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종단기]제24화 페루에서의 가짜돈 주의 경계보!

    에콰도르 국경도시 와끼야스에 도착해보니 고원에서 벗어난
지역이라 그런지 완연한 적도 바로 밑의 불볕 더위 날씨에 죽겠다. 죽겠어. 하루 아침에 이렇게 온도가 확 바뀌니 감기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다. 특히 국경을 넘는 날은 하루 바짝 긴장 상태인데다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기 때문에 다른
특별한 일은 하지 않아도 피곤이 몰려온다. 게다가 이곳 와끼야스에서 페루 국경도시 툼베스로 이어지는 국경 루트는 다른
곳과는 달리 에콰도르 쪽 출국심사소와 페루 쪽 입국심사소가 걸어서는 30분 이상이 걸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그
사이에는 커다란 시장과 그 너머의 황량한 벌판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이유는 에콰도르와 페루간의 끊임없는 국경 다툼 때문.
푹푹 찌는 날씨에 콜렉티보, 환전 등등의 별별 삐끼 아저씨를 다 물리치느라 정신 없이 국경을 통과하고 페루의 툼베스에
도착해서야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툼베스에서 페루 제3의 도시인 트루히요까지의 버스표를 끊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와서 돈을 지불하는 데 우리가 낸 돈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팔소! 팔소!”를 외친다. 엥~! 그게 뭐야?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길래 물어보니 가짜 돈이란다. 에콰도르 국경에서 각각 12달라(US) 정도를 페루 솔레스로
바꿨는데 그 돈들이 다 가짜였던 것! 어쩐지 보통 1 달라(US)가 3.5 솔레스 환율인 것을 우리가 부르는 데로 마구
올려주더니. 처음 당하는 일이라 여간 당황스럽지 않다. 가지고 있던 달러를 다 환전하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밖에. 그때부터 한동안 가짜 돈 비상에 걸려서 한동안 만나는 현지인들에게 어떻게 감별해 낼 수 있는지 묻고 다녔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가짜 돈을 냈을 경우의 반응이다. “어 이거 가짜 돈이야. 딴 돈 없어?” 하면
다른 돈을 내면 그게 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짜 돈은 생각조차 할 수 없고 만약 가짜 돈이 나왔다 하면 경찰이 출동해서
이 돈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수사를 하고 다니는데, 이곳은 워낙 가짜 돈이 많다 보니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지폐는
물론이고 작은 동전까지 가짜 돈이 판을 치는데 우리 같은 여행자들의 골머리를 썩게 만든다. 덕분에 나중에는 현지인 뺨치는
감별사가 돼서 친구들 환전한 돈을 감별해 주고 다닐 정도가 됐지만.
가짜 돈을 식별하는 몇 가지 기준은 간단하다. 지폐를 들어서 햇빛에 비춰본다. 사람 얼굴이 보이는데 가짜 돈인 경우 어설프고
사람 얼굴이 다르다. 그리고 지폐 중간에 까만 라인이 그어져 있는데 가짜 돈인 경우 그 까만 라인을 지폐 사이에 끼워
넣은 경우기 때문에 지폐 옆으로 그 라인이 튀어 나와 있다.


그리고 종이 질도 완연히 다르다. 제일 쉬운 방법은 적혀 있는 숫자의 색깔이 바뀌는 것을 확인하는 것. 보통
보라색과 초록색으로 색이 바뀌는데 가짜 돈인 경우 색이 바뀌지 않는다. 페루 여행 초반부터 이거 단단히 조심하라는
경고등이 반짝 켜진다.
 
 
트루히요는 콜로니얼 풍의 잘 구획된 예쁘장한 도시다. 이곳의 제일 하이라이트는 바로 프레잉카시대의
치무 제국의 유적인 찬찬 유적. 치무 왕국은 기원 1100년 경부터 잉카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번영했던 왕국 문화이다.
수도 찬찬은 18km²에 이르는 거대한 유적이지만 10개 지구로 나뉘어져 현재 볼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버스를
타고 한 15분쯤 외곽으로 달렸을까. 센트로와는 다르게 황량한 사막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버스에 내려 유적까지 들어가는
방법이 고민이다. 택시를 타자니 돈 나가는 게 싫고 걸어가자니 그 사이 사막으로 좀도둑이 자주 출몰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조금 꺼림직 하다. 그러나 운 좋게 유적 안에서 사진기사로 일한다는 아저씨와 같은 버스를 타게 되어 사이좋게 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걸어갈 수 있었다. 이 아저씨 우리의 좀도둑 얘기에 코웃음 치며 자기는 이 길을 몇 십년 동안 걸어
다니는 데 도둑 그림자 구경도 못해 봤단다. 이 또한 여행자 루머?
들어가는 표를 끊으려고 창구 앞에 서 있는데 이곳 페루 꼬마들이 단체 견학을 온 모양이다.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시끌벅적
자기네끼리 떠들다가 한 당돌한 녀석이 냉큼 우리 앞으로 오더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자기 이름을
한글로 써달란다. 내민 수첩에 모여있는 페루 꼬마들 이름을 일일이 다 적어주고 마지막으로 이름 하나씩 부르며 손 들라고
출석 체크까지 했더니 좋아라 웃으며 수줍게 인사하며 간다. 세계 어디든지 꼬마들은 귀엽다니깐.
찬찬 일대는 바로 해안가 근처인데도 오히려 신기하게도 건조한 편이다. 홈볼트 해류의 영향으로 열대성의 습한 바람이 갑자기
차가워져서 비 대신에 안개가 되어 육지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그 덕에 유적을 이루고 있는 벽들은 모두 흙이나 햇볕에 말린
벽돌로(아도베) 되어 있어서 석조인 잉카문화와는 완연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토벽에는 새나 물고기를 소재로 한
부조가 이어져 있는데, 그 섬세하고 정확하게 반복된 무늬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러나 요즘 엘니뇨 현상으로 비가 내리는
바람에 유적 곳곳에 벽이 녹아 내리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치무 왕국의 역사는 잉카와 마찬가지로 스페인군의 침입에 의해 반세기 전에 잉카 제국에 합병되었다. 잉카화의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고유의 문화를 잃지는 않았다. 이 황무지 땅에 안데스 산맥의 물을 끌어와서 모래땅을 녹지대로
바꾼 고대 문명 치무 왕국. 유적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 어려운 아니 거의 문명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지역에 지금의 기술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리만큼 화려하고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문명의 흔적들을
접할 때, 참으로 불가사의한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이 사람 사는 세계에 대한 낯선
기분이라고 할까.
 
  안데스 산맥의 조그마한 마을 와라스에 도착해서 보니 살 것 같다. 3,028m의 높이에 자리잡고
있는 터라 바로 이 서늘한 기후 때문! 페루 최고봉인 와스카란(6768m)를 비롯해서 각종 높은 봉우리들에 둘러 싸여
있어 그 경관 또한 기가 막히다. 주변의 산들로 가볍게 하이킹이나 갈까 하는 생각에 여행사를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3박4일로
이어지는 양가누꼬~산타 크루즈 구간 안데스 산맥 트레킹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 시기도 비수기인 까닭에 가격도 50 달라(US)밖에
하지 않는다(믿겨지는가? 물론 음식, 텐트, 가이드, 차량, 등의 그 모든 것이 포함된 가격이다. 단, 국립공원 입장료는
별도).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기 때문에 우선 고도 적응도 할 겸 가볍게 근처 추룹 호수로 하이킹을 갔다 온 후 결정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하이킹 장소로 콜렉티보를 타고 가는데 안데스 산맥의 경관은 정말 아름답다. 그러나 경치 감상도 잠깐
콜렉티보에 내려서 슬슬 걸어 오기 시작하는데 이거 영 숨이 찬다. 걷는 거라면 나도 한 경지 이른 사람인데 높은 고도
탓인지 조금만 걸어도 힘에 부친다. 게다가 키는 작지만 이 고도 높은 산들에 능통한 가이드 빅터, 키 190cm의 장신
영국인 시몬, 체력 좋고 키 또한 큰 예현이, 그리고 키 작고 이 모든 것들에 부치는 나. 그 결과는? 빨리 걸어도 쫓아갈
수 없는 저 무리들을 나중에는 포기해 버리고 혼자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올라갔을까 드디어 가파른 언덕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넘어도 넘어도 끝이 없다. 가파른 돌 언덕들을 넘어서 겨우 한숨을 돌리며 쉬는데, 그때 펼쳐진 안데스의 경관들이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높디높은 산들, 그리고 그 봉우리 꼭대기의 만년설들, 푸른 하늘과 어울러진 하얀 구름들.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한참 외길을 지나 마주친 큰 바위 언덕에 이르니 이미 숨이 목 너머 머리 끝까지 차 두통을 동반하기
시작. 내 몸 상태에 뭐라 할말 조차 없다. 간단히 샌드위치와 스낵, 과일들로 요기를 하고 바위언덕을 올라서니 끝조차
보이지 않는 너무나도 가파른 언덕이 또 다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분명 어제 지도상의 거리를 봤을 때는 정말 가볍게
하이킹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것들이 낯설기만 했다. 드디어 코 근처까지 마비가 되며 머리가 윙윙거린다.
정말 죽을 것 같아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고 하니깐 결국 예현이가 서포터로 남았다. 내 가방까지 짊어지고 나를 끌어당겨
준 결과 드디어 그 가파른 언덕을 넘어서자 보이는 건 더 심한 90도 경사의 돌 계곡! 그 계곡을 넘어야 호수가 있단다.
한참 암벽 타기 끝에 간신히 당도한 호수는 눈물이 날 정도의 아름다움을 나에게 선사해 주었다.
아침 8시30분부터 시작하여 오후 2시가 넘어 정상에 도착한 우리! 산봉우리의 빙하에 둘러싸여 푸른빛을 띠는 해발 4,450m에
위치한 추룹 호수는 차고도 아름다웠다. 근처 바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감동에 젖어 있는데 난데없이 우박이 쏟아진다. 정신없이
왔던 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간간이 뒤를 돌아보며 왔던 길을 올려다 보니 ‘우리가 미쳤지’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호텔로 돌아와서 마비된 몸을 그대로 침대 위로 점프! 여행 중 우틸라에서 스노클링 할 꺼라고 겁없이 바닷물에 뛰어든 이후
두 번째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손 하나 까딱 할 수조차 없다. 게다가 어제 너무 무리해서 많은 고도를 한번에 오른 탓인지
숨쉴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콜롬비아부터 차근차근 여행한 덕분에 고산병에 걸려 본 적이 없는데, 아마
고산병인 듯 하다. 해결 방법은 단 하나. 낮은 지대로 다시 내려가는 것! 그래서 결국 4일간의 안데스 산맥
트레킹은 포기하고 페루의 수도 리마로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리마에 가면 아마 조금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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