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체험]제1화 양파(?)양의 가나 첫날밤 – ‘까만 세상에 나 홀로 백인 되어’

벽장 속에서 꽥꽥거리는 오리 울음 소리 덕에 새벽 4시가 조금 넘어서야 눈을 떴다. 억지로
다시 잠이 들려고 호흡을 고르다가 결국 포기하고 방을 나섰다. 호텔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가까이서 들리는
한 노파의 주문을 외는 듯한 소리에 움찔했다. 혹시 내가 제물로 바쳐지면 어쩌나 하는 엉뚱한 생각 때문에 내가 가나에
왔음을 실감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세인트로렌스 호텔은 가나의 수도 아크라 중 아치모토라는 지역에 있다. 이름은 호텔이지만 방은 모두 6개
정도 뿐이며, 하루 숙박료도 우리나라 돈으로 6,000원 정도로 매우 저렴하다. 방 안에 도마뱀이 없다는 사실이 그저
기쁠 뿐이다.

“내가 몇 살인지 맞춰봐”
“모르겠어 … 16살?”
이 호텔 주인집 딸인 샤를롯(8세, 여)과 오전 한나절을 놀았다. 이 곳 현지어인 twi어를 배워보려고 말을 걸었다가
된통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가나 현지어인 취, 판티, 위, 영어, 불어 등등 여러 언어를 할 줄 안다.
“너 이름이 은영이라고? 가나에도 너랑 같은 이름이 있는데 보여줄께”하더니 학교 교과서인 농업책을 가져와서 ‘야채’ 부분을
펼쳐보인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바로 양파인 ‘Onion’이었다.
“넌 Twi어도, 불어도 못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그리고 넌 너무 작아서 선생님이 될 수 없어” 하며 계속 Onion,
Onion 하고 외친다.

오후가 되자 어제 우리를 마중 나온 토마스 씨와 그랜트 씨가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토마스 씨는 교회 목사, 그랜트 씨는
우리를 파견시키는 기관의 기관장이시다. 토마스 씨의 차인 ‘Prince’를 타고 아크라 시내를 계속 돌았다.
어딜 가도 흑인들 뿐이다. 그것도 검다 못해 푸른 빛이 나는 흑인들. 갑자기 외로워진다. 외국인이 가장 많기로 소문난
Osu street에도 갔지만 역시 흑인들 뿐이다. 토마스 씨 말로는 오늘이 주말이라 거리가 한산해서 그렇단다. 이곳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주말이면 상점이 모두 문을 닫고 사람들도 거리에 잘 다니지 않는다.

환전소에 가서 가나 돈 Cedi화를 샀다. 1$가 8600세디,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의 가치의 7분의 1정도 되는 셈이다.
100$ 짜리 지폐 두 장이 244페이지 분량의 책이 되어 나왔다. 편지 봉투에 돈뭉치를 넣었더니 봉투가 잘 덮이지 않는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를 찾기가 어렵다. 길바닥은 거의 붉은 빛이 나는 흙으로 되어 있는데 차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 바람이
인다. 열려진 창으로 그 붉은 먼지를 다 마시면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길가에서 놀던 아이들이 “ 오브로니~ 오브로니~”
하며 우리를 쫓아 달려온다. 브로니는 이 곳 현지어로 “백인”을 의미한다. 우리는 피부색이 다른 이유만으로 이 곳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이 곳 시간으로 오후 6시가 되자 졸음을 참을 수가 없다. 토마스 씨가 계속 시내를 여기저기 돌며 이건 뭐고 저건 뭐다라고
설명해주는데 잘 들리지 않는다. 저녁은 건너뛰고 8시쯤 호텔에 들어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눈을 뜨니 새벽 6시다. 이곳에서는 모두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아침 시간이 가장 활기 차다. 햇빛도 들어오고
덥지도 않기 때문이다. 정전이 되었다. 정전은 매우 흔히 있는 일인데 한번 전기가 나가면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
아침부터 샤를롯이 내 방 앞에서 “Onion, Onion”하며 나를 부른다. 아침을 주문 받으러 온 주인 아주머니마저
아침으로 계란과 Onion을 주시겠다고 한다. 이 호텔에는 4일 간 머무를 예정이다. 그리곤 바로 가나 제 2의 도시인
쿠마 시에 있는 중학교로 가게 된다.
아직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기만 하다. 까만 세상에 나 홀로 백인 여성이 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물 한 통을 사고 싶어도 가게가 어디에 있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다. 시내로 나가고 싶어도 버스를 어떻게
타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일을 시작하면 새로운 길이 펼쳐지리라.. 부푼 마음으로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도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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