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종단기]제15화 이제 우리도 스페인어를 할 수 있다!

  테말라시티
도착하자마자 ATM찾기에 3시간을 보내고 한달동안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던 마사시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안티과에서 2주간 스페인어를 배우며 체류할 예정인 우리와 무서운 속도로 센트럴 아메리카를 내려갈 마사시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내년 4월에 여행의 마지막으로 한국에 오겠다는 마사시와 한국의 전통 주점에 가서 부침개를 먹으며 막걸리를 마실
그날을 기리며. 그때까지 서로의 여행에 즐거운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거지 돼서 나타나면 어머~ 안녕하세요! 하고
도망가야지~) 안티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학교 삐끼 아저씨가 히라이의 소개로 우리가 가려고 했던 학교 아저씨다.
손쉽게 학교에 도착해서 2주간 홈스테이 할 집도 구하고 스페인어 완전 독파의 날을 위해 각자 다른 집에서 지내기로 결심했다.
그 동안 어울려 다닌 많은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만의 생활이 시작되어서인지 떠돌이 생활을 하다 자기 방도 생기고 밥 걱정
안하는 생활을 하게 되어서인지 이 새로운 생활의 시작에 마음이 뒤숭숭하다. (사실 그 동안의 자유분방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하루에 5시간 수업을 위해 스페인어 학교를 가야 한다는 사실에 더
 

뒤숭숭했다.–;)그러나 이제 누군가 스페인어로 물어오면 적어도 ‘노 아블로 에스파뇰(스페인어 못해요)’이란
말은 안 하지 않을까.
하루 5시간 수업에 그 동안 공부와 담쌓고 살던
우리는 머리에 쥐가 난다고 하면서 두가지 상반된 생활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아침마다 놀이터에서 공부하며 꼬박꼬박
숙제해가는 모범 학생 안예현양 VS 나갔다하면 약속 물어와서 이틀에 한번 밤마다 꼬박꼬박 안티과의 경제를 위해 바 순회
공연을 하며 늘 다음날 아침 학교 가기 전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한은화양~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공부
습관. 둘째, 사교성. 셋째, 홈스테이 집. 넷째, 스페인어 선생님. 정말 많은 이유가 있지 않은가! 첫째, 둘째 이유는
설명이 필요 없을 테고 셋째 이유는 예현이가 홈스테이한 집에는 2주동안 아무 학생도 오지 않아 늘 술에 취해있는 할아버지와
발음 정확하지 않은 할머니 밖에는 얘기상대가 없어서 홀로 놀 수밖에 없었다는 것. 가장 중요한 네번째 이유. 예현이의
스페인어 선생이었던 훌리오는 정말 재미있어서 예현이는 매일매일 수업이 즐거웠던 반면, 은화의 스페인어 선생이었던 빼드로는
매일 은화에게 bonita!(예쁘다.)를 외치며 처녀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좋아한다는 느끼한 고백까지 늘어 놓았다.(참고로
빼드로는 생긴 것부터 느끼해서 33살에 애 셋딸린 유부남이다.) 고로 말 늘어놓기 좋아하고 사람 사귀는 거 좋아하는 은화가
두손 두발 다 들고 수업시간에 느끼한 시선 피해 노트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 그러나 늘 중간에 입이 가만 있질 못하고
얘기를 늘어 놓다가 정신 차리고 본연의 수업 자세(머리 아프다. 배 아프다. 피곤하다며 쳐져 있기.–)로 돌아가는 생활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늘 입에 달고 다니는 얘기지만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가서 2주라던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 어느새 훌쩍
가버렸다. 2주 동안 우리동네가 되었던 안띠과. 매일 학교가는 길 멀리서 우리가 나타나면 손부터 먼저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하던 인터넷까페 경비 할아버지, 비만 오면 물이 철철 넘쳐 차가 지나갈 때마다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돌길, 창틀이 도로
반을 차지해 지나갈 때마다 부딪쳤던 작고 아담한 콜로니얼 풍의 집들, 오후만 되면 쏟아지는 비 피하기 좋았던 처마들,
하도 가격을 깍고 다녀서 더 이상 들어가기 민망했던 민예품 메르까도, 일주일에 3번 장이 서는 날 색색가지 우이필을 입고
나타나서 각종 채소며 과일을 팔던 인디오 아주머니들, 안띠과에서 사는 외국인들의 총 집합소 리키스 바, 늘 안개에 휩싸여서
제대로 된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볼깐데 아과. 3시세끼 그 만족스럽고 맛있었던 식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2주간 정들었던
우리 방. 이 모든 정착된 삶들과 작별을 하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니 도착해서 뒤숭숭했던 마음이 또다시 절로 든다.
 

그러나 스페인어로 중무장하고 새롭게 시작되는 여행에 설레이는 마음이 더 큰 걸 보니 역마살(현대어로 후천성
여행 중독증)이 끼긴 단단히 꼈나 보다.
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아띠뜰란 호수의 빠나하첼은
그링고스떼낭고(미국인들의 마을)라고 불리는 것이 실감날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을 뿐 더러 관광객용 호텔, 음식점,
기념품점으로 가득 차있다.(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미국인을 그링고, 동양인을 따까따까라고 부르는데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인을 쪽바리, 중국인을 뗏놈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도 호반의 관광객용 레스토랑에서 맥주 한 병 시켜놓고
폼 잡다가 금새 우리 스타일을 찾아 시장으로~ 정말 이곳은 현지인과 관광객의 무대가 나뉘어져 있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물결에 휩싸여 어디론가 쓸려가기 시작하는데 그 와중에 보이는 싼 길거리 음식에 여기가 천국이라고 감탄하는 둘.
어디를 가든지 꼭 싼 먹을거리를 찾아내고야 만다. 무슨 음식인지 알면서도 께 에스? (이게 뭐에요?)를 연발하며 결국에는
조그맣게 맛보라고 내미는 덩어리를 입에 넣고 흐뭇해 하며 돌아다니다가 시장 깊숙이 들어가 보니 무슨 축제 비슷한 것이
열리고 있다. 치치까스떼낭고의 사람들이 와서 가면을 쓰고 전통 의상을 입고 흥겨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는데
주변에는 각종 놀이기구들이 널려 있고 인디오 아이들이 줄을 서서 간만의 놀이에 흥겨워 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가만히
춤 추는 사람들 구경하며 같이 어깨 들썩이며 춤 추다가 제일 큰 놀이기구로 눈 돌린 둘. 훗 재밌겠다. 몇분 후 표 한
장씩 거머쥐고 안전 장치 하나 없는 놀이기구에 매달려 있는 두 동양인. 겉보기 우리나라 관람차 같아 보여 경치
 
  구경하기 좋겠다 싶어 탔는데 슬슬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내리 꽂는다. 워낙에 청룡열차를 많이 타 논덕에
그 속도는 무섭지가 않았는데 흔들흔들 거리며 안전장치 하나 없이 팽팽 돌아가는 의자에 하얗게 질려 괴성을 지르며 간만에
시장 구경 온 인디오들에게 좋은 구경거리 하나 더해주었다. 살아 나온 것에 감사하며 시장을 나서다가 아까 본 옥수수에
현혹되서 왔던 길을 돌아가던 중에 예현이가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다. 더 중요한 국제학생증은 생각하지도 않고 지갑 안에
들어있던 30께찰(우리나라 돈으로 5천원–;)을 외치며 부르르 떨다가 금새 은화한테 돈 빌려서 옥수수 사먹고 나오며
다 먹고 남은 큼지막한 옥수수대로 때려줘야 한다고 휘두르며 헛소리를 늘어놓는 안예현양. 조금 더 긴장하며 다녀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다음 날,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마을인 산페드로로 들어가니 숙소며 음식이 빠나하첼보다 반은 싸진다. 한시간에
20께찰인 말을 타고 절벽 옆 산길을 따라 마을 뒤편 호숫가까지 가는데 그 경관이 예술이다. 화산에 둘러싸여 있는 푸른
호수 그와 더불어 멋진 그림이 되어 주는 파란 하늘과 하얀구름, 길을 따라 나있는 커피 나무들과 종종 보이는 오두막집.
이 모든 경치를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말 위에서 유유낙낙 보자니 신선이 따로 없다. (그러나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 두
말 경쟁 붙여 신나게 달리며 속도 내기에 바빴다는 사실. 보다 못해 같이 따라나선 가이드가 경치 좀 보라고 핀잔줌.)
말을 타고 근처 화산에 올라가는 5시간 코스가 무지 탐이 났지만 안띠과에서 만난 캐나다인 윌과 온두라스의 섬 우띨라에서
만날 약속을 해논 터라 시간이 없다. 안티과에서 2주간 체류하며 딸거라던 온두라스 비자도 따놓지 않아 과테말라 시티에
들렸다가 온두라스로 넘어가야 하는 처지에서 더 이상의 신선 놀음은 불가능이다.
   
  행 하는 동안 날짜. 요일 관념없이 살아온 터라
대사관이 토,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는 일요일에 비자 따러 갈 꺼라고 과테말라시티에 도착해
버렸다. 다음날 대사관에 찾아가보니 몇분안에 손쉽게 나올줄 알았던 비자가 하루가 걸린단다. 볼 거 없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 과테말라 시티에서 이틀밤을 보낼 수 밖에 없단 말인가. 그러나 운좋게 케이블 TV가 있는 호텔에 머물게 돼서
열심히 채널을 돌리다가 발견한 아리랑 채널에 목숨 걸고 간간히 나오는 한국 뉴스와 뮤직 비디오에 감동하며 눈물 흘리고


있는 둘. 그뿐 아니라 요리 채널에서 계속 되는 환상적인 요리에 끼니를 빵으로 때우는 생활에 이력이 난 둘은
닭 요리를 보다가 결국 뛰쳐 나가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통닭 한마리 바닥에 놓고 기분 좋게 앉아서 고추장과
다시다에 연신 찍어먹으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우린 어딜 가든 살아남을 것이야! 무비자 체류 상태에서 당당히
온두라스 비자를 받아내고 치킨 버스에 몸을 싣고 국경 심사소 문닫기 15분전에 아슬하게 도착했다. 과테말라
출국 심사소 아줌마가 우리 여권을 한참을 뒤지더니 다음에 올 때는 비자 받아 오란다. 늦은 시간에 왔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20께찰을 내야 했지만 비자 수수료 USD$50 굳고 아무 문제 없이 통과했다는게 어딘가! 훗. 앞으로
비자 문제가 여기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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