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앞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 ‘그날이 오면’

서울대 생들은 서점 ‘그날이 오면’을 ‘그날’로 줄여 부른다. ‘그날’ 이라는 애칭에는 15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켜온 것에 대한 서울대 학생들의 애정이 담겨 있다.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점 ‘그날이 오면’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88년도 초. 1993년, 지금의 서점 주인 김동운 씨는 그의 부인인 유정희 씨(현 관악구의회 의원)와 함께 서점 운영을 맡게 되었다.그가 ‘그날’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처음에는 서점 운영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 일이 다른 사회적 활동보다 더 의미가 있고, 더불어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되니 시작했지요.”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각 대학마다 최소한 1, 2개씩은 있던 인문과학 전문 서점은 전국적으로 150여 개에 달했다고. 하지만 2004년 현재, 그 중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이다. ” 인문사회과학을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서점은 이제 전국적으로도 ‘그날’이 유일하다시피 합니다. 여러 모로 참 힘든 현실이죠. 하지만 오히려 이제 ‘그날’만큼은 끝까지 살아 남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날’에서는 그 동안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 중 하나가 98년도부터 매달 발간했던 ‘그날에서 책 읽기’라는 인문사회과학 정보지이다.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대한 내용을 담아 학생, 대학원생과 함께 발간하였으며 알찬 내용과 뛰어난 구성으로 상당한 호평을 이끌어 내었다. 하지만 한 권 당 약 150페이지 분량의 소식지를 1,500부 가량 무가지로 발간했던 것이 결국 서점 운영에 큰 부담이 되어 2000년도부터 잠시 발간이 중지된 상태. 또한 98년도에는 대학생들과 저자, 학자, 강연자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카페를 만들기도 하였다.

카페 내의 ‘미네르바 이야기 마당’을 통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미국의 저명한 신좌파 지식인인 조지 카치아 피카스 앤트워스 공대 교수,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의 저자 김동훈 국민대 교수 등이 학생들과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미네르바의 부엉이’ 또한 경영상의 문제로 2003년 초부터 잠시 문을 닫은 상태이다. 이렇듯 대한민국에서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을 운영하는 것은 어렵고도 힘들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인문과학 전문 서점들이 문을 내리는 상황에서도 ‘그날’이 아직까지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학생 입장에서의 경영’이 바로 그 것. 서점 ‘그날’ 내부에는 의자가 매우 많다. 바로 대학생들이 앉아서 편하게 책을 보기 위함이다. ‘그날’을 이용하는 대학생들의 편안한 느낌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게 김동운 씨의 생각. 서울대학교 국어교육학과 03학번 변보영 씨와 이정분 씨는 어느덧 ‘그날’을 이용한 지 1년째에 접어들었다. “신입생 시절 선배님 소개로 ‘그날’을 알게 됐어요. 선배님들도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참 편안한 공간이라고 얘기하세요. 이 곳에 자료도 맡겨 놓고, 약속을 잡기도 하고요. 약속 잡아 놓고 책을 보면서 기다리고 있으면 정말 좋아요. 실은 지금도 약속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웃음)” 문득 책이 생각나는 ‘그날’이면 ‘그냥’ 오게 된다는 그들이다.

또한 ‘그날’에는 전해 내려오는 소중한 전통이 있다. 과거 90년대, 대학생들이 시위 중 다치고도 경제적인 사정이 어려워 병원을 가지 못하면 으레 찾았던 곳이 ‘그날’이었다고. 김동운 씨 자신도 학생 운동에 참가하며 80년대를 보냈기에, 아무 말 없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병원비를 빌려주던 관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책 값 외상이란 존재하지 않는 ‘그날’이지만, 어려운 학생들은 가끔 학생증을 맡긴 후 소액을 빌려가곤 한다. 학생과 서점의 상호간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할 이러한 전통은 ‘그날’의 또 다른 힘이다.

‘그날’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대한민국의 인문사회 과학 서적의 흐름을 읽어 본다. 1990년대베스트셀러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전태일 평전’ 등이라면, 2000년대는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체 게바라 평전’ 등을 들 수 있다.

두 시대 모두 교양을 넓혀주는 동시에 사회적 문제 의식을 제기하는 인문사회과학의 본 목적을 충실히 채워주는 서적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독서 자세는 분명 달라지고 있다고 김동운 씨는 지적한다.
대학생들이 책에 진지하게 몰입하여 가슴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 ‘관찰’하는 것에만 점점 매몰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 “제가 꿈꾸는 ‘그날’은 올바른 사회 인식을 통해 각각의 개인이 하나의 주체가 되어 우리를 옭아매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는 날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가슴으로 책을 읽고, 진정으로 느끼고, 진실로 변화해야 합니다.”

서점 ‘그날이 오면’에는 총 5만 권이 넘는 달하는 인문사회과학 서적이 빼곡하게 구비되어 있다. 이제는 책을 읽자. 가슴으로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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