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로 세상] 제2강 카메라에 빠지는 이유




 
이 문제에 대해 자신 있게 결론을 내리긴 곤란 할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적 취향과 선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란 어차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카메라란 인간의 감각적 추구를 충족시켜주는 “기기 이상의 무엇을 지닌 존재” 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는 카메라가 단순히 화상을 고정시키는 일차적 기능을 넘어 인간의 의식을 투영하는 특별한 물건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용적 측면이 크게 부각되는 여느 기기와 달리 정교한 카메라만이 갖고 있는 아우라
( aura )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같은 물건이라도 정교하고
치밀한 만듦새가 주는 인상은 각별하다. 정교한 공예품, 시계, 자동차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된다. 정교한 기계가 풍기는 힘은 인간을 매료 시킨다. 카메라가 그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방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카메라의 매력이 자신의 삶에 유용하게 쓰여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물건은 사용자가 스스로 사용가치를 높일 때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사용가치를 높이지 못하는 물건은
수집용이 아니라면 별로 필요가 없다. 디카는 이제 재산 목록에 들어갈 품목이 아닌 것이다. 열심히 사용해서
본전을 뽑고 새로운 기종이 나오면 과감하게 폐기처분해도 좋을 소모품으로 생각하자. 소모품은 열심히 많이 사용
할수록 제 몫을 다 하는 그런 것 이다. 카메라에 대한 필요이상의 애착을 버리면 사진은 쉽게 다가온다.

기술과 생활환경의 개선은 방법론을 수시로 변하게 한다. 과거 누군가의 힘을 빌려야 가능했던 수많은 일들은 이젠
혼자서도 얼마든지 해결 가능하다. 이는 나만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 작업에 쉽게 접근하도록 해준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낯설고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분야가 얼마나 더 가깝게 느껴지는 지 생각해 보라. 그 출발은
정보의 공유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온갖 지식과 정보는 타 분야에 대한 접근을 수월하게 만든다.
처음의 관심을 지속 시킬 수 있다면 어떤 분야라도 일정 단계의 수준으로 도약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숨겨진 비법들은 태생적으로 원래 수직적 전파에 의존 했었다. 인터넷은 공방의 비밀이라 해도
좋을 각종 노우하우를 수평적으로 확산시켰다.

비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은 시행착오를 현저히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라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만만치 않다. 관심분야가 약간의 노력만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행운이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알고 있는 것을 자신의 삶에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 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알고 있다는
것과 그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앎이 자신의 것으로 굳어지기 위해선 숙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육화되지 않은 지식이란 별 쓸모가 없다.” 귀에 못 박히도록 들었음직한 이 변함없는 철칙은
누르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디카의 전성시대에서도 여전히 유용하다.

디카의 사용법은 의외로 쉽다. 하지만 다양한 기능을 익숙하게 조작해서 그 때
그 때의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긴 어렵다. 디카의 각종 버튼과 스위치는 고급기종 일수록 많게 마련이다. 이를
손끝의 연장처럼 다루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현대의 카메라는 인간을 편하게 하기위해
진화해 왔지만 그 다양한 기능으로 인해 조작 요소는 오히려 늘어나는 모순 된 상황을 연출한다.

물론 디카에 내재된 기능이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마치 휴대폰의 다양한 기능을 다 몰라도
사용에 지장 없는 것처럼. 하지만 각 기능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면 상황 대처 능력이 훨씬 커지지 않던가.
디카를 휴대폰만큼 사용빈도를 높인다면 조작 미숙에 의한 낭패를 겪는 일이란 없을 것이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행동만이 자신의 의식을 자유자재로 표현 가능케 한다. 사진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이다.
상황이 아무리 바뀌더라도 이러한 속성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예술의 속성이란 결국 감성으로 구축해나가는
환타지이기 때문이다.

첨단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는 철저하게 아날로그적 반응으로 일관한다. 숙련이란 아날로그적
행동은 단순 반복에 의한 각인효과와 다름 아니다. 이는 무한정의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몇 번 혹은 단시간
동안 연습해서 다다를 수 있는 숙련의 경지란 없다. 컴퓨터를 익숙하게 사용하기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라. 적어도 몇 년 쯤은 모니터와 자판을 들여다보며 씨름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이란 분야를 단순히 ‘좋아하는 일’ 이상의 단계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속적 숙련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사진에 쉽게 접근 할 수 있게 해주는
디카의 매력은 아날로그적 숙련이란 행동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표현 영역을 넓힐 수 있게 한다.

사진을 찍어 먹고 사는 나도 한 동안 묵혀놓았던 카메라를 다시 들게 될 때의 황당함은 수시로 발생한다. 노출
보정과 브라케팅 (각기 다른 노출로 여러 장 찍히게 하는 기능) 촬영 버튼이 어떤 것이더라……하며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져보게 된다. 그러는 동안 상황은 엉켜가게 마련이고 셔터 찬스를 중요시하는 나의 작업은 엉망이 되고
만다. 자신의 의도를 구체화시키기 위한 숙련은 아무리 갈고 닦아도 항상 부족하게 느껴진다. 디카라고 과연 예외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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