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7년, 新 한류를 이끈다> 온몸으로 뱉어내는 영혼의 소리, 비트박스 은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가운데 다소 혼잡한 홍대 앞에서 이은준씨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배꼽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목걸이에 푹 눌러쓴 검은 비니모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커 보이는 듬직한 몸집. 왠지 다른 사람들과 달라 보이는 ‘포스’를 내뿜는가 싶더니 역시나 그 유명한 비트박스 은준이었다. 모 아파트광고에서 숙명여대 가야금연주단과 비보이팀 ‘라스트 포 원’과 함께 출연하여 신들린 비트박스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켰던 비트박스의 1인자.
세계대회를 휩쓸며 이제는 참가자보다 심사위원자격이 더 어울리는 젊은 비트박서들의 영웅.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엿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은 준은 쑥스러움 많고, 꿈 많은 우리와 같은 젊은이였다.





때는 1994년. 그가 14살이 되던 해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이은준씨는 ‘바닐라아이스’라는 가수의 앨범을 처음 접하게 된다. 그 중에 가사도 없고 MR도 없지만 사람의 입으로 낸 소리로만 구성된 트랙이 있었다. 그것이 이은준과 비트박스의 첫 만남이었다.“듣는 순간 필이 꽂힌 거죠. 당시엔 씨디도 없었어요. 무조건 테이프였죠.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들었어요. 어떻게 따라 하는지는 당연히 몰랐죠. 정말 기본적인 소리를 내는 데에만 3년이 걸렸으니까요.”



비트박스에 대한 전문가는 물론이고 자료조차도 전무했던 당시. 그는 보고 들어가며 배운다는 생각을 버리고 과감하게 자기가 직접 소리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자기만의 소리를 만들어 냈고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지만,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던 시대였다. 언더 세계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 다 그랬지만 역시 가장 큰 고민은 금전문제. 낮에는 동대문에서 장사를 하거나 이태원에서 호객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밤에는 홍대 클럽에서 밤새도록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그들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요즘, 마침내 그들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수많은 비보이들과 DJ 그리고 비트박서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중심에는 비트박스 세계대회우승에 빛나는 이은준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대중문화의 흐름이 서서히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요즘, 이제 이은준이라는 사람은 전문 비보이 팀에서 매니저의 관리를 받으며 스케줄을 조율하는 공인이 되었다. 클럽공연이나 비보이 초청 행사는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과 CF까지도 영역을 넓힌 그는 이제 젊은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의 하나로 대표되기도 한다. 갑자기 자신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한데,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다 보니 이젠 그런 것마저도 컨트롤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고.
“잘 하는 게 아니라 오래 한 거죠. (웃음) 사람이 높은 곳에 있을수록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는 관심? 부담감? 그런 것들이 심하다고 하던데 이젠 그런 것도 없어요. 예전에는 그런 조바심

때문에 하루에 4~6시간씩 연습만 했었거든요. 지금은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연습을 해요. 그것이 1시간이 됐든 5분이 됐든 말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감정보다는 비트박스를 즐기는 단계에 접어든 것 같아요. 편하죠.”
때문에 갈수록 자신이 보다 몰입하고, 즐기면서 공연할 수 있도록 제반 조건이라든지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야기가 그쪽으로 진행되자 그도 할말이 많은 듯 했다.

“해외공연 많이 다니죠. 주로 일본. 중국. 동남아 쪽으로 다니고, 가끔씩 유럽도 다녀오는데 각 나라마다 차이가 많이 나요. 한국도 예외는 아니죠. 일본 정도만 되도 할 맛이 나요. 음향시설이 좋은데다가 길거리에서 공연을 해도 일반인들이 좋아해 주시거든요. 인식 자체가 개방적인 거죠. 중국은 아직 낯선 문화라 그런지 ‘뭐 하는 거지?’ 그런 눈빛으로 팔짱 끼면서 지켜 보는 편이고요. 한국은 두 나라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아직은 아쉬워요. 서울에서도 클럽이 아니면 썰렁하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는 남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옛날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을 했지만요.”
최근 언론매체에서 집중 조명하고 있는 비보이문화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잊지 않았다.“자랑스럽죠. 저도 비보이팀에서 그들과 함께 한솥밥을 먹고 있다. 보면 정말 대단해요. 저도 비보이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 퍼포먼스를 할 때도 있으니까 친근하죠.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비보이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파워무브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비보이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데 단순히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크게 도느냐. 어떻게 하면 화려한 기술을 할 수 있느냐에 신경 쓰는 것 같아요. 일반인들도 리듬을 즐기며 자신만의 춤을 추면 훌륭한 비보이가 될 수 있는데 말이에요. 각종 언론매체에서 그런 점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조금 아쉬워요.”




14년 동안 비트박스를 해 오면서 소중한 추억도 많이 쌓았다. 황당한 경험도 많이 당했었고, 설움도 많이 받았지만 차곡차곡 쌓인 소중한 친구들과 잊을 수 없는 무대 위의 감동과 전율은 그가 비트박스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정말 세계 어디를 가도 이 바닥 사람들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일본을 가면 일본인 친구가 생기고 중국을 가면 중국인 친구가 생기죠.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가 친구임을 알아요. 정말 신나는 일이에요.”특히 그에게 공연이란 단순히 가지고 있는 재주와 끼를 다른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이은준이라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 그 자체이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CF촬영보다도 사람들에게 빙 둘러싸여 길거리에서 공연하는 순간이 더 재미있고 스릴 있다고. “정말이지 공연할 때가 제일 긴장되면서도 즐거워요. 특히 대학공연이 재미있어요. 이제 4월 대학축제시즌인데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걸요. 여대에도 공연을 가보고 싶어요. 여대에선 많이 공연을 못했었거든요. 무서워 하려나?(웃음)”




화려하게 2006년을 마무리했던 그에게 2007년은 더욱 다양한 가능성으로 풍성한 황금돼지의 해이다. 지난 한해 신 한류를 이끌었던 비보이들과 DJ 그리고 본인이 맡을 비트박서까지 한 자리에 모아 신개념 퓨전 퍼포먼스를 일반인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여러 뮤지션들과 더욱 많은 공동작업을 하며 비트박스에 대한 전도사역할도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다. 그의 꿈은 비트박스만으로 구성된 앨범을 내 보는 것.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걷다 보면 가까운 미래에 그 꿈이 실현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걸음 한걸음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걷는 그가 똑같이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미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하고 싶은 말이요? 간단하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라! 젊었을 때 저질러라! 후회가 남지 않도록 미쳐라!”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제대로 미쳐서 마침내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선 비트박스 은준. 그의 당당한 포부대로 새해엔 그의 비트박스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_김주성 / 12기 학생기자
동국대학교 정보관리학과 0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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