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체험]제12화 여기가 아프리카야? 한국이야?





  우리는 아는 분의 소개로 12년째
가나에 거주하고 계신 최용석 선교사님 댁을 방문
했다. 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우리에게 다가와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 숙여 인사한 여자아이는 언뜻 보기에 가나인 같기도 했으나 생김새 곳곳에서 어딘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한국인 선원의 하룻밤의 만행으로 잉태되어 평생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자란 혼혈아였다.
테마에만 이런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들이 70명 정도 된다고 한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이들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사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들은 최선교사님 댁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한글을 배운다. 이들에게 한글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었지만, 아이들 역시 한글을 배운다기 보다 가나인도 한국인도 아닌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아이들끼리 어울리고 싶어 이곳에
오는 듯했다.

마침 우리가 테마에 방문한 이틀째 되는 날, 테마의 토요한인학교 학생들의 봄소풍 날이었다. 전날 본 혼혈아들이 오는
줄로 알고 약간은 무거운 마음으로 차에 탔으나 막상 도착하니 비버리 힐즈에서나 볼만한 고급 외제차가 주차장에 즐비해
있었다. 대부분이 사업차 가나에 머물고 있는 교민들이었던 것이다.
우리학교 학생들은 구경조차 해본일 없다는 귀한 색종이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색종이를 주워 조심스럽게
접어보았다. 현지인들만 다니는 학교에서 생활을 하던 우리의 눈으로는 이들은 너무나도 풍부해 보였다. 가나인과 함께
가나식으로 사는 우리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대궐 같은 주택
한달 임대료가 30만원, 가정부 정원사 운전사 경비원 월급이 한달 4만원 정도.

목욕탕에서 때밀이에게 몸을 맡기는 것조차 사치스러워하는 한국 아줌마들은 이곳에서 입을 리모콘 삼아 현지인을 부리며
살고 있다. 노예는 해방되었고 노예무역은 끝난 지 오래라지만 모든 외국인 가정
혹은 조금 더 많이 가진 현지인 가정에서 수 백년 전의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여전히 하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자원봉사자인 나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람을 부린다는 게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고, 거리에서 이것저것을 팔면서 생계를 꾸리는 것보다는 형편이 나은 집에 고용되어 잡일을 하는 것이 더욱
좋은 직업으로 여겨진다.

첫날 봤던 혼혈아들은 한글학교에 다니고, 소풍에 온 아이들은 한인학교에 다닌다는 차이가 있었다. 한인학교는 테마에
있는 가나한인교회에서 교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한국에 관한 것을 가르치는 곳이다. 다행히 이곳 교민들의
자녀는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한 평생을 가나에서 살았어도 한국말을 별 문제없이 구사할 수 있다.

“불과 2년 전만해도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살만한 물건이 없었어.
근데 이젠 돈이 없어 못 산다니까. ”

가나 이민생활 8년을 넘긴 김혜경 씨(39세, 가정주부)의 말이다. 처음 이곳 서아프리카 가나로의 이민을 결심하고
한국을 떠나올 때 주변사람들의 만류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그럴 만도 하다. 우리가 매체에서 접하는 아프리카라곤
헐벗고 굶주려서 배가 불뚝 나온 아이들과 들판을 뛰어다니는 각종 야생동물들 뿐이니,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관용어구조차
암흑의 대륙, 불모의 땅 등 온통 부정적인 이미지들로 가득찬 수식어구로 소개되는 이 지구상의 유일한 장소 아닌가.
하지만 오히려 우연히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교민들이 누리는 여유로운 생활에
매료되어 정착을 결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니 이제 암흑의 땅이 아닌 새로이 떠오를 광명의 땅이라고 불러봄직도
하다.

교민들은 한국의 언론에 불만이 많다. 왜 아프리카에 오면 꼭 가난, 굶주림, 폭동, 천재지변, 범죄, 야생동물 같은
것만 담아가는지 말이다. 깨어나지 못한 건 아프리카가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도 수영장 딸린 집에서
호강하며 사는 사람 많으니 한국 가거든 좋은 얘기 좀 많이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렇듯 아프리카의 한 쪽에서는 굶주림, 폭동이 일어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눈부신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핸드폰 보급률도 증가 추세에 있고, 주말이면 인터넷 카페는 북새통을 이룬다.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이렇게 변화하는 밀레니엄을 살고있다는 위안을 갖기 위함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
이다.

실제로 전화는 잘 터지지 않는다. 한 기업에 소속된 이동전화끼리는 통신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유선전화로 이동전화에
전화를 걸기 위해서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인터넷 수준 역시 19,600 kbps 모뎀이 최고 수준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다른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지 흘끗흘끗 보면 십중팔구 국제 펜팔사이트 같은 곳에서 백인 여자들 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아직은 최선단에 있는 문명을 그대로 들여놓는다 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만한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아프리카는 변하고 있다. 지상 유일한 미개척지 아프리카, 우리에겐
너무나도 멀게만 생각되었던 이 땅을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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