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비건 지향인으로 일상을 보내는 스물 한 살 소채리의 에세이로 들여다보는 비건의 의미. 당신이 무엇을 먹든, 무엇을 하든 우리 이제 진지하게 서로의 삶의 태도를 존중합시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매우 다양하다. 나는 스물 한 살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누군가에겐 친구, 동생이자 집안에서는 막내다. 누구나 이름() 외에 수많은 수식어를 지니고 있다. 지난 4월에 나를 설명할 단어가 또 하나 추가됐다. 바로 ‘비건’이다(정확히 말하면 ‘비건 지향인’이다). 비건(Vegan)은 모든 동물성 식품과 제품을 먹거나 이용하지 않는 생활 양식으로, 현재의 날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단어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그릭 요거트였다

2학년 1학기의 어떤 교양 수업이었다. 교수님의 질문에 대답도 척척 해내고, 항상 자신의 의견을 씩씩하게 말해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이하 G라고 부르겠다). 쌀쌀한 날씨가 물러간 3월 중순 그는 고정석이던 맨 앞자리를 고사하고 내 옆에 앉았다(일종의 ‘영업’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정확한 흐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수업이 끝난 후 우리는 함께 교내 카페에 앉아 있었다.

“저는 비건이거든요. 채식주의자요.”

그가 말했다. 하루에 한 끼를 유제품(정확히는 그릭 요거트)으로 먹던 나와 비건은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친언니가 건강을 이유로 채식을 선언했으므로, 어렵지 않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난 유제품을 너무 좋아해 비건은 꿈도 못 꾼다며, 웃으면서 “대단하네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G는 평소에도 많이 들어본 말인 양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저도 원래는 우유 엄청 좋아했는데, 우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는 금방 먹지 않게 됐어요.”

우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 해본 적이 있나? 음, 없다. 초록으로 가득한 목초지에서 뛰노는 얼룩무늬의 젖소들이 때가 되면 젖을 짜내는 장면이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지니까. 이게 공정을 거치면 치즈나 아이스크림이 되는 것이려니 생각해왔다. 이러한 연상은 아마도 유제품 회사의 홍보 덕분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그가 내게 해준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사실 ‘젖소’라는 품종은 따로 없다고 한다. 사람이 임신 뒤 출산을 하면 모유가 나오듯, 소도 송아지를 낳으면 소젖이 나온다. 그러나 자연적인 소의 출산 사이클로는 어마어마한 인간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낙농업자들은 암소의 질에 억지로 정액을 주입하고 착유기로 젖을 짜내고 다시 임신시킨다. 이 과정은 암소가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수컷 송아지는 태어나자 마자 어미와 분리되고 좁은 케이지에 갇힌 채 곧 죽음을 맞이한다. 근육의 발달을 최소화해 부드러운 고기로 출하하기 위해서다. 암컷 송아지는 그의 어미와 똑같은 생을 살게 된다. 이후로도 그는 많은 이야기를 나눠줬지만, 우유에 숨겨져 있던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라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상상 속 얼룩 무늬의 행복한 젖소가 뛰놀던 푸른 목초지가 붉게 물들어갔다. 나는 다음 날 아침으로 어김없이 그릭 요거트를 준비했다. 딱 하루 분량이 남았는데, 버리기엔 아까웠으므로 그냥 먹기로 했다. 평소보다 물을 많이 탔는데도 삼킬 때마다 꿀떡, 꿀떡, 묵직하게 식도를 조여왔다.

가랑비에 옷깃이 젖듯 비건이 되다

새하얀 우유가 사실은 피고름 가득한 소젖에서 추출된 가공품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G는 가끔 비건 빵을 나눠줬다. 버터나 계란이 들어가지 않은 빵은 맛이 없을 거라는 선입견을 산산조각 낼 정도로 훌륭했다. 그의 꾸준한 정성에 나는 SNS에 ‘#비건’ 이라는 해시태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당장 채식주의자가 되겠어! 라는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고 그저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비건은 평소에 무엇을 먹고, 어떤 이유로 고기를 먹지 않는지 훔쳐보며 알음알음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알아갔다. 흥미로운 사실이 많았다.

1. 채식을 하는 이유는 엄청나게 다양하다.
보통 동물 애호가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동물의 귀여움을 사랑한다고 해서 채식을 하는 게 아니다. 개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모든 비인간 동물의 권리를 지지하고,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행동의 일환으로 비건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또 환경 보호도 채식의 동기 중 하나다. 공장식 축산은 그 무엇보다 빠르게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고 수자원을 고갈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체중 감량이 아닌 건강 관리를 위해, 그리고 신념을 위해 채식을 하는 이들도 많다.

2. 우리가 믿고 있는 육식 신화는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니다.
우유는 몸에 좋고, 고기의 단백질은 다이어트에 필수라는 것. 이는 전 세계에서 통하는 진리에 가까운 상식이었다. 그러나 모유를 먹는 시기를 지난 성인에게 우유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WHO는 붉은 고기를 2급 암 유발 식품으로, 소시지나 베이컨 같은 육가공품을 1급 암 유발 식품으로 지정했다. 인간에게 필요한 단백질의 양은 식물을 통해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3. 축산업과 낙농업의 실태는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앞서 말했듯 채식의 동기는 다양하지만 아마 그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동물권일 것이다. 공장식 축산은 최소 비용, 대량 생산을 위해 동물을 물건과 다름없이 대한다. 상품 가치가 없는 수평아리는 대량으로 믹서기에 갈려 죽고(산란계로 쓸 수 없기 때문), 부드러운 양고기를 위해 새끼 양의 뿔과 꼬리는 산 채로 잘려 나간다. 앞서 언급했던 ‘젖소’들은 임신과 착유를 반복 당하다가 걷지 못하게 돼 포크레인에 들려 도살장으로 옮겨진다. 인간의 수요를 감당해내기 위해 축산업과 낙농업은 비인도적이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SNS에는 (당시의 내가 보기엔) 다소 과격하게 비건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살면서 내가 먹어온 고기가 떠오르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고 감수성을 동물에까지 확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유순하게 말하든, 공격적으로 말하든 비건이라는 삶의 태도에 담긴 ‘현실’은 결국에 다 똑같았다. 오히려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비건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을 알고도 외면할 수는 없었다. G의 영업은 성공적이었다. 나는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페스코, 락토, 락토 오보 등의 단계적인 채식들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일단 못 먹어도 GO!’를 외치는 게 버릇인 나는 처음부터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완전 ‘비건’을 지향하기로 했다.

비건인데 비건이라 왜 말을 못 하니

처음에는 “나 비건이야.”라고 말하기가 왜 그렇게 부끄럽고 민망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완벽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앞으로 비건의 삶을 살겠노라, 단언한 후에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혹시나 고기를 먹게 될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새에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나를 별난 사람 취급하는 게 겁나기도 했다. 2019년 4월 초에 채식을 결심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이젠 동물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티냈다. SNS에 채식 식사를 올리고 #해치지않는식사, #탈육식, #비건 등의 해시태그를 걸며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다. 내 포스팅을 주의 깊게 본 듯한 소수의 사람은 “가현아, 너 고기 안 먹지.”라며 아는 체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SNS 팔로워들 중 대부분은 생각보다 내게 관심이 없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내게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말했고, 먹고 있는 치킨 사진을 보내왔다.
소중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행동들이 불편함으로 다가오자, 더욱 적극적인 공고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먼저 가까운 친구들에게 직접 알렸다. 적당한 무게감으로 “나 요즘에 채식해.”라고 말했다. 굳이 구구절절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상대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간단하게 내게 충격을 준 그 세계에 대해 말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약속에선 자연스럽게 비건 맛집으로 장소를 정했고, 나는 친구를 비건 카페로 데려가 G가 나에게 그러했듯 맛의 신세계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친구들이 먼저 유명한 (비건) 식당을 알아와, 너가 좋아할 것 같으니 함께 가자고 말해주기도 한다. 내가 소개한 비건 식당이 인생 맛집에 등극한 지인도 있다.

채식에 대해 당신이 갖고 있을 우려들

채식은 영양소 불균형을 가져와 건강에 나쁠 것이라는 선입견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미디어가 일부 극단적인 사례만 보도하며 채식을 부정적인 프레임에 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건강에 대한 걱정이 큰 진입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모든 동물성 식품을 제한하고 나서 19살 때부터 앓아왔던 난치성 위장 질환, 크론병의 증세가 호전됐다. 위장 내시경 후 담당의가 놀랄 정도였고, 추가하려던 주사 치료를 취소했다. 2년 넘게 다닌 병원에서 처음으로 칭찬을 받은 순간이었다. 그래도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면 운동하는 채식주의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를 추천한다(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또,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선뜻 채식을 시도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자취를 해서 어쩔 수 없이 가공식품을 자주 먹고, 즐겨 먹던 고기를 완전히 끊을 자신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채식은 완벽보다 지속이 중요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채식을 다짐한 지 2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치킨을 먹은 적이 있다. 최근에 우유가 들어간 초콜릿을 먹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실망하고 후회했지만 “에이, 망했네. 안 해.” 하며 그만둔 적은 없었다. 잠시 습관이 뒤틀려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된다. 비건에 유독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 위축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러나 ‘비건이라서’ 윤리적으로 무결점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채식을 통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그것이 평생을 비건으로 사는 것이든 일주일에 하루만 비건으로 사는 것이든 모두 소중한 행동이다. 그러니 완벽을 걱정해 망설이고 있다면, 나처럼 “못 먹어도 GO!”를 외친 후 일단 시작해 보길 권하고 싶다.

8개월 차 비건인 나와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당신에게

우유가 정말 행복한 젖소에게서 나오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어느새 8개월 차 비건 지향인이 되었다. 비건으로 살다 보면 수많은 내적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식()에 이전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아예 제동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 하나가 고생한다고 세상이 변할까”라는 회의감이나 “비건으로 살기 더럽게 힘드네.”라는 불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고, 누군가의 존재는 주변 사람들에게 필시 영향을 미친다. 나 때문에 비건의 필요성을 깨닫고 고기를 줄여가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준 지인도 있었다. 꾸준한 목소리는 여기저기에 닿아 울리고 당신의 음성 또한 더 큰 울림이 될 수 있다. 내가 감수하는 불편함은 누리지 못한 것들 이상의 긍정적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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