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로 세상] 제3강 발줌(zoom)을 아십니까?

   

 
하지만 실제 물건은 광고선전과 거리가 있다. 보급형 디카의 경우도 마찬가지.
멀리 있는 사물을 한번에 쫙 당겨준다는 광고와는 달리 줌 렌즈 기능은 생각처럼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멀리 있는 물체를 가깝게 당기기 위해 줌 버튼을 누르면 굼뜨게 움직이는 렌즈로 인해 상황은 이미 끝나있기 일쑤다.

오토포커스 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갑자기 가까운 물체를 찍으려 와이드 앵글로 변경시킬 때에도 상황은 비슷해진다.
그럴싸한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들여야 하는 구체적 방법은 메뉴얼 어디를 보아도 쓰여 있지 않다.

절묘한 장면을 찍기 위해 만들어놓은 줌 렌즈와 오토 포커스의 활용은 왜? 이리 마음대로 되지 않던지. 게다가
마음에 드는 화면 구성을 위해 줌과 오토 포커스 버튼을 마구 누르다 보면 어느새 배터리 부족 경고 알람음이
들리게 된다. 본격적인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배터리가 떨어지다니….

디카는 줌 렌즈 조작과 액정 모니터 화면을 띄우기 위해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촬영의 예비 동작에 소모되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많아서 정작 사진 찍을 때 배터리가 떨어져
당혹스런 경우가 많다.
메이커의 광고 내용처럼 오래가는 배터리는 없다. 마치 자동차의 공인
연비가 참고 자료에 머무르는 것처럼. 디카의 전지 성능은 광고 내용의 반 만 믿으면 얼추 맞는다.

제대로 된 사진을 얻기 위해선 의외로 많은 장면들을 찍어야 한다. 경험 많은
사진가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사진을 찍는다. 눈에 보이는 대로 찍는다 해서 마음에 드는 사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움직임을 잡아내는 일이므로 눈에 보이는 장면이 최종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아주 미세한 차이라 할지라도 사진의 느낌이 전혀 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으로
확인 하지 못하는 장면을 더 생생하게 잡아내기 위해선 촬영의 간격을 더 짧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순간의
움직임을 한 컷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한 대비책이기도 하다.

짧은 시간 속에서 인간사의 극적인 장면들이 펼쳐진다. ‘결정적 순간’은
사진 찍힐 대상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진 찍는 사람이 발견해내는 작업
이라 불러도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모든 행동과 표정엔 정점이 있게 마련이다. 뛰어가는 사람이라면 다리에 온 힘을 모아 움직이려는
순간에 극적인 긴장감이 생긴다. 슬픈 표정이나 웃는 모습이라면 감정의 고조점, 즉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이나
입을 최대한 벌려 웃고 있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찬스를 놓친 사진이란 얼마나 맥 빠진 것이 되는지 상상만
해도 알 수 있다.

생동감 있는 사진이란 특별한 장소나 사건 때문에 만들어지기 보단 절묘한 순간을 잡아냈을 때 얻어진다.
이는 사진의 방법을 암시해 준다. 사진이란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 (이미지)을
찍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고정시키는 수단으로 쓰여 질 때 더욱 효과적이란 사실이다.
인상 깊은
사진은 무엇을 찍었느냐 보다 어떻게 특별한 순간으로 처리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간사의 장면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연약한 갈대 잎은 바람에 흩날렸을 때 가장 풍부한 연상 작용이
생긴다. 산에 널려있는 돌멩이에 비친 아침, 저녁의 햇살은 차가운 돌덩이에 생명감을 불어넣어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으로 바꾸어주지 않던가. 풍경조차 특정한 시간을 잡아냈을 때 그 의미는 더욱 풍부하게 확대된다.
절묘한 순간의 고정은 우리가 보고 있는 단조로운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바꾸어준다.

이러한 순간의 고정을 위해 디카의 배터리는 아껴둘 수록 좋다. 쓸데없이
자주 줌 버튼 누르거나 액정 화면을 켜는 동안 정작 중요한 촬영의 기회는 줄어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줌 렌즈는 촬영에 있어 필요악이다. 줌 기능이 없어도 좋은 사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러분에겐 튼튼한
다리와 예리한 눈이 있지 않던가. 몸을 움직여 잡아내는 촬영이야 말로 더욱 역동적이고 사실감 넘치는 장면을
만나게 해준다.

디카란 마법의 도구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우습게도 배터리다.
첨단의 디카는 로우테크의 산물인 배터리에 의해 움직인다. 이는
아날로그적 바탕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줌 렌즈의 작동대신 이리저리 움직여 보라는 얘기다. 디지털 시대의 산물일수록
아날로그적인 행동과 조화될 때 더 큰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디카의 한계를 극복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현재 나와 있는 가장 고급 기종인 프로용 SLR 타입을
사는 것이다. 카메라 한대의 가격이 승용차 값만큼 하는 그런 기종으로.

하지만 이런 카메라라도 인간의 의지를 모두 수용해주지는 못한다. “과연 그럴까 ?” 라는 의구심은 접어두어도
좋다. 왜냐하면 내가 직접 써봐서 알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도구다. 도구는 쓰는 사람의 역량만큼만 그 효용성을
드러낸다. 자기 손에 들려진 도구로 무엇을 만들어낼지는 여러분의 능력에 달려있다. 나는
발 줌 (발로 움직여 줌 렌즈의 효과를 내는 것)보다 더 좋은 렌즈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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