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농부 – 델리대학교 김도영 교수















뜨거운 햇살아래 델리대학 캠퍼스는 학생회장 선거 열기와 장애학우를 위한 시설확충 시위로 더욱 달아 올라 있었다. 그들을 피해 자리 잡은 교정의 한 켠에서 김도영 교수와 그의 한국학과 제자들을 만났다. 수업이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가자’는 교수의 제의에 모두들 학교로 달려 나와 주었다. 학생들은 연신 “Mr. Kim”을 부르며 해맑게 웃었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김도영 교수가 잠시 자리를 뜨자 못내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도영 교수는 학생들에게 교수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 있었다.




김도영 교수가 네루대에서 영문학 강사를 하고 있을 때 네루대학 측에서 한국학 대학원에 있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왔다. 당시 네루대학에는 한국학 학사 과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평생 해온 영문학을 떠나 한국학으로 적을 바꿔야 하는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그의 고민은 짧았다. 한국학 과정을 가진 대학이 거의 없는 인도에서 그가 한국인으로서 해야 할 결정은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델리대학에 한국학 과정이 생긴 해이기도 한 2001년, 김도영 교수는 델리대로 옮겨 왔다. 그가 속해진 과는 ‘일본 및 중국학과’. 한국학 과정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과의 명칭이 ‘동아시아 학과’로 바뀌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강의를 할 교실을 빌리는 일도 직접 발로 뛰며 해야 했고, 한국학을 알리기 위한 행사를 여는 일도 쉬이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한국이 낯선 인도 땅에서 일본과 중국의 텃세를 이기고 한국을 심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 학내에 한국어로 ‘동아시아학과’라고 쓰인 간판이 4개나 걸려 있고 매년 한국학 세미나와 ‘Korea week’ 라는 행사도 대대적으로 열린다. 그가 뿌린 씨의 결과였다.





델리 대학에서 매 년 11월 세 번째 주는 한국의 주이다. 주최는 한국학 과정에 있는 40여명의 학생들. 일주일 동안 한국 사진전, 전통극, 부채춤과 같은 전통 군무, 김치 파티 등을 연다. 이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단연 전통극. 작년에는 춘향전을 했다. 완벽한 극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에서 감독도 초빙했으며, 학생들은 현대어가 아닌 고어로 연기했단다. 올해 Korea week에 대한 학생들의 기대도 대단하다. 천 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하니, 그 준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김도영 교수는 그저 웃는다. “이제 곧 힘든 연습에 들어갈 겁니다. 기획할 일을 생각하니 까마득한데, 그래도 어쩌겠어요. 내 나라를 알리는 일인데… 막상 하면 힘든 줄도 몰라요. 너무 좋아서…”






인도는 어느새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세계 2위의 인구와 막대한 자원은 이미 인도를 강대국 대열에 올려 놓았다. 아직 기본 인프라도 잘 구축되지 않은 인도지만 발전의 가도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고, 역동적인 젊은이들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인도는 크게 성장할 나라입니다. 한국은 인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가 있어요. 아직 생소하고 낯설지 몰라도 이미 많은 기업들이 인도에서 기반을 튼튼히 해 놓은 것을 보면 결코 인도에의 도전이 이른 것은 아닙니다. 한국은 발전되었지만 침체되어 있고, 인도는 부족하지만 역동적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게 인도에서의 제 할 일이지요.”

김도영 교수는 아직 인도에 한국을 공부하는 인도인이 얼마 없음이 아쉽고, 한국에서 인도를 공부하는 한국인이 얼마 없음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제자들 몇이 그의 뜻을 받아 한국학 교수가 되려고 공부 중이란다. 그로서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현재 부인, 막내딸과 함께 인도에 살고 있다. 위의 두 딸은 한국에 있지만, 중3인 막내딸은 친구들 때문에 인도를 떠나기 싫은 눈치란다. 그도 오랜 인도 생활에 한국이 그리울 만도 한데, 아직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이 눈 앞에 보여 그럴 겨를 조차 없다며 웃는다. 많은 돈을 못 벌어도 자신이 아니면 인도에서 한국학을 할 사람이 없기에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태어서라도 하던 일을 할 것이라고 한다. 그는 현재 힌디어-한국어 교재와 사전을 편찬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당장 이루고픈 작은 목표는 델리 대학 내 한국학 대학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한국어는 경쟁력있는 언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학 과정이든, 선생이든 그 수요는 아주 부족한 상태죠.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인도에서 그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김도영 교수는 오늘도 묵묵히 ‘한국’이라는 씨를 뿌리고 있다. “I’m Korean” 이라고 하면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반가워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에서 이미 그 씨가 싹을 틔워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글,사진_서수현 / 11기 학생기자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 03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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