 참가하여 높은 성적을 얻기도 하고, 최근에는 플러스사이즈를 위한 인터넷 쇼핑몰도 열었다. 이만하면 성공한 인생. 하지만 그녀가 ‘모델’이라는 타이틀에 도전했던 시작점에서, 지금의 성장을 확신했던 것은 아니었다.

FFF week를 끝마치고 ‘이거다!’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저 당면한 과제를 해냈다는 사실이 뿌듯했던 거지. 모델 일을 시작한 첫해는 조바심이 났어요.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사진을 잘 찍지 못해서, 준비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재능이 없어서이면 어떡하지?’ 1년간 그런 걱정을 했어요. 중간에 소셜커머스 기업에 입사해 다른 일에 몰두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걱정이나 현실보다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더라고요. 그래서 틈틈이 시간을 쪼개 사진도 찍고 콘테스트에도 참가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그때 내 눈앞에 닥친 일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이걸 성공해서 유명해지겠다, 돈을 많이 벌겠다, 이렇게 목표를 무리해서 잡지도 않았고요. 그저 그때그때 내가 더 원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맞이할 뿐인 거죠.

김지양 씨의 얼굴 클로즈업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 4장. 검은 생머리를 풀고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한 모습이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제3막, 나만의 런웨이를 찾아서

제 꿈은 행복해지는 거예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 사람들에게 내 음식을 대접하는 것. 이것을 위해서는 조금 넓은 부엌이 있는 집이 있어야 하겠죠. 또, 사진기 앞에 서는 것,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것. 그래서 사진기 앞에서 오래도록 설 수 있도록 해야 하고요. 구체적으로는 10만 명이 보는, 캠페인 포토를 찍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사이즈를 불문한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게요. 이렇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내 삶을 채우는, 그런 일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어요.

그녀는 잘하는 것, 못하는 것, 하고 싶은 것, 직업, 그리고 꿈이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꿈이라는 한 방향을 두고, 좋아하는 것,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를 선택하고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이렇게 ‘언니’로서, 또 가까운 ‘선배’로서 되묻고, 충고하고, 격려했다.
인터뷰를 하던 김지양 씨가 화면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는다. 까만 생머리에 빨간 립스틱,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가 퍽 행복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모델’이라고 하면 키가 크고, 마르고 가냘픈 여자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말한다. 신체적인 한계로 인해 런웨이 위에서, 또 카메라 앞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때문에 노력의 문제를 여건의 문제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고.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선입견이나 여건들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마음속 깊이 숨겨두는 누군가에게 그녀가 말했다.

저도 그런 핑계를 댔던 시절이 있지만, 여러분께는 핑계 대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정말 좋다면 상황이 어떻든 간에 하게 되어 있어요. 반대로 핑계를 대고 있다면, 정말 좋아하는 게 아닐 수도 있는 거죠. 가슴 뛰는 순간을 맞이했다면, 어떻게 해서든 하게 되어 있으니까요. 물론 아직 그런 순간을 맞이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쁜 건 아니에요. 아직 꿈이 없다면 오기로 대신해야죠. 눈을 반짝이면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도록!

O curtain-call, No matter who you are, you’re beautiful!
모델 김지양, 그녀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죠?”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포스터 사진. 가운데 배우 주진모가 꽃을 든 채 서 있고, 왼쪽에는 아름다운 얼굴, 몸매의 김아중이 오른쪽에는 성형 전 뚱뚱한 모습을 한 김아중의 모습이 보인다.
살을 빼서, 혹은 전신 성형을 통해 인생 역전을 이룬 여자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꽤 자주 등장했던 소재이다. 예쁘면 다 된다는,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날씬하지 않다고 예쁘지 않은 건 아니라는 것. 당신이 누구든, 당신은 이미 아름답다!

럽젠Q :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죠?
객관화!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것. 내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성격이고, 장단점은 뭐고, 객관적으로 알고 있을 때 상대에게 나를 제대로 어필할 수 있어요.
럽젠Q : 성격이나 장단점은 그렇다 치고, 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알아요?
거울도 많이 보고 사진도 많이 찍어봐야죠. 내가 어떤 각도에서 잘 나오는지, 셀카도 좋고. 아! 다른 사람이 찍어주는 자리에 많이 노출되도록 해봐요. 절대 빼지 말고!
또, 스타일이 세련되면 좋겠죠. 이것저것 많이 입어보고, 이상하면 왜 이상한지를 생각해보세요. 노티나? 칙칙해? 뚱뚱해 보여? 까매 보여? 스스로 많이 스타일링 해보고 나한테 어울리는 의상이나 소품을 찾아내는 거예요.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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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녀시대의 몸매라만이 몸매야 라는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이글을 보고 힘을 낼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서양을 많이 따라하는것에대해서,영어를 열심히 배워야 하는 것에대해
    불만이 있는데 진짜 영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가 생깁니다 이유는 바로 그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지기 때문입니다.
  • 저 이분 얼마전에 TV에서 봣는데 ㅎㅎ 여기서 다시 뵙게 될줄이야!!!! ㅋㅋ 쉽지 않으셧을 텐데 포기 하지 않고 꿈을 이루신 모습 정말 멋져요!! 당당한 모습 너무 보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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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솜

    네! 저도 TV로 뵙고, 실제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저도, (쁘이V님도>.

  • 유이정

    우선 첫번째, 제목이 너무너무 좋아요. 확 끌리는 제목. 두번째, 메인 사진 어쩔!? 정말정말 훌륭합니다. 그동안의 기사들 메인 사진 중에 젤 좋은 거 같아여! 세번째, 사실 이게 맨 앞이어야 하는데 지양 모델님의 이야기 다솜 기자님의 기사 진짜 와닿아요. 세상 앞에 핑계대고 변명했던 제가 부끄러워요.ㅜ_ㅜ 마지막으로 알려주신 팁! 재밌게 잘 봤어요! 전 셀카도 많이 찍고 거울도 많이 보는 편인데.. 글쎄요.. 외모의 객관화라.. 저 그동안 주관화를 참 많이 해봐 버릇해서..ㅋㅋㅋㅋ 이 기사를 보고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있다는 것도 첨 알았고 내가 남들과 함께 행복하기 위해 꿈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여! 다솜기자님의 첫! 청춘인터뷰 기사 짱짱걸*_*
  • 이미선

    김지양 모델님은 인터뷰에서 화보를 찍으셨네요...bb 짱짱 매력녀이신 것 같아요 저도 친해지고 싶네요 :D 도전하기 위해 실천하셨다는 말씀이 정말 인상깊습니다! "Nothing will come of nothing"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다니 멋지세요! 앞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활동 기대해도 될까요!!?? 아름다우세요!!
  • 고은혜

    지금의 우리 대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셨네요. 지나치게 외양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꼭 해야 할 일은 놓치는 경우도 있잖아요. 키는 얼마나, 사이즈는 또 얼마나 이런 걸 먼저 생각하기 전에 내가 전력을 다해 원하는 가치있는 일을 찾는 걸 앞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이 몸ㅋㅋㅋ 좋은 내용 좋은 기사 감사합니당
  • 민성근

    메인사진.. 정말 좋네요 ^^ㅎㅎ 김지양씨의 말 한마디에 뜨끔하게 되네요. 그리고 자연스레 저도 되뇌지는 것 같아요. 핑계대지 말자, 핑계대지 말자. 이게 정답인 것 같아요. ㅋㅋ 잘봤습니다 다솜기자님!
  • 이유진

    아직도 가슴떨렸던 저 날이 잊혀지지 않아요 :D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언니ㅊㅓ럼 인생의 선배로서 솔직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서 재밌고 좋았어요. 그리고 다솜기자가 잘 다듬어 놓은 제목과 내용들도 정말 소중하고 마음에 듭니다 ♥좋은 기사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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