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한국의 스티브잡스를 꿈꾸며 미래를 향해 쏴라! ㈜디지털인사이드 대표 김유식














사실 김유식대표와 미래의 얼굴은 처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04년 이미 미래의 얼굴과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던 것. 당시 디씨는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사이트로서 입지를 확실히 굳힌 상태였고 김유식대표 역시 수많은 인터넷 폐인들의 대장님으로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중국진출, 코스닥상장 등 더욱 굵직굵직한 소식을 통해 인터넷업계의 돌풍으로 자리잡은 디씨. 이제 어엿한 사장님이고 전도유망한 IT기업의 CEO지만 특유의 넉넉하고 붙임성 좋은 웃음으로 기자를 맞이한 그는 여전히 옆집 아저씨와 같이 푸근한 대장님이었다.



기자: 회사에 들어올 때 만두를 사 와야 할지 고민했어요. 아직도 만두 좋아하시죠?
김유식: 물론이죠. 물만두보다도 김치만두를 더 좋아해요. 많은 디씨 폐인 및 이용자 분들께서 알고 계신 대로 만두를 많이 좋아한답니다. 맛있잖아요.
기자: 본인이 찌질하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유식: 네 저 찌질 합니다. 오죽하면 아내도 “오빠처럼 찌질한 사람은 처음 봤다”고 말하는걸요. 밤에도 잠을 안 자요. 밤 새도록 디씨에서 키보드 워리어 짓을 하며 놀다가 아침 해 뜨는 것을 보고서야 잠이 들곤 하죠. 아내가 제발 잠 좀 자래요. 하지만 어쩝니까 폐인들의 대장인걸요.
기자: 주로 무슨 갤러리에서 활동하세요?
김유식: 저요? 요즘 주식 갤러리와 도박 갤러리에 자주 가고 있어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대로 유갤(유흥업소 갤러리)랑 정사갤러리에도 자주 가죠. 한식갤러리랑 주류갤러리에도 가끔씩 가구요. 다른 갤러리에도 자주 가지만 이 정도에서 주로 활동하죠.
기자: 대장님의 얼굴이 유저들에 의해서 합성 소재거리로 사용되곤 하는데 자신의 얼굴이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는걸 보면 기분이 어떠세요?
김유식: 거부감 같은 건 없어요. 악의가 없고 다 재미있자고 하는 일인데요, 뭘. 잘 만들어놓은걸 보면 저도 보고 즐기는걸요. 기분 나쁘다, 싫다 이런 생각은 없어요.



기자: 디씨가 올해로 벌써 9년째를 맞이했는데요 디씨를 운영해 오면서 특별한 경영마인드가 있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김유식: 경영마인드라는 거창한 것까진 없습니다(웃음) 그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잘 해왔으니까요. 굳이 경영마인드라고 할 것 까진 없고요. 원칙 비슷한걸 말하자면 서비스는 이용자가 재미있어야 한다. 이용자의 요구는 수용할 수 있으면 다 해보자. 이 정도쯤 될 것 같습니다. 뭐 이런 것도 경영 마인드 축에 들 수 있겠죠?
기자: 알바(아르바이트)에 대한 유저들의 관심이 많습니다. 알바 얘기 좀 해 주세요.
김유식: 많은 분들이 알바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계시는데(웃음) 그분들 알바 아닙니다. 다들 정직원이고요. 그분들 맨날 인터넷서핑하고 게시글이나 읽으면서 돈 번다고 생각하시는데, 절대 아니에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세요. 맨날 유저들이 게시글 왜 지웠냐고 알바랑 싸우잖아요. 지켜보다 보면 불쌍해 죽겠어요. 다들 집에 가면 귀한 아들 딸들인데 말이에요.
기자: 이렇게 어느덧 IT업계에서 주목 받는 CEO가 되셨는데 혹시 특별히 욕심 내고 있는 자기노력이나 자기계발이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김유식: 돈에 관련된 일이 많아지면서 증권공부에 욕심을 내고 있어요. 그쪽 비즈니스도 있고 하니까요. 중국지사 때문에 중국어 공부에도 신경 쓰고 있고요. 중국어는 꼭 비즈니스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쓸 일이 무궁무진할 것 같아요. 그래서 편법이긴 하지만 아예 중국인 직원을 뽑아서 회사에서 중국어를 배울까 생각하기도 해요(웃음)
기자: 디씨를 운영해오고 이 정도로 성장시키면서 힘든 일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은데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김유식: 고난과 역경…… 뭐 그런 게 있으면 기사 쓰실 때 참 편할 텐데 특별히 그런 게 없단 말이에요.(웃음) 힘든 점이 있다면 역시 유저들과 싸우는 일이겠죠. 알바들 보세요. 맨날 싸우잖아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은 얼마 전 임종석씨 갤러리를 만들려고 할 때 ‘노빠’라고 심한 반대를 받았을 때죠. 전여옥씨 갤러리를 만드니까 이번엔 ‘한빠’라고 하고. 당황스러웠죠. 그래도 많이 배웠어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 조심스럽게 손학규 갤러리를 만들었더니 이젠 조용하지 않습니까?
기자: 디씨는 지금까지 충분히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으며 성장해 왔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한데요. 앞으로의 디씨에 대해서 듣고 싶어요.
김유식: 일단 언론에 보도된 대로 코스닥에 상장도 됐고 회사 내, 외부적으로도 많이 성장했어요. 일단 많은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서버문제는 앞으로는 없을 겁니다. 이제 속도만큼은 고객들이 원하는 만큼 맞출 수 있을 거에요. 현재 디씨 안에 갤러리가 600여 개 있는데 이것도 1,000개 정도까지 늘릴 생각입니다. 올해 안에 가능하겠지요. 그 후엔 누구나 갤러리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적용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디씨질을 즐길 수 있도록 할 겁니다. 간혹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이 게시판에 욕설을 도배하고 취지에 안 맞는 글을 올리곤 해서 실명제나 인증제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온 걸로 알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우리 디씨는 타겟이 19세 이상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전략은 따로 세워두고 있지 않아요. 우리 디씨는 기본적으로 성인 포털이고 또 그런 다양한 요구를 일일이 반영하다 보면 하향평준화가 되기 때문이죠. 아주 필요한 부분에만 부분적으로 실명인증을 시행할 생각이지만 기본적으로 비회원제라는 원칙은 고수하고 있습니다.
기자: 혹시 대장님이 성공모델로 잡는 업체나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김유식: 일단 전세계적으로 이런 모델 자체가 없어요. 우리가 선두주자죠. 이미 모델이 나왔으면 2등이라는 소리니까요.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IT업계에서 성공하신 다음의 이재웅씨나 넥슨의 김정주씨 정도면 “닮고 싶다, 저렇게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죠. 외국에서는 스티브 잡스 정도 뽑을 수 있겠네요.


기자: 대학생들에게 당부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김유식: 저는 어렸을 때 공부도 잘 안하고 당구장 오락실을 전전한 찌질이였어요.(웃음) 젊은 시절에도 주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캠퍼스의 낭만 같은 건 그다지 없었구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몰라요. 여러 고생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기자: 2004년에 인터뷰를 하셨을 땐 대학생들에게 영어, 해외여행, 하고 싶은 일 꼭 하기 이 세가지를 대학생들에게 당부하셨는데 혹시라도 더 추가하거나 수정하실 건 없으신가요?
김유식: 중국어를 추가하고 싶어요. 중국어까지 하게 되면 이제 행동반경이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까지 넓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면 미래를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질 겁니다.



글,사진_김주성 / 12기 학생기자
동국대학교 정보관리학과 04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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