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로 눈을 뜨다,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인터뷰를 위해 연습실을 찾은 날, 마침 일본의 PE’Z라는 재즈밴드와 함께 공연준비에 한창이었다. 그의 앨범 타이틀곡 ‘바람’이 라이브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제덕은 가운데 의자에 앉아 팀원들과 각각의 연주파트를 조율해가며 차분하게 합주를 이끌었다. PE’Z 와는 처음 같이하는 연주여서일까. 연습실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맴돌았다. 연주가 끝나고 연습실 한 구석에 그와 마주 앉았다. 좁은 연습실은 악기소리와 일본말 그리고 담배연기로 가득했다.

부평공연 잘 봤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아 그때 오셨군요. 나중에 들으니까, 그때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아이들 손 잡고 많이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온 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동요도 좀 부를 걸 그랬어요.” 털털하게 웃는 그에게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듯한 친근함이 느껴진다.




그의 하모니카 연주엔 사물놀이의 흥겨움이 느껴진다. 실제로 그는 하모니카를 잡기 전에 사물놀이판에서 더 유명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세계 사물놀이겨루기 한마당’에 출전,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또 사물천둥이라는 김덕수 산하 사물놀이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물놀이로는 한계가 있었다. “정통 사물놀이는 서서 하는 선반이 정식이거든요. 그런데 저희들은 앞이 안 보이니까 앉아서 하는 연주 밖에 못했죠. 결국 다른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투츠 틸레망스의 하모니카 연주를 듣게 된다. “친구들과 술을 조금 마시고 택시를 탔는데, 라디오에서 하모니카 연주가 나오더군요. 소리가 참 좋았어요.” 뭔가 목표가 생긴 느낌이었다. 그저 취미 삼아 조금씩 불던 하모니카가 그의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던져준 것이다.


현재 전제덕은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하모니카 전문 연주자다. 작년 10월에 국내 최초로 하모니카 연주 음반을 냈던 그는 지난 3월엔 2005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성모, 박상민, 조규찬, 이적, BMK, 김정민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 음반 속 하모니카 연주는 대부분 전제덕의 몫이다.





지금의 화려함 뒤엔 감춰진 그림자도 있다. 하마터면 전제덕을 무대 위가 아닌 안마시술소에서 만날뻔한 것이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은 특별한 기술이 없는 한 대부분 안마사로 일하기 때문이다. 하모니카로 아름다운 선율을 뽑아내는 그의 손이 누군가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는 상상을 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짠해온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물놀이를 하는데, 운영자금이 부족해서 안마시술소에서 일을 했어요. 안마를 하면서도 언젠간 다시 음악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7개월 하고 그만뒀지만, 당시 같이 사물놀이를 하던 친구들 중에는 아직도 안마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서글픈 현실이죠.”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씨와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 누구냐는 질문에 김광민을 꼽는다. “수요예술무대에 공연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애가 있는데, 하모니카를 곧잘 분다’라며 저를 알렸죠. 그래서 다른 앨범에 세션으로 많이 참여할 수 있었어요. 광민이 형은 제가 하모니카에 집중하게 만들어준 사람이에요. 가능성이 있다고 격려해준 사람이기도 하죠.”






전제덕은 시각장애인이다. 동시에 하모니카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시각장애인 하모니카 연주자’로 부른다. 지금껏 그를 인터뷰한 대부분의 매체들도 하나같이 장애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하모니카 연주자로 그려냈다. 마치 시각장애인이란 꼬리표가 붙은 박제인형처럼. “사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다뤄지니까 조금 껄끄러운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상황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통과의례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론 ‘시각장애인 전제덕’이 아닌 ‘음악인 전제덕’으로 팬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요.”

앨범 타이틀 곡 ‘바람’을 비롯해서 전반적으로 그의 연주는 밝고 경쾌하다. “하모니카라는 게 어른들에겐 뽕짝, 아이들에겐 동요 정도를 연주하는 악기로 인식돼 있어요. 그나마 조금 발전해도 중간에 간주 정도 넣는 우울한 음색의 악기죠.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하모니카를 정식 연주 악기로 만들고 싶어요. 더 세련되고 밝게 말이죠.”
올해로 서른 둘, 여자친구가 있을 법도 하다. “그냥 여자친구야 많죠. 지금은 음악을 열심히 해야지 여자친구 둘 겨를이 없습니다.”라며 웃는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음반사 실장님이 우스갯소리로 거드신다. “전제덕씨, 강수정씨랑 스캔들 한번 만들어야죠.” 전제덕의 얼굴이 빨개지고 모두들 왁자지껄 웃음보를 터뜨린다. 이런 저런 얘기로 웃고 떠들다 보니 사람들로 북적이던 연습실은 어느새 텅 비어 있었다.

글_윤진형 / 11기 학생기자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00학번

사진_이기언 / 11기 학생기자
고려대학교 영상문화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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