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 그렇습니까? 진짜 기린입니다

사진_이유진/제19기 학생기자(세종대학교 역사학과)

소설가 박민규의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에선 이런 구절이 나온다. ‘세상은 하나의 열차다.’ 그 열차에 동승해 있는 아티스트를 만났다.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뉴잭스윙 가수, ‘그렇습니다. 진짜 기린입니다.’

촌스럽습니까? 현재입니다

희망적인 인터뷰를 위해 그는, 인터뷰 장소를 흡연 카페에서 비흡연 카페로 변경했으면 좋겠다고 전해왔다. 그렇게 변경한 상수역 부근의 카페에 그는 조심스럽게 등장했다. 가수 기린이 해온 작업은 대부분 ‘복고’로 통한다. 그의 모습 역시, 촌스럽던 시절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앨범 커버 사진이나 뮤직비디오에서 금방이라도 뛰쳐나온 것처럼 생생했다. 다른 말로는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습관이 있다는 기린은 그 습관의 유사성과 자신의 작업물의 관계를 접합했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걸 들으면서도 옛날 것과 접목시켰고, 그렇게 자신의 관심사에 꾸준하게 물을 준 결과 지금의 음악과 미술이 자라났다.

“제가 하는 음악이 그렇게 오래된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겨우 15년, 20년 전의 음악들인데 그때 당시에 유행하지 않던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인기 있었던 음악을 하려고 하는데 국내엔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올드스쿨 음악을 한다고 하면 디스코를 추며 손가락을 허공에 찌르고, 영화도 복고 영화라고 하면 대부분이 코믹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복고라고 말하면 코믹하다는 의미도 덧붙여진 것 같아요. 그래서 B급 감성이라고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독립적으로 해온 작업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다. 유명해지고 싶진 않은지, 대중성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지는 않은지. 그의 대답은 철저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가볍게 느낄 수도 있는 그의 작업 외면만으로 판단하기엔 섣부른 것들을 들을 수 있었다.

“대중성이 없다고 느끼며 만들지는 않아요. 최고 듣기 좋은 멜로디를 작업하는 건데, 일부러 대중을 등지며 B급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건 아니에요. 내 감성 그대로예요. 대중성 있는 음악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 사실 제일 어렵죠. 제일 보편적으로 보이지만, 다수의 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 어려워요. 사실 대중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요. 그러나 내 것을 포기하고 다른 많은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고 싶진 않아요.”

괴짜의 모습을 예상했는데 그는 차분하고 진지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나간다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책임감이 필요했을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민과 치열했던 과거를 조금은 투시할 수 있었던 그는, ‘예술을 한다고 해서 그 핑계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청춘을 지나고 있는 셈이었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감동받는 시기, 포괄적이긴 하지만 사소한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감동받고 느끼면서 열정을 불어넣을 수 있을 때가 청춘이라고 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청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곁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합니까? 용기입니다

그는 예술을 한다고 해서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구나 다 외롭고, 누구나 다 평범하고, 누구나 다 자기의 것이 있기에 또 모두가 특별해질 수 있는 사회라고 인식했다. 그런 와중에 바라보게 된 주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 것이 있었다.

“어떤 직업을 가져도 ‘평범하다’, 자기 분야가 아니면 ‘다르다’, 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미술 전공이었기 때문에 진로를 고민해본 적은 없었어요. 졸업할 때쯤에는 이미 졸업한 친구들이 취업하고 받은 월급을 차근차근 모아나가기 시작했죠. 어머니에게 한약을 지어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런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예술을 한다고 나태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주변의 모습을 보면서, 예술을 핑계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라는 고민은 해본 적은 있어요.”

남들이 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는 조언 또한 지겹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그게 돈벌이가 되지 못해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현실은 결국 거울처럼 지금 모습 그대로를 비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소신 있는 자신의 선택이 필요하지만 그 돌파구엔 용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다.’라고 생각하면 포기하는 것이 낫죠. 확실하게 자신 있다면 부딪히는 것이 더 좋은 확률을 가져다줄 거예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예술 장르의 친구들은 사실 시작하자마자 크게 되긴 어려워요.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 아닐까요? 자신감 있게 생각하고, 확신을 가질만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껴요. 스스로 자기 입으로 ‘전망이 없을 것 같다, 힘든 것 같다.’라는 말을 되감는 것보단 밝은 미래를 전망하고 이야기하면서 준비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자신의 미래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 사실 알면서 모르는 척 살아가기도 하고 정말 모르고 살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에 확신을 가지려면 수많은 부딪힘도 필요하고 다양한 경험도 필요할 것이다. 과거에 그는 이런 음악을 하게 되면서 ‘이 바닥에서 성공해도 딱 이 정도겠다.’ 싶은 눈금이 생겼다고 했다. 자신의 무한함에 선을 긋는 일로 인해 다양한 친구와 건설적인 이야기를 하며 생각을 바꾸려 했고,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미래에 ‘발전이라는 공장이 있겠다.’라는 믿음을, 용기가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과감히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미래는 어떨까. 과거도 미래도 다 현재라고 말한 그의 말이 강렬했다. 현재 중심으로 “지금 잘해야지 과거도 미래도 웃을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미래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제 음악이나 그림 같은 걸로 대단한 것을 하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좋아서 시작한 것인 만큼 초심을 잃지 않고 좋아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하고 싶어요. 활동하면서 느낀 건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에게서 많은 문의가 오거든요. 내 활동이 그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주고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책임의 일부를 느끼기도 하고. 나중에 그런 친구들을 많이 도와주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꾸준히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어요. 그 결과물을 통해서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도 많이 있다고 한 그는, 다른 젊은이들처럼 걱정은 있지만 지금 앉아서 걱정만 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무조건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하는 것도, 작업을 위해 쉬면서 여행을 하는 것 모두 그 시간을 후회 없이 보냈느냐가 중요하다고. 우리는 지금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

타이밍입니까? 행동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2, 3년 전부터 캐리커처 그리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미술이 하고 싶었던 꿈이 늦었다고 느낄 수도 있는 시기에 캔버스를 만난 것이었다. 노후의 취미를 위해 배우고 있는 하모니카와 캐리커처는 남들에 비해 오랜 시간을 들이게 된다. 그러나 나이와 상관없이 열정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때다, 누가 알려주는 타이밍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줄곧 끓어오르다 작은 것으로 시작한 것이 출발이었어요.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고, 어떤 식으로 발전하면 좋을지를 고민했어요. 돌이켜 보면 연쇄적으로 생긴 목표, 하고 싶다는 욕망을 행동으로 잘 옮긴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도 하고 싶다고 말씀만 하셨다면 못하셨을 수도 있었는데,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에 지금의 여가시간에 그것들을 즐기실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만 하고 있을까. 행동하는 사람일까. 타이밍은 결국 움직이는 자의 것이다. 건강한 미래는 움직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런 기린이 갖게 된 무대의 특권, 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에 대해 물었다.

“무대 위에서 보단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많은 것을 느껴요. 좋은 공연을 하고 내려왔을 때, 오늘 즐거웠는지, 반응은 어땠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공연할 땐 내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충실히 하려고 해요. 그래야 무대에서 내려와 후회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말이죠.”

외롭진 않을까. 비슷한 음악을 하는 비슷한 또래도 별로 없고, 같이 활동할만한 크루나 친구가 없어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부분적으로 느끼긴 하지만 외로움이 예술을 하는 사람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금융권 일을 하든 어떤 다양한 일을 하든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총체성은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 같았다. 감동, 외로움, 슬픔, 기쁨 같은 것들을 얼마나 더 자신이 공감하고, 남들이 공감하게끔 표현하는 것에 충실했다.

그 여정에서 갖게 되는 어떤 안 좋은 기억이나 아픈 감정에 대해, 그는 빠르게 잊으려고 노력한다. 창피했던 기억까지도 빨리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건, 해결되지 못할 문제에 고민만 하며 보내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이다. 그런 과거를 꺼내 굳이 짓누르고 아파하는 시간이 쓸모없는 것 같다고. 감정에 대한 분리수거를 빠르게 대처하는 그의 모습은 효율적이었다.

예술이 지닌 편견을 깨고 자신만의 시계와 자신만의 세계를 공유하려는 사람. 그를 정의하고 싶었지만 정의하기엔 너무나도 무한한 사람이었다. 자기 소신이 확실한 일에 대해 농도 깊은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기린이라는 이름을 어디서든 또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가 과거에 머물고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지향적이기 때문이다. 미래에서 온 촌스러움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을 지켜보는 일이 더 흥미진진해지지 아닐까, 여전히 궁금하게 된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 카토이치

    처음으로 알게된 분이네요 음악을 하신다고 하고 인터뷰 내용을 보니 생각하게 하네요 ^^
  • 민성근

    재밌게잘봤어요!ㅋㅋ 미래에서 온 촌스러움이라.. 멋지네요 말만으로도ㅋㅋ 무언가 앨범자켓만 보고서는 쾌할할것만 같은데 사진이든 말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가슴에 와닿는 진지한 이야기에 절로 끄덕이며 글을 읽었어요ㅋㅋ 나중에 더 큰 대중성을 얻으셔두 항상 지금 모습그대로 겸손한 모습이실 것 같네요. 아! 음악 한번 들어봐야겠어요ㅎㅎㅎ
  • 이미선

    좋아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는 용기는 정말 저에게 필요한 거에요ㅠ.ㅠ 정곡을 찌르는 기린씨의 인터뷰와 현동 기자님의 글이 정말 마음에 와닿앗습니다! 그런데 기린씨는 정말 복고가 잘 어울리세요!!! 인터뷰 사진의 모습이 다소 평범하고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ㅎㅎ멋진 기린씨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 고은혜

    정말 즐거워서 일하고 즐거운 맛에 사는 것 같은 멘토급 거장에게 누군가 물었대요 살면서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냐고 그랬더니 그 분이, 하고 싶은 일 하나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 열 가지를 참는댔어요 심지어 지금도.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고 행동에 옮기는 게 얼마나 대단한 용기일까요. 그 하나 하기 위해 참아야만 하는 일들이 무궁무진할 테니까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생각보다 친근한 맛이 있어서 더 좋아요. 감사합니다!
  • 유이정

    이 기사 덕분에 몰랐던 분을 알게되었어요 *_* 그것도 아주 좋은 분을!! 노래와 그림을 동시에 하시다니 멀티 플레이어적인 느낌이면서도 자신이 하는일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임하기는 분이네여 :) 하고 싶은 일은 한다며 그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죠. 미래에서 온 촌스러움, 저도 창조해내고 싶을만큼 매력적이에여! 기린님 싸인두 우왕 굳! 진짜 기린스러운 싸인!

소챌 스토리 더보기

반려동물과 함께 행복한 겨울나기!

명탐정 챌록홈즈

나를 남기는 방법, 증명영상

티끌 모아 목돈

색다른게 당겨서요

땡그랑 한푼~ 동전 없는 사회

조금 씁-쓸한 이야기

본능적으로 술잔 소장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