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한 그릇 말아드립니다 – 민들레 국수집 서영남















2003년 개업한 민들레 국수집은 인천 화수동 언덕배기에 위치한 조그마한 식당이다. 요식업으로 정식 사업자 등록까지 한 식당이지만 특이하게도 음식값을 받지 않는다. 배고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민들레 국수집에서 정성이 듬뿍 담긴 공짜 밥을 먹을 수 있다. 식당 주인은 서영남 선생. 그는 전직 신부였다. 25년간의 교정 생활을 끝마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그는 아직도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떼는 집이 있는’ 가난한 동네 화수동을 찾았다.

“수도원은 아주 멋진 곳입니다. 제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죠. 혹시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수도사가 되고 싶습니다.” 수도생활을 추억하는 그의 얼굴은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당시 수도원 재정담당이었던 그는 수도원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달동네 공동체 계획을 추진한다. 하지만 그의 안건은 거부되기 일쑤였고, 수도회로부터 수도원으로 들어와 조용히 지내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수도원으로 돌아 가느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곁에 남느냐, 그는 두 가지 갈림길 앞에 섰다. 결국 그는 오랜 고심 끝에 퇴회를 결심한다. 25년 수도생활을 끝마쳤을 때 남은 건 책 몇 권과 옷 몇 벌이 전부였다.





민들레 국수집은 정부지원금을 받지 않는다. 그의 말 그대로 ‘인정머리 없는’ 규정 때문이다. 정부에서 돈을 받으면 만 65세 이상만 먹을 수 있는 경로식당이어야 하고 하루 한 끼에, 더구나 쌀의 양도 일인당 144그램 이하여야 한다. 노숙자나 생활력이 없는 장애인들은 쫓겨나기 일쑤다. “무료 급식소에선 하루 한끼 먹으려고 먼 길을 걸어와 허기져 지친 사람에게 호적등본과 주민등록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밥을 먹으려고 줄 서 있는 사람이 있는데도 배식시간이 끝나면 문을 닫아버리지요. 또 자기 구역 사람만 들여보내는 야박한 곳도 있습니다. 베푼다 하면서 주인 행세를 하고, 없는 사람들을 도와준다면서 종으로 부려먹습니다.” 그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괴롭힌다며 안타까워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그의 ‘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민들레 국수집을 열기 전에 요리 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손님들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공짜니까 아무 음식이나 막 줘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못 먹고, 제게 맛 없는 음식은 한번도 대접한적이 없습니다. 집에서는 일식 3찬을 원칙으로 하지만 민들레 국수집에선 일식 20찬이라도 아깝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손님들이 영양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최대한 잘 먹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이 요리학원 다닌 것을 예비신부가 결혼하기 전 요리학원에 다는 것으로 비유한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듯, 사랑하는 손님들을 위해…

그는 ‘동정’과 ‘사랑’을 철저히 구분한다. 누구나 남을 도우며 살고 싶어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을 돕는다는 게 동정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동정은 아무리 주고 싶어도 대부분 받기 싫어합니다. 용산역, 서울역에서 밥 타면서 고마워 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지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받고 싶어 하는 게 있는데 바로 ‘사랑’이란다. 동정과 사랑은 겉모습이 비슷하지만, 결과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동정은 사람을 죽이지만, 사랑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다.







가게 앞 길가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시시때때로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민들레 국수집 주인은 인터뷰 도중이라도 손님이 먼 발치에서라도 보일라치면,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얼른 뛰어가 자리를 안내한다. “제주 할머니 어서 오세요”, “용갑씨 밥 많이 먹어요”, “성락씨 살이 좀 빠졌네, 자주 좀 와요” 신기하게도 그는 손님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자기 존재감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점점 자신감을 잃고 좌절하고 절망하죠. 이들에겐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떤 손님 한 분이 다가와 선생에게 월미도에 가야 한다고 천원만 달라고 한다. 그는 오랜 망설임과 고민 끝에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천원 한 장을 꺼내준다. “소주 마시면 절대 안돼요” 라고 신신당부하지만 누가 봐도 천원은 차비가 아니라 소주 살 돈이었다. 왜 소주 사 마실 걸 알면서 돈을 줬느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세상으로부터 수없이 속임을 당하고 버림 받아왔을 사람인데, 나 마저 안 속아주면 인정머리 없잖아요” 그리고는 돌아서는 손님에게 다음에 또 와서 밥 먹고 가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물음에 그는 절망과 좌절에 옥죄여 있던 손님들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들레 국수집의 첫 손님이었던 사람은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 이제는 직장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역시 노숙자였던 한 손님은 민들레 국수집과의 인연 이후에 지금은 굴지의 중공업 회사의 정식사원이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는 손님들이 ‘사랑을 배우는’ 모습에 뿌듯하다. 자기 자신도 없는 살림이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내 것을 선뜻 내놓는다. 제주 할머니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반찬 값에 보태라며 쌈짓돈을 쥐어주시고, 어떤 손님은 며칠동안 고물을 주워 번 돈 만원을 전기요금 내는 데 보태라고 내어 놓기도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국수집 문 앞에 계란 한 판, 나물재료, 반찬 같은 것들이 놓여져 있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를 쳐다봐서는 가난이 극복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의 가진 것을 나눌 때만이 가난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나눔’이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벌써 민들레 국수집 3호점이 문을 열었다. 단순히 가게 하나가 늘어난 게 아니라 ‘사랑 나눔터’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민들레 국수집 3호점을 소개하는 선생의 목소리가 어린 아이처럼 들떠 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거냐는 질문에 그는 “허리가 고장 나면, 휠체어 타고서라도 해야지” 라며 씩 웃는다. 최근에 그는 병원에서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수도원 시절부터 했던 육체노동이 누적돼 결국 허리가 상한 것이다.

허리가 아프니 이제야 몸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알겠다는 그는 홀씨를 바람에 다 날려 보내고 밋밋한 줄기만 남은 민들레를 닮았다. 이듬해 봄이 오면 민들레 홀씨가 내린 땅엔 노란 민들레가 피어날 것이다. 노란 민들레 역시 사랑을 닮았다. 민들레 국수집을 통해 온 세상에 노란 민들레가 가득하길 기도해본다.

글,사진_윤진형 / 11기 학생기자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0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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