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 민주화의 성지, 천안문 광장에 가다


글,사진


광장은 너와 내가, 너희와 우리 그리고 그들이 만나는 공간이다. 광장은 열린
개념의 공간으로서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주지하다시피, 특정 개인만의 혹은
그들만의 닫힌 공간인 밀실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최근 대한민국 에서는 ‘광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치로 촉발된 촛불집회 때문이다.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미국산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청계광장, 광화문광장 등에
속속들이 모여 정부의 수입결정에 반대하는 의견을 피력한다.

역사적으로 광장이라는 공간은 민주주의, 자유 등의 개념과 궤를
같이 했다. 2500여 년 전 그리스의 ‘아고라(agora)’가 정치와
재판, 상업과 축제의 종합 활동을 담는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광장은 민주주의, 번영, 공공성 등의 개념을 잉태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이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인간상을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갖기
원하는 민중에 의해 콩고르드 광장에서 단두대에 처형되었다.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최근 한국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고, 이 밖에도 영국 내 논쟁거리가 되는
각종 사안에 대해 정치집회가 이뤄지고 있다.

이 밖에도 러시아의 붉은 광장,
이탈리아의 나보나 광장 등 각국의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정치적, 사회적 의사를 표현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훗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불꽃이 되었던 5.18 민주화
항쟁은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어 날리던 1980년 봄, 광주의 도청 앞 광장에서 시작되었다.

사회주의를 국가정책의 기본노선으로 표방하는 중국에서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소할 것이다. 원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지만
우리들은 흔히 사회주의라는 것에 있어 일당독재의 폭압적 지배체제로서 사유하고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억압받고 자유가 제한되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엄연히
민주화를 요구하는 용틀임이 있었다. 흔히들 천안문 사태라고 하는 6.4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1989년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실시 10년째로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사회주의국가에서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것은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소득격차, 관리들의 부패 등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새로운 정책기조에서 살아남지 못한 대중들은 분노를 느꼈다.

특히, 이 시기에 일어난 후야오방 전 공산당 총서기(당시 정치국 상임위위원)의
죽음은 천안문 사태를 발발시키는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후야오방은
급진개혁론자이자 1980년대 초에 여러 정치 개혁을 이룬 장본인으로 젊은
학생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그가 정치국 회의에서 보수파와 논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돌자 대학생들은 천안문 광장에 모여 후야오방의 죽음을
애도하며 생전에 그의 업적에 대해 찬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정부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내걸었는데
민주 선거,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관료들의 부패근절 등이 그것들이다. 이후,
시위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리펑 당시 중국총리는 베이징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하게 되고,
시위대 역시 ‘민주의 여신상’을 세우며 더욱 강하게 반발하자 덩샤오핑은 이를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판단,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기에
이른다. 진압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수용한 한 병원의 의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마치 도살장 같았다. 긴 의자든, 침대든, 바닥 위의 피에 흠뻑 젖은 매트리스에든, 어디나
사상자들이 널려 이었다. 대다수가 가슴이나 다리 또는 머리에 크게 총상을 입고 있었다.”
이 결과 중국정부는 사망자가 군인을 포함 319명, 부상자가 9천 여명이라고 대외적으로 발표하지만,
서방언론에서는 사망자만 수 천 여명이 될 것이라 추산했다.

2008년, 찾아가 본 천안문광장에서는 100년 전부터 개최를 염원했던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기간이라 그런지 통제가 삼엄했다. ‘인민영웅기념비’가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광장 곳곳에는 공안들이 바쁘게 순찰을 돌고
있었으며, 무장 보안요원들과 붉은 색 완장을 찬
치안 담당자들이 배치돼 있다.

현재 천안문 광장에서의 집회 및 정치적 표현은 일절 금지되고 있다. 만일 집회를 했을 경우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천안문 방문을 도와주었던 가이드는 “3대가 멸절한다”는 살벌한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 그러한 처벌을 하겠냐 만은 그 정도로 엄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대신한
표현일 테다. 그러한 정황을 전혀 몰랐던 학생기자들이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한국에서
준비해간 플래카드를 펴려 하자 가이드는 굳은 기색을 보이며 황급히 말린다. 자칫하면

플래카드에 쓰인 문구가 정치적인 구호로 오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고 19년이 흐른 지금, 천안문 광장은
대체로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행사를 개최한 중국인들의 자긍심으로 한껏
들떠있었다.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은 자금성 남문인 천안문을 구경하러와
인파를 이뤘다. 그리고 그들은 한가운데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양 옆에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인민대단결 만세’라고
글귀가 장식된 천안문 앞에서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대기에 바빴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라는 베이징 올림픽 공식슬로건 등 광장 곳곳에는 올림픽 성공개최를
기원하는 조형물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중국국기인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한 켠에서는
외국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촬영하는 모습도 발견됐다. 이제 더 이상 19년 전 수천 명의 국민이

스러져간 피로 물든 거리,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함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 민주화의 성지인 천안문 광장, 그렇게 그 곳은 세월이 지나 또 다른 의미의 공간으로
중국 국민들 곁에 존재하고 있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