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 8년간의 세계 일주, 배우의 어깨를 춤추게 하다

상쇠의 꽹과리가 울렸다. 산산조각 난 접시들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청아하게 울리자, 조용히 밥을 먹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나 할 것 없이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어깨까지 들썩이며 흥겨운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저마다 북이 되고 장구가 되어 쿠바식 사물놀이를 완성해냈다. 실수로 떨어뜨린 접시에서 음악이 시작되는 신기한 경험. 8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그는 또 어디에서, 어떤 새로운 사물놀이를 만났을까.

해운대 옆 작은 육회집. 짠 바닷냄새가 풍기는 그곳에서 손님을 맞느라 분주한 배우 김근수를 만났다. 방금 여행에서 돌아온 듯 살짝 헝클어진 머리와 다듬지 않은 수염이 야생의 냄새를 풍겼다. 인터뷰에 앞서, “자 편하게 편하게~” 씨익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 즐거움과 여유가 넘쳤다.

방황하는 별, 연극을 만나다

시작은 키였다. ‘난 왜 키가 안 클까?’ 나름 촉망받는 축구선수였던 그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친구들을 보며 점점 움츠러들었다. 친구들이 축구 명문 포철 공고에 진학할 때, 그는 실업계를 택했다. 처음엔 친구들의 모습과 스스로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스스로 방황했지만, 이내 때 이른 자유로 승리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인력시장에서 막노동하며 모은 돈으로 국내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 그 생활만 7~8개월 이어졌다.

“하루는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과 점심을 먹는데 다들 똑같은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왕년에 이랬는데 말이지~ 내가 왕년엔 참 잘 나갔는데~’ 그 말이 너무 무섭더라고요. 이대로 살다간 그분들처럼 과거나 곱씹으며 살아갈 것 같았거든요.”

학교를 그만두고 방황으로 집 밖을 떠돌던 김근수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보다 1년 늦은 열여덟, 마산의 한 대안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나름대로 적응해 생활하던 어느 날 선생님들이 연극을 해보자는 권유를 했다. 처음엔 결사반대.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삼겹살에 소주를 사주마 약속한 선생님의 회유에 넘어가 시작하게 되었다.

“첫 작품은 <방황하는 별들>. 질풍노도 청소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에요. 전 거기서 복싱하는 반항아 역할을 맡았어요. 아이러니였죠. 그렇게 피하려고 했던 운동을 연기로 다시 만났으니까요.”

성적은 당연 꼴찌. 하지만 연극에서만큼은 혼자서 남우조연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게 되었다. 상을 받으러 무대에 올라선 순간 사람들의 박수가 들려왔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며 “이거구나!” 싶었다고. 그날부터 김근수의 입에는 늘 볼펜이 물려 있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도 끊임없이 발음 연습을 했다.

“선생님을 찾아가 극단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어요. 학교에선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극단 마산’에 들어가 선배 배우들이 대본 리딩하는 걸 지켜보고 공연 포스터를 붙이며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했어요. 정말 행복했죠.”

전국 연극제에서도 상을 휩쓸었다. 심지어 한 심사위원은 “기성 연극인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연기력을 보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입대를 앞두고 참가한 연극제에서 처음으로 상을 놓치게 된다. 그에겐 충격이었다. ‘건방짐’, 그게 이유였다.

제대 후인 2006년 9월, 연극배우들 사이에 대구-부산 MBC 합작의 여행 프로그램 < 좌충우돌 두 남자의 만국여행기 >에서 남자 MC 두 명을 뽑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오디션을 보러 간 그는 뭔가를 보여 달라는 피디의 말에 “목숨 걸고 하고 싶습니다. 죽어도 하고 싶습니다. 만약 된다면, 그땐 정말 발가벗고 춤추는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나와 버렸다. 그리고 추석 날 아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권 준비하시죠.”

여행, 그 아름다운 시간 낭비

“드디어 이 꼴통이 방송에 나오는구나. 저도 그렇지만 친척들이 더 감격스러워 했죠. 사고만 치던 아이가 방송에 나온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전 방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여행한다는 것에 설렜던 거죠.”

그렇게 오른 첫 여행길. 힘들면 힘든 대로, 신기한 것을 보면 과장된 표현을 하기도 하고, 지쳐 초췌해진 모습까지,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무엇보다 그는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 대신 억센 부산사투리를 택했다. 그게 진짜 그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첫 방송이 나가고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뭐 저런 놈이 다 있노? 단발성으로 기획되었던 프로그램은 곧 1년짜리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때 그는 인생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여행만 8년. ‘여행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경험을 하러 가는데 설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나에겐 항상 첫 경험이니까요. 종종 여러 번 파트너가 바뀔 동안 어떻게 8년이나 계속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럼 전 이렇게 말하죠. ‘나는 카메라를 보며 내가 어떻게 나올까 고민하지 않는다.’고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어떻게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고요. 그곳에서의 그 시간이 나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즐기는 거예요.”

쿠바에서의 일이었다. 실수로 종업원이 떨어뜨린 접시가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졌다. 우리나라였다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조용히 밥을 먹고, 종업원은 황급히 수습했겠지만 그곳에선 달랐다. 사람들은 그 소리가 음악이라도 되는 듯 손뼉을 치고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늘 새롭잖아요. 그래서 전 여행도 일종의 연기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보며 연기를 배워가는 거죠. 세계 곳곳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그들만의 동작, 걸음걸이, 말투, 표정을 배웠어요. 직접 그 사람처럼 걸어 보기도 하고 말해 보기도 하고. 나중에 어떤 배역을 맡게 되든, 내가 연기해 본 캐릭터를 떠올리고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여행하면서 그는 점점 사람들과 교감하고 자연과 소통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몸짓 발짓 섞어가며 사투리 섞인 억양으로 대화를 나눈다. 헐렁한 티에 배낭만 걸치고 예정에도 없던 그랜드캐니언을 횡단한다. 아무나 주는 음식을 ‘덥석 덥석’ 받아먹기도 한다. 클럽에서 막춤을 추다가 ‘행님’ 하며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중에 누군가 ‘20대 때 뭐 하고 살았니?’ 하고 묻는다면, ‘세상을 보고 왔다.’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죠. 처음엔 서른에는 책을 쓰는 게 목표였어요. 그래서 현재는 지난 8년간의 여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어요. 이번 생일에는 저에게 책을 선물하려고 했는데 조금 늦어질 것 같네요.”

행인 1부터 시작합니다

‘좌충우돌 부산사나이 김근수’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 보니 배우로서 잊혀질까 봐 가끔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지금도 그는 ‘지나가는 행인 1’을 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서울행 기차를 탄다.

“연예인이나 슈퍼스타를 꿈꾸지 않아요.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거든요. 저에겐 첫째도 관객, 둘째도 관객, 셋째도 관객이에요. 관객이 재미없어하면 그건 연극이 아닌 거죠. 나 혼자 즐거우려고 하는 게 연극이다? 전 그 생각에 동의 못 해요.”

또한 그는 틈틈이 자신이 직접 만든 연극을 무대에 올리곤 했다. 사람들은 연극을 포기한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일의 종착역은 연극이었다.

“가게를 연 것도 연기를 하기 위해서예요. 여유가 있다면 걸음걸이부터 다르겠죠. 그저 행인일 뿐인데 발걸음이 가벼운 거예요. 감독님 눈에 띄겠죠. ‘어? 저 친구는 왜 저렇게 발걸음이 가볍지? 대사 한번 해 볼래?’ 그러면서 점점 비중 있는 배역을 맡는 거죠. 그렇게 시작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한 마디로 준비가 되어 있는 거죠. 지금도 혼자 거울 보면서 대사를 읊조리고 화장실에서도 연기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연극을 상상해요.”

장래희망 ‘김근수’를 꿈꾸다

언젠가 한 초등학생 3학년 남자아이가 장래희망 ‘김근수’라고 적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가지런한 그 세 글자에 울컥 감격이 밀려왔다. 내가 누군가의 꿈이 된다니! 그에겐 새로운 시작이었다. 쫓아가려 애쓰지 말자, 닮으려 하지 말자. 김근수식 인생을 살자. 그래서 그는 나중에 자신의 묘비에 아무 말도 쓰여있지 않았으면 한단다. 그냥 “김근수” 이름 석 자로 모든 게 설명되는 사람이길 바란다고.

인생은 길이가 아닌 넓이로 사는 것. 서른하나라는 나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그는 충분히 여유롭고 초연해 보였다. 또한 스무 살의 그것과도 같은 열정과 똘끼를 가지고 있었다. 쉴새 없이 리듬을 타는 어깨와 허공을 누비는 두 손이 상쇠의 흥겨운 몸짓을 닮았다. “쨍그랑쨍그랑” 좌중을 압도하는 시원스런 꽹과리의 울림처럼, ‘좌충우돌 부산사나이 김근수’,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배우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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