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로 세상 제1강 아날로그적 ‘정제미’ vs 디지털적 ‘생생함’

 
올해 고3이 된 아들 녀석은 이미 몇 년 전부터 ‘디카’를 사달라고 졸라댔다.
직업이 사진 작가이다 보니 카메라는 집안에 널려있다. 평소 필름 카메라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들 녀석이 유독
디지털 카메라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 의아스러워 이유를 물어보았다.
녀석 왈, 디지털 카메라는 누르기만 하면 사진 찍히기 때문이라나.
“아니 ! 필름 카메라는 안 그런가 ?” 라고 반문해 보았지만 디지털 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물건이라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아들 녀석의 카메라란 ‘디카’를 의미한다.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자란 세대의 당연한 결론이기도
하다. 갓 태어난 오리새끼는 처음 본 대상을 자신의 어미라 믿는다. 이러한 각인 효과는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듯하다.
첫 경험이나 접한 분야, 혹은 처음 사용했던 물건에 대한 기억이 유독 강렬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내가
나의 첫 카메라인 CANON을 필름 카메라의 원형으로 생각하듯이 아들 녀석에겐 디지털 카메라가 원형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까. 무릇 출발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들 녀석은 사진에 대한 프로세스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르면 바로 찍히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지 그
원리가 어떻고, 조작을 위해 이것저것 조절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ON / OFF의 개념만 가지고 새 휴대폰의 사용법을 사용 설명서 없이 터득하듯이 디지털 세대의 대상에 대한
접근법은 행위에 대한 결과만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다. 원인과 결과를 따져가며 현상에 접근하는 아날로그 세대인
애비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갖은 핑계를 대며 결국 ‘디카’를 사주지 않았다. 주둥이 닷 발이 나온 아들
녀석은 급기야 휴대폰에 달린 ‘디카’로 자기만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짜식 ! 그러다 제풀에 지치겠지” 라고 생각하며 조용히 아들 녀석의 고독한 예술을 지켜보았다.
컴퓨터에 담겨지기 시작한 아들 녀석의 사진은 자기 주변의 친구(물론 여학생 사진들 이지만…. ) 들과 키우고
있는 강아지, 일상의 풍경들로 금방 가득 찼다.

명색이 사진쟁이인 애비의 호기심이 발동되어 아들 녀석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엿보게 된다. “제가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라고 내심 빈정거리며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그야말로 ‘까암~짝’ 놀랐다.

휴대폰 카메라의 조악한 화질만 뺀다면 사진 한 장 한 장은 보통 카메라로 찍은 것보다 훨씬 생동감 넘치는 모습과
자연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애비의 사진이 지향하는 정제와 세련을 대신하는 리얼리티와 역동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찍고 싶은
대상을 향해 무심코 눌러댔음 직한 사진들은 내가 애써 좋은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들였던 노력들을 무색케 해
버렸다.

아들 녀석은 “어떻게 사진 찍어야 하는가?” 하는 기술적 스트레스 없이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
자신의 관심사를 아무런 부담 없이 구현시켜줄 도구가 그의 손에 들려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사진 촬영법을
능가하는 무엇을 찾아내지 않았을까.
그의 사진엔 무엇을 해도 좋은 자유와 촬영의 즐거움이 담겨 있고 기존의 원칙과 과정을 답습하지 않아도 좋은
파격이 있다. 그야말로 눈의 연장으로 쉽게 빼어들 수 있는 간편한 ‘디카’만이 있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억압(단단하게 고정된 지식과 기준, 관습과 억제라고 할까?)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의 방법론은
이론적 지식과 수많은 경험으로 무장한 애비의 자부와 다른 그 무엇을 분명히 담고 있었다.
컴퓨터를 끄면서 절대로 아들 녀석을 무시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땡빚을 내서라도 쓸 만한 ‘디카’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늦었지만 혹시 알아. 8살 때 아버지가 사준 무비 카메라 때문에 영화의 길을 걷게 된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될지.”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과 특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사진 찍기 위한 기술적 노력과
숙련 없이도 자신의 표현 의도를 얼마든지 구현시킬 수 있다는 매력. 이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혁명과도
같은 변화라 생각한다.
첨단 기술이 담긴 디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진에 대한 원시적 조작만(셔터를 누르고 나쁜 것은 삭제시키면 된다)으로
자신의 표현 도구로 변한다. 카메라 진화의 역사상 처음으로 디카는 오로지 사진 찍기 위한 순수한 도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필카에 대한 조작의 스트레스란 얼마나 컸던가. 조리개 혹은 셔터 속도를 얼마에 놓아야 하는지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고급 카메라로 찍었더라도 최종적으로 인화된 사진을 받아 드는 순간에야 안심하게
되는 필카의 부담이란 엄연히 존재한다.

촬영의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카와 많은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필카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방법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두 카메라 타입에 따른 촬영 방법이 다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디카는 버리기 위해
촬영하고 필카는 주워 담기 위해 촬영한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한 최종 목표가 같더라도 도구의 차이에 의한
접근법은 전혀 다르다.

버리기 위해 촬영하는 디카는 현실을 소모되어야 할 이미지로 바꾸어버린다. 이를 부추기는 것은 액정 모니터이다.
사진의 최종 결과와 똑같은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이 작은 패널의 위력은 비춰진 모든 것을 이내 사라져 버리게
하는 필카에 달린 파인더의 불안함을 간단히 부정해 버린다.

나는 필카와 디카의 근본적 차이를 대상을 현실과 고정된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파인더의 구조로 파악한다. 기술적
스트레스를 해소시킨 디카의 또 다른 매력이 파인더라는 점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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