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가 아닌 그냥 ‘피아니스트’로 빛나는 그녀




그녀를 만나기로 한 숙명여대 정문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어두워진 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두둑 내리기 시작했다. 다급히 걸려온 전화에서 그녀의 맑은 목소리가 들린다. 날씨가 궂으니 집으로 직접 오라며 친절하게 오는 길을 몇 번씩 설명해주는 모습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설명대로 찾아간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그랜드피아노와 벽면에 가득찬 악보들이, 이곳이 바로 피아니스트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듯했다. 역시 피아니스트는 다르다며 감탄을 내뱉자, “점자악보라 한 곡이 한 권으로 만들어져서 많아보이는 거에요.”라며 웃는 그녀의 모습이 참 밝다.



사회복지관에서 장애아동들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는 그녀는 피곤할텐데도 시종일관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어떤 계기로 피아노를 시작했냐는 질문에 그냥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는 대답이다. 본격적으로 입시준비를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라 조금 늦은 감이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포함한 각종 악기,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단지 장애인 특별전형이 적용되지 않는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능공부와 실기공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특히 그녀가 졸업한 맹인학교에서는 교과 과정 중 안마나 침술이 주를 차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입시에만 매진할 수 있었던 재수 시절이 편했다는 고백이다. 그녀는 숙명여대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같은 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음악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일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회복지관 봉사활동도 이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덕영트리오’ 활동과 일본의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다케시 가케하시와의 협연, 각종 콩쿠르 출전과 입상, 대통령상 수상 등에 빛나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유망한 피아니스트의 꿈이라기에는 소박한 감이 없지 않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변에서 유학을 가거나 계속 피아니스트의 길을 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그녀는 “아이들에게 반주를 하며 가르친다고 해도 그것 또한 ‘연주’ 아닌가요?”라며 자신의 소신을 또박또박 말했다. “꼭 큰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아야만 성공한 삶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된다고 해서 연주를 안한다는 생각도 없구요.”



또한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쏟아진 주변의 관심과 유명세가 그녀에겐 적지않은 부담인 듯 했다. “음악 실력 자체로 알려지는 것은 좋지만, 부수적인 이유로 알려지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습하고, 스스로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동안 여러 일간지나 지상파 방송에서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로 그녀를 다루곤 했다.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룬 성공스토리’라는 진부한 이야기로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지는 않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라는 꼬리표 없이도, 그녀는 그 자체로 빛나는 ‘피아니스트’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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