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대세는 우리가 정한다! – 2006 폐인문화 속으로~













한밤중에 자다 깨도 이 메일을 확인하고, 취미는 리니지에 특기는 스타크래프트인 윤모군. 그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컴퓨터와 함께 하는 전형적인 이 시대의 대학생이다. 그런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출석체크를 하는 곳이 있으니 바로 유머사이트 ‘웃긴대학’과 디지털카메라 동호회인 디씨인사이드의 ‘스타크래프트 갤러리’.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온다”고 한다. 하루만 출석을 게을리 해도 그새

자신만 모르는 새로운 ‘놀이’가 만들어지거나 새로운 ‘대세’가 탄생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하루 30분 ‘눈팅’(게시물을 눈으로만 훑어보는 것)은 기본이요, 화제가 되는 게시물에 리플을 달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이다. 그렇게 인터넷 폐인들의 ‘놀이’는 언제나 새벽에도 현재진행형이다.



흔히 폐인을 말하면 사람들은 주침야활(아침에 자고 저녁에 활동함) 면식수행(세 끼를 모두 라면을 때움) 등 우중충하고 어두운 이미지만을 연상하기 쉽다. 그리고 대다수의 인터넷 폐인들의 생활은 그런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인터넷 폐인들은 결코 자신들을 ‘廢人(병이나 못된 버릇 따위로 몸을 망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嬖人(비위를 잘 맞추어 남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물론 내가 인터넷중독이고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컴퓨터를 끼고 사는 건 맞아요. 폐인이죠. 하지만 내가 인터넷에서 끄적거린 흔적들이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에서 오르락 거리고 즐거움을 주는걸 보면 인터넷 폐인도 무시할게 못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곤 해요. 남에게 즐거움을 주거든요.”(윤성진/동국대 2학년)
“남들은 우스개소리로 폐인이라고 놀려대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어요. 오히려 남들은 모르는 재미난 거리들을 나는 알고 있다는 자부심이나 소속감을 느끼는걸요.” (이동근/홍익대 2학년)
인터넷에서 상주하는 폐인들은 자신들을 사이버문화의 창조주라고 일컫는다. 대한민국의 사이버문화를 주도하고 대세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그들이기 때문이다.






방문자가 많은 어느 포털사이트의 게시판. 한눈에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제목의 게시물이 하나 올라왔다. 하지만 정작 클릭을 해보면 안의 내용은 제목과는 상관없는 일명 ‘낚시글’. 허탈한 누리꾼들은 댓글로 저마다 ‘낚인’ 소감을 말하기 시작한다. 거친 욕설부터 재치있고 유머스러운 내용의 댓글까지, 정작 내용보다도 댓글이 더 재미있는 새로운 놀이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은 각 포털사이트나 유머사이트로 퍼져 나가며 누리꾼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주게 된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터넷 폐인이라고 자처하는 누리꾼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단순한 놀이의 수준에서 벗어나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한 패러디물과 풍자작품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웹상의 ‘작가’들도 생겨나면서 새로운 사이버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파문놀이’이다. 이슈가 되거나 문제가 되는 기사 밑에 댓글로 짤막한 ‘파문’을 재치있게 표현하여 재미도 있지만 당사자는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촌철살인의, 네티즌들의 놀이 중 하나이다. 드라마나 영화에 광적으로 미친 사람들이 ‘폐인’을 자처하며 작품에 대한 재해석과 모니터링을 통해 제작사와 시청자들 사이의 새로운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사이버상에서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일인만큼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일명 마녀사냥으로 불리는 특정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과 개인정보유출, 사생활 침해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문제이며 이런 문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누리꾼들의 숙제이기도 하다.




지난 여름 사이버상을 뜨겁게 달군 데 이어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팀 홈페이지까지 진출했다는 ‘드라군 놀이’, 언제나 보는 이를 하여금 허탈한 느낌을 주지만 ‘낚는 재미’와 ‘낚이는 재미’가 미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되는 ‘낚시놀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열리는 촛불시위에 장난스럽지만 따끔한 풍자가 들어있기도 한 ‘파문놀이’까지. 인터넷을 타고 오는 즐거움의 양 끝에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별난 누리꾼들과 그것을 보고 즐기는 누리꾼들이 공존하고 있다. 흔히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가리켜 ‘폐인’이라고 부른다. 물론 관점의 차이겠지만 심각할 정도만 아니라면 싸잡아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그가 사이버 상에서 가히 혁명적인 새로운 대세나 놀이를 만들어 내고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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