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종단기]제23화 여행 속 한국 찾기! 한국 밖 여행하기!

    눈물을 삼켜가며 우리를 대사관으로 출근하게 만든 에콰도르,
여행자들 사이 하루 5달러(US)면 충분히 생활하고도 남는다고 하여 잔뜩 기대하고 왔건만. 지난 해 경제 위기에 통화를
수크레에서 달러로 바꾼 이후로 물가가 만만치 않게 비싸졌다니.
에콰도르에서 가장 크게 인디오 장이 열린다는 오타발로에 도착했다. 방값도 음식값도 콜롬비아를 웃도는 것이 그 옛날의 에콰도르가
아니다. 장이 서는 토요일, 아침부터 전통의상을 입고 모여든 인디오 아주머니들이 색색가지 화려한 물건들을 진열하기 시작한다.
남미에서 가장 많이 인디오들이 남아 있다는 에콰도르만의 매력이다. 돼지 내장들이 적나라하게 내걸려 있는 시장부터 수제
기념품들이 가득한 시장까지 온 마을을 다 도는데 소비 욕구를 마구마구 자극한다. 역시나 수많은 그링고들의 손에도 검은
봉지 한 가득, 우리의 손에도 검은 봉지 한 가득 들려 있었다.
 
오타발로에서 다음 주에나 키토에 갈 것 같다는 미르따의 메일(이때까지만
해도 메일을 주고 받았다)이 왔다. 별 수 없이 우리끼리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에 도착. 키토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올라 한껏 기분을 잡아보는데, 분지형태로 둘러싸고 있는 푸른 산에 놓인 콜로니얼 풍의 집들과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하늘, 선선한 바람까지 결코 대도시 같지 않다.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에 숙소로 돌아가는데 우연히
만난 한국인 유학생. 항상 한국 음식에 목말라 있는 우리는 한국 음식점에 관해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곳
역시 한국음식 가격이 만만치 않다. 여행하면서 한국음식을 먹어본 여행자들은 한국음식의 열렬한 팬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음식을 먹어본 사람은 별로 없다. 정말 정갈하고 담백한 한국음식만의 매력을 내세운다면, 충분히 국제적인 음식이 될텐데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
스시와 같은 일본음식은 이미 고급이라는 인식이 되어 있어, 당연히 일본 음식값은 비쌀 뿐더러 격식을 갖출 경우 일본 음식점을
찾는다. 반면 중국음식은 조그만 마을이라도 중국 음식점이 한두 개 꼭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어 있고 저렴한 가격이라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는다. 그러나 한국음식은 이도저도 아니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도 않은데다가 왠만한 음식값은 10달러(US)가
넘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식자재가 구하기 힘들고, 많은 양념들이 한국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음식을 통해서라도 한국 문화를 알릴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아쉽다(또한
배낭 여행을 하는 한국 여행자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비싼 음식가격에 좌절하고 나서, 어디를 가면 한국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중미처럼 이곳 에콰도르에도 한국인
옷가게 거리가 있다며, 은근슬쩍 특정가게 이름까지 거론하는(?) 고마운 유학생. 다음날, 코스타리카에서 철판 8단의 기술로
한번 한국음식을 얻어먹은 이후로 철판 9단이 되어 그가 가르쳐준 가게로 향했다. 주인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현지인
종업원들만 가게를 보고 있다. 아! 오늘도 알무에르소로 끼니를 때워야만 하는 것인가(알무에르소란 스페인어로 점심이란 뜻인데
각 음식점마다 오늘의 메뉴로 정한 메뉴를 다량으로 만들기 때문에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풀이 죽어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보니 다른 가게 안에 동양인이 보인다. ‘혹시 한국 분이세요?’ 어느새 작업에 들어간 우리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동원했고,


결국 가게 구석 창고에서 감동 어린 한국 라면과 함께 그보다 더 감동적인 이민사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맵고
시원한 한국 라면으로 배가 빵빵해져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 가슴 가득 채워진 것은 한국 음식처럼 푸짐하고 넉넉한
한국인의 정일 것이다.
 
 
에콰도르에 오면 적도선에서 고무줄 뛰기를 하리라 노래 부르던 우리, 소원대로 북반구와 남반구를
가르는 적도선에서 주위의 시선 아랑곳 않고 ‘날아라 새들아~’ 하며 신나게 고무줄 뛰기 한판을 했다. 적도 경계비 주변은
황량한 벌판이다. 높은 고도 탓에 날씨는 선선한데 햇볕은 얼마나 강렬한 지 우리가 드디어 적도까지 왔구나, 실감한다.
이제는 계절이 정반대라는 남반구를 여행할 차례!
에콰도르에서도 높고 풍경 좋기로 알아준다는 산들로 둘러싸인 온천 마을 바뇨스에 도착, 역시 이곳 온천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폭포를 보며 온천을 할 수 있다고 하여 폭포에 오르니 온천물은 깨끗하지도 않고 수영복 입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멕시코에서의 미적지근했던 온천이 생각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폭포 아래로 내려왔다. ‘온천은 뜨거운 물에 훌러덩 다
벗고 들어가 앉아 있어야 제 맛이지. 차라리 숙소에서 뜨거운 물 샤워나 하련다.’ 그래도 바뇨스에는 볼거리가 많으니 내일은
자전거를 빌려 근처 마을인 푸요까지 갔다 올까.
그런데 아침에 은화가 몸이 안 좋다더니 드디어 감기몸살에 누워 버렸다. 여태까지 한국에서 가져온 약들이 무색하게 크게
앓은 적 한번 없었는데, 북미에서처럼 36시간 버스 타는 빡빡한 여행을 다시 하라면 죽어도 못할 정도로 여행 5개월,
체력의 한계가 조금씩 느껴진다. ‘노는 게 얼마나 힘이 든다’는 건 농담이 아니었다. 항상 이곳저곳 이동하고, 싸고 좋은
숙소 정하고, 오늘을 무엇을 먹을까 밥 먹을 곳 찾아 다니고, 있는 대로 정보 모아서 좋다는 곳 가봐야 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할 때 안 통하는 스페인어로 해결해야 하고….


하지만 버스 타고 가다 우연히 기막힌 풍경을 보았을 때, 점심시간마다 문닫는 가게들을 볼 때, 이상한 향이
나는 풀이 들어가는 음식을 먹는 것이 고달플 때…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행하는 의미가 새삼 실감이 난다.그뿐이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우리끼리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한국 밖에서 치열하고 바쁜 삶을
벗어나 여행자만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즐거운지… 그러나 여행 중에도 가끔 휴식은 필요한 법!
하루 푹 쉬고 다시 힘을 얻은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리오밤바에 지붕 위에 올라탈 수 있는 기차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지붕 위 기차여행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예정에 없던 리오밤바행 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 기차역으로 향하는데 이 조그만 도시에 이렇게나 많은 여행자가
있었나 싶게 이미 기차 지붕 위는 여행자들로 만원이다. 우리도 방석 하나 준비해서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보호 난간이나
손잡이도 없는 기차여행이라니. 경적을 울리며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른 철로 위로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 완벽한 지붕 위 관광객용 기차다. 철로 근처에 있던 남녀노소 모두 손을 흔들어 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즐거워진다.
나무에 부딪칠세라 고개를 숙여가며 덜컹거리며 돌아가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쓰러지는 사이 기차는 도시를 벗어났다. 전통의상을
입고 논밭에서 일을 하는 인디오 아줌마, 아저씨들이 보인다. 염소를 치던 꼬마들이 기차를 따라오며 손을 흔든다. 지붕
위 여행자들도 손 흔들어 답해주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드디어 첫 번째 역에 도착. 갖가지 튀김부터 맥주까지 이것저것
한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지붕 위에 올라와서 장사하는 아주머니, 구두닦이 소년, 표 검사하는 승무원 아저씨까지 정신
없다. 다시 기차는 본격적으로 산을 오른다. 힘겹게 산자락을 한번 휘도는데 구름이 걸쳐져 있는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나타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절벽에 아슬아슬 놓인 철로 위 기차 지붕 위에서 보는 풍경이라 그럴까. 많이 보아온 풍경 같은데 감탄사가 술술
나온다. 아! 우리나라도 강원도 산간 지방에 이런 기차 하나 만들면 관광 수입이 짭짤할 텐데… 5시간 동안
쌀쌀한 날씨 속에서 딱딱한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것은 힘들었지만 색다른 재미를 위해서라면 이까짓 것쯤이야 문제될
것 없다네.

에콰도르에서 기왓장 때깔부터가 다르다는 꾸엥까의 잘 꾸며진 공원들과 예쁜 집 구경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 이제는
할거리 볼거리 많다는 페루가 우리를 기다린다. 비록 비자 때문에 우리의 미움을 샀던 에콰도르지만 결코 후회되지
않을 만큼 특색을 지닌 나라다. 이렇게 힘들고, 좋은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여행의 참맛을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페루에서 더욱 여행의 참맛을 맛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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