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해일 지역에서 봉사활동 한 용감한 형제, 이예호&이지호




두 사람은 몇 달 전부터 장학금을 모으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인도 배낭여행 경비를 마련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왕복항공료 170만원과 여비 350만원을 마련해 비행기표 발권을 앞두고 출발만 기다리고 있던 지난해 12월 26일, 동남아시아 지진해일 소식이 들려 왔다. 여행에 앞서 준비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자꾸만 사고 지역이 인도행 비행기표와 오버랩 되었다. 결국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자원봉사 모집 광고를 듣는 순간 갈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 길로 형과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인도네시아 행을 설득했다. 인도여행을 반대했던 아버지는 이상할 정도로 쉽게 허락해 주셨다. “정말 난감 했죠” 처음 전화를 받은 이예호 씨는 황당했다. 인도여행을 오래 준비했고, 인도네시아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지진 해일이 일어난 지역이라니….
출발은 30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 봉사활동이지만 워낙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일이라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입해야 했다. 기아대책기구에서도 물품지원이 원활하지 못해. 휴지 같은 간단한 것에서부터 침낭과 작업에 필요한 도구까지 직접 챙겨야 했다. 급작스럽게 마음먹은 것과 같은 급작스런 출발이었다.
의사, 간호사 등으로 구성된 의료팀과 서빈프랜즈 NGO팀의 학생들, 간사, 기자로 이루어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 팀 21명은 먼저 싱가포르로 들어가서 현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였다.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는 민족적으로 이슬람 지역이고 반군이 지배하는 지역이라 외부인이 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와 종교적 갈등으로 독립운동을 하는 반군이 접근을 막고 있었고, 게다가 지진 해일로 도로도 유실되어 선발대가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형제는 반다아체로 갈 수 밖에 없는 필연이었던지 운좋게 비행기편을 구해 반다아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 메단을 거쳐 1일 새벽 반다아체에 도착한 두 형제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아찔함을 느껴야 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환영단도 아닌 여진과 시체 ??는 고약한 냄새였다. 게다가 치안이 제대로 되지 않아 폭동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반다’는 ‘평야’라는 뜻이다. 해일에 모두 쓸려가 평평해진 땅은 말 그대로 ‘반다’였다. 폐허를 지나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멈춰 있었고 구역질 나는 냄새와 연기만 가득했다.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절대 절명의 위기감까지 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체 처리와 무너진 건물 복구, 의료지원을 할 생각했으나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살아있는 사람을 먼저 살리기 위해서 전염병 위험과 장비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죽음의 도시 반다아체엔 마실 물도, 음식도, 전기도 없어 각국 구호 팀과 외신 취재진도 비스킷과 생수로 끼니를 때우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는 물이었다. 아체 강을 따라 올라온 해일과 시신들로 물이 심각하게 오염된 상황이었으나 당장 마실 물도 없는 사람들은 시체 썩은 강물을 임시로 정수해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궁금했던 건 형제끼리 장기간 여행도 일반적이지 않은데 사지에 함께 가다니, 이 형제들 사이엔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들도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살갑지 않던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반다아체에서의 경험이 서로를 바꿔주었다. 무엇보다도 형제라 서로의 외로움을 덜 수 있었다고.
팀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지호 씨는 힘든 내색을 쉽게 할 수 없었다. “언어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현지에서 눈 다래끼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세심하게 챙겨주는 형이 고마웠다.” 한편, 예호 씨는 “동생이 힘든 상황을 참아내는 모습을 보았다.”며 대견해 했다.


난민촌에는 고아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Child Care 활동을 했다. 아이들은 불안감과 현실적인 아픔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정신적 공항에 빠진 아이들도 많았는데 차츰 나아졌고 활기를 되찾아갔다. 한국팀의 구호 활동은 호응도 좋았고, 부족장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았다. 그래서 인지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긴급구호 팀 진료캠프’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이 활동은 팀이 철수하고도 현지인이 바통을 이어받아 지금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
지금 세계 많은 사람들은 반다아체를 비롯한 지진 해일 피해를 잊고 있다. 그러나 현지의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계속되는 여진과 현지상황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다른 구호 팀들이 전해 온다. 지호 씨는 “복구를 하려면 20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며, “그곳 사람들은 아예 생활 터전을 잃었다. 물리적인 복구와 상처 치료도 문제지만 희망을 잃은 마음의 상처로 인한 심리적인 어려움도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정부적인 지원이 다른 나라와 비교될 정도로 미흡하다는 게 가장 아쉬웠다고 한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이미 식상한 말이 된 세상에 아시아는 형제국가나 다름없다. 그 상처 받은 형제 국가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단발성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게 예호, 지호 ‘형제’가 ‘형제 국가’에서 배워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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