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노력파’ 아티스트 정재일



“처음에는 칭찬이라 기분이 좋았는데 거의 모든 매체가 그렇게 표현을 하니 이제는 그만 이야기했으면 하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걱정도 되고요.”
자신을 따라다니는 ‘천재’, ‘신동’ 등의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정재일은 담담히 이야기한다. 선입관에 사로잡혀 괜스레 긴장을 했구나. 기자는 그의 마지막 말에 속으로 무안해졌다. 그러고 보니 곧 스물넷이 되는 그에게 이제 ‘소년’보다는 ‘청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싶다.


1999년 6인조 밴드 ‘긱스’의 베이시스트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정재일. 당시 열여덟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뛰어난 음악성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그는 네 살 때 피아노를 만나며 음악을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작·편곡을 배웠고, 이듬해 퓨전 국악밴드 ‘푸리’에서 활동하며 영화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후 ‘긱스’의 모태인 ‘한상원·정원영 밴드’의 일원으로, 김동률 등 쟁쟁한 선배들의 음반 작업에 세션으로 활동하며 실력을 쌓았다.

작년 1월에는 1집 ‘눈물꽃’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선보이기 시작했고, 지난 3월에는 잘 만들어진 음악을 가려 상을 주자는 취지의 제1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음악성을 인정 받았다. 그의 음악적 성취는 타고난 재능 덕으로 보이지만 실은 피나는 노력과 연습이 뒤따른 결과라고 한다. ‘작곡을 위해 필요한 재료를 모은다.’는 생각으로 기타와 베이스를 비롯 유럽의 민속악기까지 십여 종의 악기를 자유롭게 다루게 되었다니 모두에게 인정받는 ‘멀티플레이어’도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1982년생인 정재일에게 1970년대 유신 치하의 노조탄압이란 낯선 이야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그가 노조탄압을 소재로 삼아 노래굿으로 만들어져 불법 테이프로 운동계에 유포되었던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의 1978년작 ‘공장의 불빛’ 복원작업을 해내었다.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니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제목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는 노래인 ‘아침이슬’의 작곡자인 김민기 대표는 2002년 겨울 복원작업을 할 사람을 찾던 중 주위의 추천으로 ‘여러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음악적 기량을 갖춘’ 멀티플레이어 정재일을 선택했다.

노랫말과 기타 하나로 만들어내는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김민기 대표의 음악을 기대했던 정재일은 처음 ‘공장의 불빛’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느낌의 음악에 놀랐어요.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느꼈고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몇 달씩 생각만 한 적도 있습니다.” 더구나 ‘김민기’라는 이름이 주는 부담감 또한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기본적인 뼈대가 만들어진 후 작업은 급속히 진행되었고, 결국 지난 10월 ‘공장의 불빛’은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30여 년 전 대선배가 그랬듯 그 역시 음악을 통해 시대를 노래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음악에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싶지는 않단다.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 남겨두고 싶다.”는 말을 덧붙이며.


음악 외에 영화, 무용, 연극 등을 즐기는 그는 특히 그리스와 발칸 영화 그리고 탄츠테아터(Tanztheater – 연극적 요소가 혼합된 유럽의 현대무용)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리스의 거장 테오 앙겔로플로스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얼마전 씨네큐브에서 열린 감독의 특별전에 다녀왔다며 영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모습이 오랜 벗처럼 익숙하고 편안했다.

영화 ‘그녀에게’의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를 장식한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현대 안무가인 피나 바우시(Pina Bousch)의 공연을 이야기하며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던 정재일.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예술은 누구에게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그의 바람은 많은 이들이 ‘예술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의 어머니는 고등학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를 권하였다. 또래와는 다른 삶의 길을 앞에 두고 갈등이나 두려움은 전혀 없었을까? 그는 자신 앞에 놓인 길이 뚜렷하게 보여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단다. 대학에 일찍 가고 싶어 고등학교 1학년 때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그는 이듬해 대학에 진학하려 했으나, 마침 ‘긱스’ 앨범이 나오게 되었단다. “활동하다보니 음악을 더 하고 싶었고, 점점 미루어져서 오늘까지 온거지요.”

학교나 일상적인 삶을 포기해야 했지만 ‘새롭고 좋은 나만의 삶’을 살 수 있어 좋다는 정재일은 “음악을 하면서 얻는 많은 것들” 덕분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고. “새로운 예술을 더 많이 쏟아내고 싶고, 공부를 많이 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그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런 정재일에게 음악은 불가결한 것일텐데 그가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미국에서 MBA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의외의 답변과 함께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라고 덧붙인다. “저는 대학교를 설립해서 ‘교육받은 인재’를 양성하고 싶어요. 사람이 제일 소중하니까.”


“다음 주에 강호정, 한충완 교수님과 베를린으로 연주여행을 떠나요.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페스티발에 나가 우리나라의 전자음악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그는 공연 준비로 분주했다. 그의 매니저는 오후에 연습 일정이 잡혀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아쉽지만 그를 보낼 준비를 해야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당분간은 2집 앨범 계획이 없단다. “일단은 지금 쌓여있는 일부터 해결한 후 새 앨범 작업을 시작하려고요. 물론 전혀 다른 스타일이 되겠죠.” 기회가 된다면 영화음악을 직접 프로듀싱해보고 싶다는 그는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 같은 분이 만드는 기상천외한 영화라면 음악 작업이 재밌을 것 같다.”고 했다. 궁극적으로는 생각만 갖고 있는 해외진출도 이루고 싶고, 유학을 떠나 공부도 많이 하고 싶다는 정재일은 “세계에서 공부해서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치고” 싶단다. 무엇보다도 그는 앞으로 살아가며 “음악 외에 아름다운 다른 많은 것들을 접하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새로워야 재밌고, 감동을 줄 수 있으니까요. 음악을 만드는 이도, 접하는 이도 감동이 필요해요.”
인터뷰 중 정재일은 이런 말을 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증이 없지 않지만 그는 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다. ‘천재소년’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그의 진정성과 진지함, 그리고 노력이 오늘의 그를 만들지 않았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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