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종단기]제26화 해발 2,400m의 안데스 산맥 밀림 속 공중도시

    쿠스코로 가는 길 도중에 있는, 페루 제2의 도시 아레키파(케추아어로
Ari Quepay:이곳에서 살거라~라는 뜻!)에서 ‘콘도르’를 볼 수 있다는 캐년 델 콜카로 향했다. 도시를 벗어나면서
보이기 시작한 익숙한 고원을 바라보니 이상한 선들이 땅에 그어져 있는 게 보인다. 알고 보니 페루 정부가 나무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지 않는 산들에 나무를 다시 심으려고 일정한 간격으로 땅을 파 놓은 것! 땔감을 위해 베기
시작한 나무가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 늦었지만 자연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다시 살리기에 나섰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

표고 4,800m의 고원의 길을 지나(차를 타고 지나가는데도 숨이 차다. 잉카 트레킹!!! 걱정이 태산이다) 캐년에 도착했다.
또 하나의 장관이 펼쳐졌다. 세계에서 가장 깊다는 캐년 델 콜카. 이름에 걸맞게 가파른 절벽의 1,200m 저 아래 잔잔하게
흐르는 콜카 강이 보인다. 그 가파른 절벽에 프레 잉카 시절 원주민들이 계단식 밭을 일군 흔적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수
없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곧 페루를 대표한다는 새, 콘도르를 볼 수 있다는 크루즈 델 콘도르로 이동했다. 아침에 내린
비의 영향으로 한껏 추워진 날씨에 덜덜 떨며 기다리기 1시간. 무심한 콘도르는 나타날 기색이 없다(그 이후로도 ‘콘도르’를
봤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다들 추위에 떨었다는 얘기 뿐… –;).
사실 이 캐뇬을 제대로 트레킹 하고 싶었지만 이제 몇 일 후면 시작될 4일간의 잉카 트레킹을 위해 체력을 아껴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와라스에서 표고 4,550m 까지의 트레킹에 질린 후, 고도 높은 산을 트레킹 하는 것에 대해 가뜩이나
공포심이 가득해 이쯤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것도 과히 나쁘지만은 않다. 자 이제 드디어 ‘쿠스코’다!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사를 돌아다니며 잉카 트레킹 조사를 시작했다.
학생 할인을 받으려면, 3일 전 예약을 해야 한단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라도 이곳 쿠스코로 다시 돌아오려면, 2일 후에
시작할 수밖에 없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우리의 국제 학생 카드를 곱게 복대에 넣어둔 채 일반요금을 지불했다. 매끼
식사 및 티타임과 함께 간식이 나오지만, 힘들 때 하나씩 입에 넣을 사탕이랑 초콜릿과 마실 물(이를 위해선 정수약이 필요하다.
그러나 4일내내 2L짜리 물 한 통으로 버티는 저력을 발휘하는 우리. 훗. 별 거 아니다) 등 이것저것 준비로 바쁘기만
하다.
쿠스코는 옛 잉카 시절 수도였던 도시인 만큼, 정교한 석조물과 콜로니얼 건물들로 이루어진 예쁜 도시다. 그 옛날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 시대 건물들을 철거시킨 후, 잉카의 초석 위에 스페인의 교화와 저택들을 세웠다고 한다. 대지진 이후 스페인의
건물들은 모두 무너졌지만, 잉카의 석조물은 굳건하게 남았다고. 특히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 붙여진 석조물을
보면 공감이 된다. 골목골목 잉카의 돌담들을 지나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는 분위기 있는 카페들. 마치 우리나라 인사동 작은
골목들의 주점들과 카페 같아 한껏 정이 간다. 한가지 흠이 있다면, 우리가 과히 좋아하지 않는 여행자들로 가득하다는 것!
현지인의 말로는 한창 성수기에 비해 15%에 불과하다지만 보이는 건 ‘그링고’ 밖에 없으니 조용하게 쿠스코만의 맛을 느낄
수 없어 불만이다.


그러나 언덕 위 우리의 조그마한 숙소에서 보이는, 골목골목 가스등과 함께 켜지는 집들이 보석같이 빛나는 쿠스코의
정경은 정말 일품이다.
자, 드디어 마추피추로의 4일간 트레킹이 시작된다. 어떤 일들이 기다릴지, 어떤 멋진 장관들이 또 펼쳐질지,
그리고 얼마나 고생을 할지. 까짓 거 죽기 아니면 살기다.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떠나기 전날 밤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 첫째날 아침에 역시나 늦잠을 자는 바람에 후다닥 어제 싸 놓은 짐을 짊어지고 마추피추 트레킹
출발지에 도착했다. 3일 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았던 까닭에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검문을 통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미리 여행사측에서 가공의 인물로 예약을 넣어둔 자리로 들어갔기 때문이다(내심 떨렸다. 왜냐.. 계속 이름 스펠링을 외우지
못해서–;). 짐을 작게 꾸린다고 했는데, 두터운 침낭과 매트리스가 더해지니 그 무게가 제법이다. 내리는 비와 함께
드디어 ‘마추피추’로의 첫날이 시작됐다. 함께 하는 우리의 멤버들은 나이가 다들 비슷한 것 같아 좋았는데, 처음부터 어찌나
무서운 속도로 걷기 시작한다.
와라스 트레킹 때 꼴찌에 대한 악몽을 가지고 있는 터라, 바짝 긴장한 채 뒤처지지 않기 위해 같이 속력을 내는데 평지를
지나 나온 오르막길 쯤에 이르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 4일간 죽도록 걸을텐데.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거지.’ 뒤처짐의 여유라고나 할까.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개를 들어 주변 풍경도 감상하며 걷기 시작하는데
풍경 하나는 예술이다.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 구름들, 계곡들.
잉카의 문명은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레바퀴가 없는 문명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도로는 두 사람이 걷기에
버거울 정도로 좁은데다 그다지 평탄하지 않다. 마추피추로 가는 길 역시, 협소하고 가파른 길들이 협곡과 산을 지나 끝없이
펼쳐져 있다. 스페인의 침략을 피해 비밀의 도시로 향하던 그 잉카의 길을 걷는 기분이 색다르다. 8km의 트레킹 끝에
첫 번째 캠프에 도착했다. ‘지옥의 날’이라고 알려진 내일의 일정이 심히 걱정되지만, 팀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함께 한
따뜻한 저녁 식사에 피곤이 조금이나마 풀린다. 시작이 반이니깐 이미 50%는 성공한 거라고 할 수 있겠지?
지옥의 날이라 불리우는 둘째날은 포터 아저씨들의 텐트 안으로 들이미는 따뜻한 코카티와 함께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악~’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지기 시작하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다. 울퉁불퉁 돌 계단들이 더욱 지치게 한다.
코카 잎(코카잎은 지치지 않게 만드는 효능이 있단다. 사실 씹는 게 더 힘들었다. 코카잎 씹으랴. 숨쉬랴)을 연신 씹어가며
계속 나오는 오르막길에 기절해 가며 한 5시간을 올라가니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저 정상에 얼른 올라 쉬고 싶은 마음
굴뚝 같은데, 다리가 움직여 주지 않는다. 열 걸음 떼고 쉬고, 열 걸음 떼고 쉬고.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다행히
꼴찌는 면했다. 멤버 중 콜롬비아 언니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느긋이 앉아서 다른 사람까지 기다리는 여유까지 즐긴
후 두 번째 캠프 사이트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캠프장에서의 티 타임을 생각하며,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굴러 떨어질 가파른 낭떠러지를 신나게 뛰어 내려갔다.
표고 2,840m에서 4,200m까지의 12km 장정을 끝낸 둘째 날 이후, 우리는 꽤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빠른 속도로 걸어가는 우리 팀들과 함께하다 뒤쳐지면서 온갖 다른 팀 사람들을 만나 인사하는 여유를 즐겼던 까닭이다(인사성
하나는 밝다. ^^). 캠프 사이트를 지나 보이는 저 가파른 언덕길을 내일 또 다시 올라야 한다. 하지만 죽음의
날이라는 둘째 날을 무사히 끝내고 더 이상 두려운 게 무엇 있으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연신 오르락 내리락 했던 11km의 셋째 날 트레킹을 마치고 드디어 4일째.
해돋이와 함께 마추피추를 보기 위해 새벽 4시 반에 길을 떠났다. 1시간 반쯤의 트레킹 끝에 정상에 있는 바위에 올라서자
저 멀리 안데스 산맥 밀림 속 해발 2,400m 바위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마추피추가 그 고고한 모습을 나타냈다.
아~ 이 감동, 이 기쁨, 이 뿌듯함을 어떤 말로 어떤 글로 표현하리!
굽이쳐 흐르는 우루밤바 강을 두고 겹겹이 펼쳐져 있는 산, 그 절벽 너머 아슬하고 견고하게 자리 잡은 마추피추. 신전을
중심으로 건설하여 신성한 도시라 불리우는 마추피추는 전체 면적 5km² 정도로, 절반 가량이 경사면이고 1만 명 정도의
잉카사람들의 자급자족의 생활을 위한 계단식 밭(안데네스)이 경사면 가득히 펼쳐져 있다. 유적 주위는 높이 5m, 두께
1.8m의 성벽으로 견고하게 만든 요새 형식으로 산 아래에서는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고 공중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서 ‘공중 도시’라는 이름 또한 가지고 있다.
스페인 침략 시절, 스페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비밀 기지 비르카밤바를 건축했던 잉카인들. 400년의 긴 세월이 지나
비르카밤바에 대한 옛날 기록 ‘대단히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정교한 기술로 건축된 장대한 건물들이 솟아 있다’는 몇 줄에
의존하여 미국의 역사학자 하이람 빙검이 결국 이 마추피추를 발견해 냈다. 후일에야 마추피추가 그 역사 속의 비르카밤바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둘러싸인 견고하고 장대함을 자랑하는 마추피추의 발견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리라. 그러나 최근 마추피추가 1년에 1cm씩 가라앉는다고 한다. 실제 여기저기 무너져 내리고 있는 돌담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많은 추억과 소중한 교훈들을 나에게 주었던 4일이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할 것, 힘든 일 이후에는 반갑게
찾아 오는 달콤한 휴식이 있다는 삶의 진리를 알았다고나 할까. 크리스마스를 쿠스코에서 보냈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성대히 보내겠다는 우리의 꿈은 피곤에 절은 몸과 함께 크리스마스 날 오후 3시까지 자버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티티카카 호수의 도시 푸노로 가는 길. 트래킹 후 뿌듯하게 채워진 마음 하나만으로 다시 떠나는 여행길이 즐겁기만
하다. 푸노에서는 투르차(연어) 요리가 그렇게 유명하다는 데 그냥 지나갈 수 없겠지?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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