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Countdown 10, 9, 8, 7…

 

 
 

새벽 두시까지 이어진 행진에 정신 없이 잠들었던 어제의 피곤함을 껴안고, 햇살 비치는 11시경에 잠에서 깨었다.
어김없이 ‘기상’이라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어젠 어떻게 걸었었지? 여긴 어디지? 아, 오늘은 행진이 없는 날이다.

정신 없었던 어제를 뒤로한 채, 이제서야 강원도의 절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산자락의 한 폐교. 교실 3개 밖에 되지 않는 이 학교는 벌써 8년 전에 모두가 떠나버린
곳이라 한다.
대신 주인이라고 밝히신 할머니가 운동장에 상추, 콩잎, 무, 배추 등등을 키우시며 지키고 계신다고 했다.
아침이 되어서야 만나 뵐 수 있었던 할머니. 스스로를 할머니라 칭하시는 이 분은 정말 정다운 분이셨다. 문예창작과를 나와
글을 쓰는 문인이시며, 미술에 상당한 조예를 갖고 계시는 예술가이시며, 대학 강단에 시간강사로 강의 하시는 교수님이시며,
산골로 들어와 홀로 강원도 작은 산자락에 정착하신 사색가이자 자연인이셨다. 우리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 써주시며, 배추와
무 김치 한 바구니를 퍼다 주시는 할머니의 세심함에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
  ‘풀잎 새 따다가 엮었어요/
예쁜 꽃잎도 넣었구요. /
언제쯤 그 애가 징검다리를 건널까/
하며 가슴은 두근거렸죠’
어느 샌가 자연스레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학교 앞 작은 개울가에서 머리가 얼얼할 정도로
차디찬 물에 발담금질하며, 한껏 여유로움을 부릴 수 있었다.행복했다. 정말 행복했다. 자연스러움. 여유로움.
깨끗함. 시원함. 흐르는 물. 차디참. 많은 것들에 행복해하며, 저녁엔 오랜만에 불고기를 구워먹었다.
행진 중에 우리의 예산으로 조금은 부담이 되었을지언정, 그리고 당장 내일은 라면을
먹을지언정, 푸짐한 저녁을 먹으며, 한껏 여유로움을 부리며, 너무나 운치 있는 강원도의 한 산자락, 작은 초등학교에서의
밤은 무르익어간다.
 
스무번째 행진날.
너무 빨리 흘러가는 시간이 못내 아쉽다. 이제 남은 날은 8일.
아직까지 못한 게 너무나 많은데. 94명 모두에게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다가가지 못했고,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오리라 했던 그 다짐도 아직까지 지켜내지 못했으며, 힘겹게 하루하루 견뎌내다 보니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갖지를 못했었다. 이제 일주일 여 남았다는 말에 내심 아쉬워하며 오늘도 대열에 오른다.
   
     
여전히 덥다. ‘태풍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일기예보는 예상을 비켜갔고, 다시 전해들은 일기예보는 ‘다행히도
태풍이 비켜갔습니다’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태풍이 비켜간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토록 오래도록 이어지는 무더위도 태풍만큼이나 걱정스러움이었다. 항상 딜레마였다.
더딘 발걸음으로 빗속을 헤매고 다닐 때는 애타게 태양을 기다렸으며, 반대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햇볕 공세 속에서는
차라리 비를 기다렸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우리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것을. 차라리 태연해지자. 몹시도 변덕스러운
날씨를 탓하지 말고 차라리 태연해지자라고 무던히 주문을 걸어본다.
역시나 강원도라는 생각. 지나가는 곳곳마다에 펼쳐진 절경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산과 강이 끊임없이 이어진
곳. 그리고 소박해 보이는 곳. 끊임없이 이어진 동강의 물줄기를 따라 이어진 우리의 행렬. 행진 도중 만난
자전거 하이킹 족을 내심 부러워하며, 우리 코가 석자인데도 불구하고 그 하이킹 족을 응원해주며 열심히 걸었다.
 
숙영지 근처에 당도해 맞이한 백운폭포. 그 시원하게 뻗친 물줄기를 한참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금 어린아이 마냥 사진 찍고 좋아하며 숙영지에 도착했다. 이제 일주일간 이어질 강원도.
마음껏 그 절경을 즐겨봐야겠다. 그리고 내 속에서의 여유로움을 키워봐야겠다.
    오늘의 행진거리 28Km. 하지만 아침부터 무덥다. 새벽 5시 30분 기상을 하고 간단한 체조 시작. 벌써부터 몸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몹시도 힘든 행군이 되리라 예상된다.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숨이 턱에 차올라 헉헉거린다. 찐득찐득 온 몸은 땀으로 젖었으며, 얼굴과 팔, 다리는 정말 시커멓게 타버렸고, 심한 갈증으로
목구멍이 찢어질 듯 고통스럽다.날씨에 관한 한은 체념하려했으나 쉽사리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만 더 시원했으면, 차라리 가랑비라도 내려준다면 하고 언제나 기대해보는 것이다.
이런 무더위 속에선 주위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
힘듦에, 발걸음 하나하나 옮기기가 몹시도 힘들어 그저 앞사람 다리만, 그리고 땅바닥만 쳐다보고 걷는 것이다. 침묵이 이어진다.
말조차 할수 없는, 그래서 자연스레 침묵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그시 옆사람 손을 잡아본다. 나도 힘들지만,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지도 모를 옆사람 손을 지그시 잡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

‘젊음에 대한 도전과 미래를 향한 발걸음’. 우리 4기
대장정 모토이다. 왜 대장정을 시작하게 되었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대답은 이 모토에 잘 나와있다.
  아직 젊기에 많은 것들을 도전해볼 수 있으며, 그러한 도전과 열정을 바탕으로 스스로 미래를 향해 도약해보려 하는 것이다.(식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한번 도전해 보시라. 결코 식상하게 들리지만은 않을 이 지독한 체험을.) 고백하건데 ‘젊음’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알 것 같다. 백여명이 함께 모여 이루어낸 우리의 대장정 행렬. 무수한 땀방울로
이루어진, 푸르고 건강한 젊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이 땅의 젊은 청년의 모습을. 진정한 ‘젊음’의 모습을..

무더위 속에 환자없이 진부읍에 도착.
어스름한 저녁, 하지만 여전히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진부의 한 깨끗한 교회에서, 본교 측에서 미리 준비해주신 정성어린
감자와 옥수수를 맛나게 먹으며 모처럼 자유시간을 가졌다. 서둘러 PC방을 가는 지기, 보고픈 이에게 전화하러 길게 줄지어진
행렬,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을 찾아 대형 마트를 찾는 지기들.. 그렇게 오늘 하루의 모진 무더위를 잊은채 마음껏 자유시간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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