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향한 렌즈, 사진작가 최.민.식.















최민식 선생은 1928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이 싫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용산에 있던 미술학원 야간부에 다니면서 낮에는 막노동, 넝마주이, 지게꾼으로 일했다. 미술공부를 더 하기 위해 일본으로 간 선생은 우연히 스타이컨의 <인간 가족>이라는 사진집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때부터 선생은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며 사람을 소재로 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선생의 연세가 올해로 78세다. 요즘도 이만 보 삼만 보씩 걸어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지 궁금했다. “예 그렇죠. 요즘도 걸어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제 사진의 대상은 시장, 공사장, 빈촌에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점점 거리에서 사진 찍기가 어려워 지고 있습니다. 초상권 문제도 있고, 여러 간섭이 있으니까요.”





인물다큐를 찍어 본 사람은 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찍는 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기자도 한때는 인물사진을 찍는다고 서울 황학동 시장에 갔다가 혼쭐이 난적이 있다. 오십 평생을 인물다큐만 해오신 선생은 오죽했으랴. 별의 별 일들이 많았다. 멱살잡이는 기본이고, 아주머니에게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욕설을 듣기도 했다. 젊은이나 노동자와의 몸싸움으로 옷이 찢어지고, 카메라가 부서지기도 했다.

온갖 폭력이 난무하던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도 선생의 카메라는 낮은 곳을 향해있었다. 경제발전이란 미명아래 모든 것이 아름답고 행복해야 했던 시절에 밑바닥 인생들의 비루한 삶이라니. 선생이 어떤 고초를 겪었을지 눈에 선했다. “많은 오해와 박해가 있었습니다. 동료 사진가와 선배들이 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군요. 후배들도 절 피하고. 간첩으로 몰려, 삼청교육대에 끌려갈 뻔 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진집이 판금 당해 작품활동을 할 수 없던 시절이었죠.”






이런 고통 가운데서도 선생은 한결같았다. “지금까지 「인간」이란 제목으로 12개의 사진집을 냈습니다. 얼마 안 있어 13집이 나올 예정입니다.” 선생의 목소리에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국외 다큐사진의 대가 유진 스미스, 워너비숍도 고작 1권이었다. 선생은 인물사진만으로 무려 12권이다.

12권의 사진집은 단순히 사진을 엮어 만든 책이 아니라, 선생의 삶 그 자체였다. 사진 속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은 선생의 모습이기도 했다. “단순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책임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예술은 스스로의 ‘체험’이 없으면 완성할 수 없습니다”, “예술은 돈 갖고 하는 게 아니죠. 배부르면 예술이 안됩니다. 가난해야 합니다.” “필름하고 현상약 살 돈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카메라는 있으니까요. 출사 나가서 점심값 없으면 굶으면 됐고, 차비 없으면 걸어 다니면 됐지요.” 마음 한 구석이 숙연해왔다. 예술이 무엇인지 스스로의 삶으로 증명해낸 선생의 예술론을 기자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많이 갖고 다니는 디지털 카메라에 대해 여쭈어봤다. “저도 최근에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성능이 아주 좋아요. 하지만 디지털로 사진을 조작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은 발로 찍어야 하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 편하게 하려고만 해요.” 내색하진 않으셨지만, 최근 대한민국사진대전 대상작이 합성된 사진으로 밝혀져 수상이 취소된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한 평생을 정직하게 필름과 씨름해온 선생에게 이런 한탕주의 사진조작이 과연 어떻게 비춰졌을까.





선생이 찍은 수 많은 사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선생은 한 걸음에「인간」9집을 가져오시더니, 97페이지를 펴신다. 한 아주머니가 등에 업힌 어린아이에게 ‘젖 동냥’을 해주는 사진이었다. “제 사진의 목적은 ‘더불어 다같이 잘 살자’ 입니다. 지금도 돌아보면 주위에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요. 제 사진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이웃을 돌아볼 마음이 생긴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책을 보실 때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두 개나 쓰시길래 그 눈으로 작품활동을 계속 하실 수 있을지 걱정됐다. “가까운 건 잘 안 보이는데, 다행히도 멀리 있는 건 잘 보입니다. 사진찍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걸을 수 있고 눈만 보이면,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사진을 해야죠.”

인터뷰 내내 손자뻘되는 내게 계속 존칭을 사용하시는 선생님. 인터뷰를 끝마치고 사진집에 한자 한자 정성 들여 사인을 해주신다. 무거운 사진집을 손수 봉지에 담으시고는 찢어질지 모른다며 여러 겹을 덧씌우신다. 괜찮다고 극구 만류했지만, 버스 정류장까지 나오셔서 부산역 가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타지에서 온 기자가 혹시 길이라도 잃어버릴 까봐 걱정이 되셨나 보다. 그때까지 손수 들고 계시던 사진집 보따리를 건네 주신다. 선생님 말 그대로 집 팔아서 만든, 돈 안 되는 사진들이었다. 예술은 가난해야 한다는 고집. 이런 고집 때문에 지금껏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진에 담아왔고, 선생님 스스로도 평생을 가난하게 사셨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묵묵히 걸어오신 길이다. 한 인간에 대한 존경이란 이런 것일까. 손에 쥔 사진집이 선생님의 삶만큼이나 묵직하게 느껴졌다.

글,사진_윤진형 / 11기 학생기자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0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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