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체험]제4화 나랑 결혼해줄래? 돈을 줄래?




 
첫 도착지인 ‘예지(Yesi)’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예지는 작은 항구도시로
볼타 호수(Lake Volta)를 종단하는 페리(ferry)의 북쪽 정류장이다. 원래 볼타(Volta)는 강이었으나
하구에 위치한 아코솜보(Akosombo)에 댐을 만들어 인공적으로 조성한 거대한 호수가 되었다.

좁은 길을 따라 달린 지 3시간 남짓, 드디어 예지가 보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작은 마을 같은
‘도시’였다. 선착장 부근에 가서 물어보니 배는 오후 5시 쯤에

 
들어올 거라고 한다.
호기심 많은 꼬마 녀석들이 우릴 보더니 “일등석은 못 사요” 그런다. “어떤 독일인이
몽땅 사버렸대요”. 지난 주에 전화를 했을 때만 해도 예약은 필요없다, 그저 시간에 맞춰 오기만 하라더니,
이런 시스템이 바로 가나인 것이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나왔더니 배가 좀전의 선착장에 서는 것이 아니란다. 질퍽질퍽한 길에 질겁을 하며 걷기를
30~40여분, 겨우 배가 도착해 있는 지점에 다다랐다.

 
‘야페이 퀸(Yapei Queen)’이라는 이름의 배는 사람보다 짐 싣는 공간이
더 넓었다. 배표를 구하겠다고 식사하러 갔다는 뱃사람을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시간은 오후
7시가 넘어갔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마을로 나간다는 가나인 한 명을 붙잡고, 어두운 길을 더듬어 마을로 향했다.

가나인과 얘기를 하면 정말 터무니없는 얘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 고등학생 정도 되는 그 아이는 뭐, 자기는
백인 여자와 결혼할 거라는 둥, 당신들은 흑인남자와 결혼

 
할 생각이 없냐는 둥 질문을 하는 것이다.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가 그들에게 과연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과정인지, 아니면 단지 이곳을 나가기 위한 수단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처음 본
외국인에게 결혼해 달라고 하는 그들을 보며 암담함을 느꼈다.

호텔에서 짐을 챙긴 우리는 용감하게 길을 나섰지만 결국 길을 잘못 접어들었고, 다행히도 ‘지나치게 친절한’
가나인답게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우리를 줄곧 따라오던 한 가나인이 페리까지 데려다 주어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겨우 페리에 올라탔다.

 
가나를 여행하면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친절한 도움에 감사의 뜻을 제대로 표하지
못하는 것이다. 친절을 호기롭게 받아주다가는 끝내 ‘나랑 결혼해달라’, ‘친구가 되어 달라’부터 시작해서 ‘한국에
데려다 줄 수 있느냐’, ‘연락처를 달라’, ‘돈 좀 달라’라는 말로 이어지기 일쑤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예의 없는 여행자가 되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고 했던가.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어떤 여지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는 서글픈 원칙에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실제로 도움만 받고 감사의 일별 없이 지나치는 우리에게 그들이 어떤 감정을 느낄
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를.

 
페리에 한참 늦게 도착한 우리가 잠잘 만한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2층
2등실에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던 낡은 천 한 장을 주어와 1등실 캐빈 옆 통로에 자리를 깔았다. 잠잘 곳 없어
고른 데 치고는 별빛 가득한 하늘이 눈에 들어와 꽤나 낭만적이라며 위안 삼았다.
그러나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곳은 차가운 시베리아가 되었고 2층 식당 옆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그 따뜻함도
잠시 식당의 더운 기운을 좇아 벌레들이 꼬여 드는 통에 우리는 제발로 3층의 갑판으로 올라가야 했다.

자는 듯 마는 듯 뒤척이다 일어나보니 배가 정박해 짐을 싣고 있었다. 특히 가나의 주

 
식인 ‘얌(Yam)’을 싣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배는 사람보다 짐
싣는 게 주 목적이었다. 덕분에 한번 정박하면 3~4시간이 기본이었다.

그 뒤 페리의 하루는 지리하게 흘렀다. 특별히 배가 움직이는 동안은 할 일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또 밤이 찾아왔다. 그래도 첫날밤보다는 상황이 좋아서 벤치 두 개를 확보할 수 있었고 다행히 벤치 위에서
그날 밤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또한 편하지는 않았다. 밤새 자세를 바꿔가며 잠을 청했지만 온 몸이 배겨서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 그래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데. 그래, 난 사서 고생하러 온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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