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영 | 미국에서 피어오르는 꿈의 포물선

농구는 70, 80년대 황금기 이후 최근까지 축구나 야구처럼 큰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여자농구의 경우 런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와 여자 배구 국가 대표팀의 올림픽 파란(4위) 등 복합적인 문제들이 중복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한편에선 새로운 황금 세대, 한국 농구의 재도약을 위해 끊임없이 코트를 달리는 유망주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번 청춘 인터뷰의 주인공 ‘그녀’는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초로 NCAA에 입성한 선수이다. 20살의 앳된 농구선수 ‘신재영’의 이야기이다.

NCAA에 입성한 최초의 여자선수, 신재영

NCAA는 미국 대학 스포츠 연맹(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의 약자로, 세계에서 제일 큰 아마추어 스포츠 리그이다. 무려 1,281개의 스포츠가 세 개의 디비전으로 나뉘어 있고, 운영되는 스포츠 종목만 해도 40여 개에 달한다. 특히 남자농구의 경우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고 불리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치 슬램덩크의 실사판을 보는 기분이랄까.) 특히 NCAA 농구는 적어도 1년은 대학생활을 해야 N프로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규정의 영향으로 그 수준이 매우 높다. 당장 프로에 데뷔해서 한 팀의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가 대학교 유니폼을 입고 뛴다는 상상을 해보라.

“NCAA는 미국에선 없어선 안 될 존재예요. 워낙 나라가 큰 만큼 어떤 스포츠든 NCAA에서 우승한다는 건 정말 큰 영광이죠.”

그녀는 현재 루이지애나 먼로 대학교 소속인데, 그녀의 소속팀은 현재 NCAA에서도 디비전 I에 속해 있을 정도의 강팀이다. 그녀의 포지션은 슈팅가드, 특기는 3점슛이다.

“1학년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2학년이 되고 나니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겼어요. 같은 운동을 하면서 알고 지내는, 또 같은 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나라도 넓고, 자란 곳도 다 다르다 보니 사고방식의 차이가 커요. 지금은 많이 친해졌고, 가족처럼 지내고 있지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죠.”

또한, NCAA는 운동뿐만 아니라 학업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성적이 안 되면 운동도 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선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스트레스이지만, 선수 생활 은퇴 후를 생각하면 본인의 전공과 적성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전공은 Marketing, 부전공은 Accounting이에요. 처음에는 Kinesiology 쪽으로 하고 싶었는데, 비즈니스 과목에 흥미가 생겼어요. NCAA는 공부를 정말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성적이 안 되면 팀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한국과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농구를 계속하려면 학업 역시 열심히 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그녀는 긍정적인 자세로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전액 장학금을 받고 먼로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생 중 4%만이 전액 장학금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자칫하면 설렁설렁 학교에 다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신재영 선수는 생각 외의 성숙한 답변을 내놨다.

“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학교에 다니고 마흔이 될 때까지 일해서 그 돈을 갚거든요. 저 같은 경우엔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책임감도 생기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크지요. 나중에 농구선수 말고도 다른 일도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해두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낮은 학년 탓에 코트에서 많은 시간을 뛰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팀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혹은 분위기 반전이 필요할 때 장기인 3점슛을 살려 경기의 흐름을 바꾸면서 팀의 사기를 높인다.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점 커지고 있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 팀 생활과 제 위치에 만족하지는 못하는 편이에요. 초등학교 때 농구를 시작하고 미국에 와서 고등학교 때까지 항상 팀에서 주전이었거든요. 그래서인지 벤치에 앉아 있으면 주전 자리가 많이 욕심나요.”

선수 생활의 원동력, 가족

현재 신재영 선수는 부모님과 떨어져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튼튼한 육체 못지않게 강한 심리가 요구되는 스포츠 선수라지만, 그녀는 이제 겨우 스무 살. 가족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듬뿍 배어 나왔다.

“솔직히 저는 마마걸이에요. 대학교 오기 전까지 엄마랑은 떨어져 본 적이 없거든요. 아빠는 한국에 계셔서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지만… 제가 어릴 적부터 엄마를 너무 좋아해서 맨날 엄마한테 딱 붙어 있었거든요. 오죽하면 엄마가 딸한테 귀찮다고 할 정도로~ 그런데 지금은 많이 떨어져 있어서 너무 보고 싶어요. 언니는 일본에 있는데 요새는 SNS로 언니한테 시비도 걸고 수다도 떨면서 외로움을 잊고 있습니다.”

그녀의 엄마는 역시 농구선수 출신이다. 바로 1984년 LA 올림픽 여자농구 대표팀 은메달 신화의 주역이자, 당대 한국 최고의 포워드였던 김화순 씨다.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일까? 그녀가 처음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엄마가 저 어릴 때 일산 스포츠센터에서 코치를 하셨거든요. 수업하는데 귀찮게 구니까 저쪽 골대 가서 슛 3개만 넣으라고, 다 넣으면 피자 사주겠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저는 피자가 먹고 싶어서 닿지도 않는 골대에 공을 던지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때 제 눈에서 독기를 보셨대요.”

사실, 아버지나 어머니가 같은 종목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선수라면, 자식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인 요한 크루이프의 아들 조르디 크루이프, NBA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센터 빌 월튼의 아들 루크 월튼 등의 2세들은 실력 면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프로무대에서 아버지가 쌓아놓은 어마어마한 업적에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으며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신재영 선수에게 어머니는 큰 존재이자 그만큼 큰 부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릴 때, 농구를 하기 전부터 엄마 따라서 체육관에 가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엄마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사람들이 저만 보면 엄마 선수 시절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 거예요. 올림픽이라는 세계무대에서 동양인이 BEST5에 득점왕까지 받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 엄마는 항상 뭐라도 대충 하는 것이 없으세요. 당신의 철학이 뭐든 ‘최선을 다해서 설령 실패하더라도 후회는 하지 말자’ 주의거든요. 아무리 제가 말을 안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안 되는 걸 되게 만드시는 코치이기도 하세요.”

그녀는 세 명의 롤모델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당연히 그녀의 어머니인 김화순 씨. 가끔 엄마가 예전 활약하던 동영상을 보며 우리 엄가가 맞냐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고. 두 번째는 NBA 보스턴 셀틱스에서 활약 중인 스타 가드 라존 론도. 그녀는 론도의 패싱 센스를 꼭 닮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롤모델은 바로 어머니에 비해 많은 이야기를 안 했지만, 항상 고마운 그녀의 아버지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어릴 때부터 모든 생활을 항상 가족 위주로 하셨어요. 부인과 떨어져서 가족을 위해 혼자 사신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건데. 아빠한테는 그저 감사하고, 존경하고 배울 것도 많고 그렇습니다.”

꿈을 향해 당당히 전진

그녀가 매일 듣는 노래 중 하나인 ‘Get Em High’에는 “멈추는 순간이 한계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정상에 갈 때까지 열심히 살자는 다짐과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자는 의지는 다진다고. 스무 살 같지 않은 성숙함이 느껴졌다.

“나라가 넓다 보니 이동 시간이 정말 길거든요. 음악은 항상 필수고, 잠도 자요. 이동 중에 학교 과제도 많이 하고요. 호텔에서 경기장으로 이동할 때는 경기장에서 제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코치님들이 써주신 Scouting Report도 읽어봐요.”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그녀의 인생 좌우명은 놀랍게도 “99%의 노력, 1% 행운”이었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자신보다 큰 선수들과 부딪치며, 외국문화 속에서 공부하며 터득한 그녀만의 삶의 철학이었다. 같은 또래의 대다수 한국 여대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삶의 진지함이 느껴졌다.

“열심히 운동해서 WKBL, 나아가 기회가 된다면 국가대표도 하고 싶어요. 저희 할아버지도 축구 국가대표, 엄마는 농구 국가대표, 제가 대를 이어야죠^^ 그런데 무엇보다 제게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서 무조건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기록에 나오는 득점이나 리바운드, 어시스트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기록도 중요한 게 농구거든요. 팀에 플러스 요인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운동과 공부,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자신의 꿈 때문에 캠퍼스 로맨스와 같은 핑크빛 무드에는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그녀. 인터뷰 내내(서면 인터뷰라 그녀의 얼굴을 볼 순 없었지만) 겸손함과 꾸밈없는 순수함이 느껴졌다.

“이렇게 저한테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고요. 멀리에서도 응원한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빨리 한국 농구장에서 뵐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 농구도 미국 농구처럼 인기 있고 성장하는 스포츠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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