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종단기]제21화 막바지 중미 여행, 과연 앞으로의 행로는?

    우리가 advanced diving 코스를 밟고 있는 동안, 각자 제 길을
가던 친구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보카스 델 토로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다 같이 자전거를 빌려서 섬의 끝자락에
있는 멋진 해변에 가기로 했다. 어제 3번이나 강행한 다이빙의 피로가 조금 남아있긴 했지만, 뭐… 이까짓 자전거쯤이야~!

섬 둘레 해변을 따라 나있는 오솔길을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해 2시간쯤 갔을까. 목적지인 해변에
도착해 바라본 풍경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보기엔 멋지지만, 3m가 훌쩍 넘는 무시무시한 서핑용 파도가 일렁대는
바다 앞에서 선뜻 뛰어들 생각을 할 수 없었다.(용감하게 소리를 지르며 옷을 벗어 던지고는 파도를 향해 돌진하던 새드릭은
파도 한방 세게 맞고는 다시 물가로 튕겨 나왔다.) 바다 속에서 잠시 몸의 균형을 잃는 순간 파도에 이끌려 이리 저리
끌려가고, 모래에 몸을 긁혀 가며 뒹굴고 있자니 공포스럽기 그지 없다.
 
유유히 수영연습을 하겠다던 처음의 생각을 접고 해변에 앉아 다른 친구들 놀고 있는 것을 구경하는데,
열심히 파도를 타던 새드릭이 심각한 얼굴로 해변의 물풀들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가 애럼한테 물어보니, 도둑
맞을까봐 모래에 지갑을 묻어놓고 물풀들로 표시를 해놨는데 사라졌단다. 어제 은행에서 돈을 찾은 터라 USD$300에 각종
카드가 통째로 들어 있는 지갑을 찾느라 난리가 났다. 정확한 지점을 기억하지 못해 대충 범위 안의 땅에 큰 원을 그려
표시해 놓고 일제히 파기 시작하는데 파도 파도 나오지 않는 지갑은 어디로 갔을까?
어제의 3번의 다이빙의 휴유증, 2시간 넘는 자전거 타기에 파도와 싸우느라 온 몸에 진이 다 빠진 상태지만, 새드릭이
얼마나 속상할까 하는 생각에 남은 기력을 다해 온 땅을 다 파고 다녔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니 윌과 애럼은 찾기를 그만두고
딴 짓을 하고 있다. 애럼은 판 모래로 모래쌓기를 하고 윌은 앉아서 쉬다가 다시 파도로 뛰어들어 놀기에 여념 없다. 그나마
피오나만이 같이 찾기를 하는데 결국 주변을 돌아보던 피오나가 파도에 쓸려 나온 25달러치의 지폐를 발견했다. 알고 보니
파도에 지갑이 휩쓸려 가 버린 것. 그때부터 저 멀리 해변까지 걸어가면서 20달러 지폐 한 장을 발견한 것 외에는 더
이상의 성과가 없다. 한가지 정말 신기한 것은 열심히 찾아준다고 해서 특별히 고마워한다던가 안 찾는다고 해서 서운해 하는
게 없다는 거다. 한마디로 찾으려면 찾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다.
비까지 슬슬 내리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자전거를 타는데 완전 죽을 맛이다. 성의를 다하느라 남은 기력까지
써버린 후인지라, 이를 악물고 거의 자전거에 매달려서 다시 2시간 넘는 자전거 타기 끝에 마을에 도착했다. 한 작은 레스토랑에
앉아 굶주린 배를 채우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고 달랑 45달러가 전재산인 새드릭은 언제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냐는 듯이 웃으며 동네 아저씨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다. 게다가 우울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디스코 텍까지 가겠다고
하는 저 새드릭의 천연덕스런 모습을 보라!!!

여기서 잠깐 새드릭이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해보자.
토요일 밤마다 디스코 텍은 혼자서라도 꼭 가고, 아무리 비싸더라도 먹고 싶은 건 먹어야 하고(먹고 나서 비싸다고 욕은
꼭 한다.), 자신의 얘기는 항상 늘어놓는 반면 남의 얘기는 절대 듣지 않는다. 게다가 항상 허무맹랑한 많은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파나마 시티에서 배를 얻어 타고 푸에르토리코라는 미국령 섬에 가서 그링고를 상대로 돈을 모은 후,
히치 하이킹으로 마이애미서부터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가는 것이 그 계획이다.
결국 배 얻어 타기에 실패하고 돈도 다 잃어 버린 상태라 파나마 시티에서 열심히 일자리를 알아보더니 몬트리올로 얌전히
돌아가겠단다. 그리고 나서 뉴욕으로 가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팔아서 돈을 왕창 벌 거란다. (후에 몬트리올에서 온 메일을
체크해 보니 마이애미부터의 히칭은 생애 최대의 모험으로 성공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할 곳도 정해 놨다고 의기 양양이다.)
영화에서나 보던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의 전형을 보는 듯해 같은 나이인 우리는 우리가 늙은 건지 새드릭이 어린 건지
항상 같은 나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던 자전거 타기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쓰러진 우리는 그 다음날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허벅지 근육에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해야만 했다. (아마도 우리가 늙은 것일지도…–;;)

 
 
파나마 시티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복권 열풍이 한창이다. 멕시코에서부터 시작해서 길거리에 간이 복권 판매대를 놓고
복권을 파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이 곳은 1m마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고 판다.
일확 천금의 화려한 꿈은 세계 어느 곳이나 동일한 모양이다.
또한 구두 하나만큼은 항상 깨끗이 하고 다닌다는 것! 구두 닦기 통을 들고 아니면 의자를 놓고 구두를 닦는 사람도 작은
공원이나 광장 등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미용실과 이발소를 가득 메운 사람들도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가를 실감하게 해준다. 그리고 인터넷 카페에는 한창 채팅 열풍이 불고 있어, 마치 3년
전의 우리나라 인터넷 카페를 보는 듯 하다.

파나마는 콜롬비아에서 독립한 지 100년 안팎의 짧은 역사를 지닌 나라다. 그러나 그 짧은 역사는 주로 미국과 관련되어
있어, 파나마만의 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미국 달러를 그대로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중미에서 가장 미국과 흡사하다는 느낌이
든다.

파나마의 역사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파나마 운하.
파나마 운하의 건설을 구상한 미국이 파나마 독립파와 손을 잡고 세운 친미정권이 건설했다는 이 운하는, 이후 운하 반환의
중요성을 깨달은 파나마인의 힘으로 미국으로부터 운하의 소유권을 반환받았다. 이때부터 파나마 만의 민족의식이 생겨났다고도
할 수 있다.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이어주는 중요한 운하로, 총길이 305m, 폭 33.5m의 3개의 수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문을 열고 닫으면서 물의 출입을 관장하고, 배를 상하로 이동시켜 수압차를 극복한다. 그 운하를 통과하는 배들로부터 사용료를
받는데 그 금액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 무게에 따라 달리 정해진 사용료는 평균적으로 칠십만 달러! 1년에 거의 만 사천
척의 배가 이 운하를 통과한다고 하니, 운하 사용료만으로도 벌어들이는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수문에
있던 1시간 동안에도 그 곳을 통과한 대형선박이 3척이었으니, 1시간 동안 벌어들인 수익이 210만 달러란 말인가!
한쪽 수문 안으로 배를 들여 보내기 전 우선 물의 수위를 높이고 특수한 차 몇 대가 배를 끌어 수문 안으로 배를 들여보낸
후 물을 빼내 수위를 낮추고 다른 한 쪽 수문을 열어서 배를 내보내는데, 원래는 땅이었던 이곳을 수로로 만든 사람의 기술이
놀랍기만 하다. 또한 파나마는 많은 선박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면서 세금을 물지 않고 들어오는 전기 제품이나 의류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이 곳에서 저렴한 가격의 면세품 쇼핑에 몰두한다는 사실. 이 나라의 경제를 말해주듯,
각 나라 은행이란 은행이 모조리 밀집한

빌딩숲의 파나마 시티 시가지 모습은 식민지풍의 구시가지와
어울려 파나마 만의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파나마 시티에서 에콰도르 입국비자를 받으러 에콰도르 대사관에 갔다. 그런데, 파나마에 사는 현지인들에게만 비자를 줄
수 있다며 이것저것 트집을 잡더니 결국 불가능하단다. 생전 가보지 않았던 한국 대사관까지 찾아가 방법을 모색했지만 길이
없다. 결국 에콰도르 비자 따기에 실패하고 앞으로의 우리의 행로가 고민스럽기만 하다.
에콰도르 비자를 따기 위해 콜롬비아로 날아가려 했지만, 지금 콜롬비아는 전쟁 같은 상황이라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콜롬비아를
거치지 않고 에콰도르로 들어오는 실정이라 망설여진다. 상황이 좋지 못한 콜롬비아와 비자 없이 입국이 불가능한 에콰도르를
모두 생략하고 곧장 페루로 날아가자니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갈팡지팡 고민은 했지만, 현재 콜롬비아에 있는 영국
친구로부터 온 메일에 담긴 ‘콜롬비아가 너무나 아름답다’는 귀절에 끌려 콜롬비아행을 결정했다. 물론 에콰도르 비자에 다시
한번 도전할 생각이다.
파나마를 끝으로 캐나다로 돌아가겠다는 윌과 새드릭. 위험한 콜롬비아는 생략하고 에콰도르로 가겠다는 애럼. 크리스마스 전까지
호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페루로 바로 가겠다는 피오나. 이 모든 친구들과 다음 여행에 세계 어디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콜롬비아 수도인 보고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파나마와 콜롬비아 사이에는 깊고
험한 정글이 자리잡고 있어서 육로로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험한 정글에 무장 게릴라들이 잔뜩 있다는 것도 비행기를 탈 수 밖에 없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

드디어 기다리고 기대하던 남미다!
남미의 첫 시작이 여행자들에게부터
별로 소문이 좋지 못한 콜롬비아인만큼,
바짝 긴장이 된다.
몸 조심, 복대 조심, 가방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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