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영어 실전기] 제2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영국






 
예쁜 색의 벽돌과 담쟁이로 덮여 있는 지붕을 보면 와아~ 하고 절로 감탄이 나온다. 하지만
그 실체는 어마어마하다. 대문을 여는 순간부터 발자국을 따라 온 집안이 삐걱거린다. 밤에 혹시 화장실에도 가려면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가야 할 정도. 잠자는 아기들이 깰 까봐 노심초사. 오래된 문고리도 조심스레 열어야 한다.
영국인들이 한국인들에 대해 불평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쿵쾅거리며 걷기’ 이다.
성격 급하고 부산한 한국인들의 큰 발자국 소리도 문제이지만 오래되고 낡은 영국의 집 탓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낡아도
수리하고 개조하는 한국과 달리 거리 곳곳에 전통이 살아 숨쉬는 오래된 건물이 가득한 그들의 문화가 부럽기도 하다.
영국 주택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추위’다. 얼마나 추운지 밤에 잘 때 이가 덜덜 시릴
정도다. 그들은 추위를 안 타는 것일까 라고 의문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들 역시 춥긴 추운가 보다. 영국 사람들은 봄 날씨에도
집안에서 스웨터 또는 가디건을 입고 있다.
전기료를 아끼려고 하는 건지(영국의 공공요금은 살인적인 수준이다. 전기료가 얼마나 비싼지 영국의 하숙집 주인들이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학생들 따라다니며 불 끄라고 잔소리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담요 덕분에 밤의 한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주인 아저씨한테 걸린 이후 전기담요와도 이별해야 했다.
왜?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쓰지 말라고 했으니까. 아~ 서러운 타향살이!
근면하기로 소문난 영국인들. 하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청소를 일주일에 한 번 할까말까.
매일 쓸고 닦고 윤기 팍팍 내는 한국 사람들 정서에는 뽀얗게 쌓인 먼지가 반가울 리 만무하다. 겉으로는 고상하고 깨끗해도
사실은 청소와 설거지는 극한 상황에만 하는 영국인들이 태반이다. 오죽하면 집안의 고물들을 폐기 처분하여 깨끗한 집과 함께
새 인생을 시작하는 TV 프로그램까지 있을 정도이다.
예쁜 정원에 뛰노는 귀여운 강아지, 흙장난을 하는 아이들, 수줍게 핀 꽃들과 싱싱한 푸른
나무들. 영화에서의 영국정원은 그러하였건만 우연히 뒤뜰로 나왔던 나는 당장 삽을 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빽빽하게 내 키를 훌쩍 넘어버릴 정도로 자란 무성한 잡초들과 시들어버린 꽃. 몇 달간 씻지 않아 보기만 해도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귀여운(?) 강아지가 개미가 우글거리는 모래 바닥을 마구 파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난 이 곳이 정원인지, 열대우림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집마다 정원이 있지만 그것을 관리하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전문가의 손길을 필요하고 그 가격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일반적인 영국에서 정원
손질하는 부지런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러브하우스’ 같은 프로그램처럼 영국의 BBC나 Channel 4 에서는 낡은
집과 엉망이 되어버린 정원을 깔끔하고 현대적으로 바꾸어주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또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혼자 집을 수리하는
방법, 정원 가꾸기를 소개한 책, 잡지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조건 낡으면 버리고 새 것을 사거나, 높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우리들보다 오래된 것일수록 더 귀중하고 고쳐서라도 지켜나가려는
그들. 영국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직업이 ‘목수’라고 할 정도로 그들에게 집이란 ‘사는 공간’이란 의미를 넘어 함께 숨쉬고
지켜나가야 할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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