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유머의 절묘한 동거_명랑만화가 김진태


김진태는 분명 이상한 만화가다. 그의 만화는 그림이 빼어나게 멋진 것도 아니고, 대놓고 웃긴 스토리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광적인 수준이다. (그의 홈페이지 ‘꼬로닷컴(www.ggorro.com)’을 들어가보라.) 그의 마니아들은 만화 속 캐릭터를 실생활 주위 인물에 매치하기도 하고, 최근엔 캐릭터 코스프레 행사까지 열기도 했다.
이제 “매니아적 개그”로 불리던 그의 만화가 드디어 세상에 나온다. 20대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만화 <시민쾌걸>이 영화화 된다는 것이다. 그의 fan들에겐 반가울 수도, 혹은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 소식이다. 만화 속의 날카로운 유머가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겨질지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영화 작업이 시작되기에 앞서 그를 만나기로 했다. 오늘도 <시민쾌걸>을 보고 깔깔 웃으면서, 아마도 그는 ‘명랑ㆍ엽기ㆍ발랄’한 사람이거나, 반대로 내성적이고 특이한 사람일 거라고 지레 짐작을 했다. 하지만 비로소 전화를 통해 마주한 그는 결코 ‘엽기’적이지도, 내성적이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바쁜 마감시간에도 철저히 홈페이지 관리를 하고, 만화에 대한 강좌를 할 만큼, 만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프로’ 만화가였을 뿐이다

┃대중이 보는 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외대 학보에서 만평과 4단 만화를 그리면서부터 였죠. 프로 만화가로 데뷔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프로 만화가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학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거에요. 학보사는 1학년 초, 동아리 활동을 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미술기자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서 지원하게 된 겁니다. 그 때는 대학에 와서 미술을 못하는게 늘 아쉬웠던 터라 미술 관련 동아리에 들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직접적인 미술 관련 동아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학보사에 들어가 <외대만평>을 그리기 시작했죠. 학보사 기자생활을 하면서 그림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를 계속했습니다. 기획사나 홍보회사의 작화 담당이 되어 여러 책자의 삽화도 그렸고, (그 때 그린 책 중에 <직장인의 예절>은 꽤 알려진 책이죠.) 그림 그리는 친구들도 알게 되어 만화 공모전에 응모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해 잡지에 조금씩 연재를 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대학 재학 중에 이미 프로작가로 활동을 하게 되었죠. 대학생 때 그린 작품으로 <황대장 시리즈>와 를 비롯한 몇몇 순정물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는 평가를 받으셨나요?
“만화가들 대부분은 어린 시절 학교에서 그림으로 날리던 아이들이었을 겁니다. 제 경우도 학교에서는 잘 그리는 편에 속했죠. 상도 타고, 미술반 활동도 하고… 근데 만화는 그림 그리는 것 외에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아마 대부분 만화가들은 그림보다는 이것 저것 많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겁니다.”

┃올해로 프로 데뷔 16년 째 이군요. 그동안 작품의 스타일이 변화했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오래 할수록 그림이나 스토리가 점점 안정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초기의 작품들을 보면 어딘지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곳이 좀 있긴 하지만, 그 대신 어떤 힘이나, 반짝이는 재치 같은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더군요. 그래서 가끔은 그 시절의 센스와 재치를 요즘은 왜 보여주지 못하는 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합니다. 새 작품에 들어가거나, 스스로 슬럼프라고 생각하는 경우에 조금씩 변화를 주곤 합니다.”

┃그동안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반대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도 있을 것 같은데.
“초고대문명의 미스터리를 코믹하게 다루려고 했던 <보글보글>이란 작품이 가장 아쉽습니다. 나름대로는 꽤 많은 노력을 들인 작품인데 독자들의 반응이 없어서 3권에서 막을 내린 작품이거든요. 그래서 후반부의 내용이 엉성하게 되어 버렸죠. 그 작품을 할 때가 아이디어가 가장 왕성했던 시기라 요즘 가끔 봐도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체리체리 고고>도 잡지 폐간과 맞물려 끝나게 된 것도 아쉬웠고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작업했던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작품도 잡지가 폐간 되어 12회로 막을 내린 게 아쉬웠죠. <왕십리 종합병원>도 유쾌하게 작업했던 작품입니다. 그 만화가 연재되었던 잡지의 주 독자층인 중학생 독자들의 외면을 받아서 4권에서 종결되었지만 개인적인 즐거움을 갖고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김진태의 만화는 특이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컬트적이랄까. 그런 독특한 스타일의 확립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요?

“그런 스타일의 확립은 개인의 성장과정에서 접하게 된, 혹은 선호하는 취향이 점차적으로 쌓여진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장했던 80년대의 혼란스러웠던 경험들과 그 시절 즐겨 읽던 이상한 책들, 당시 불던 컬트 영화의 붐이 결합되어 제 스타일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독특하다고 평가받는 그런 유머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독자들이 제 만화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저로서는 손해가 더 큰거 아닐까요?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만화를 그리는게 목표인데 늘 어긋나는 것 같아서 걱정도 많이 합니다. 대표적인 만화로 ‘대마왕’이란 작품이 있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개그를 다뤘다가 주 독자층인 어린 독자들에게 처절하게 외면을 받았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그리는 ‘시민쾌걸’에서만큼은 대중적으로 접근하자는 생각으로 그리고 있답니다.”

┃소재를 얻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시는 게 있습니까.
“이것저것 많이 읽고 보고 듣고 느끼고 대화하는 일상의 모든 일이 개그의 소재를 얻기 위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방송이나 영화는 항상 즐겨 봅니다. 방송은 주로 뉴스와 다큐멘터리 등을 즐겨 봅니다. 역사나 시사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히스토리 채널도 많이 보구요. 일단 다양한 정보가 있어야 만화를 그리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배운다는 자세로 교양프로그램들을 봅니다.
영화는 좋아하긴 하지만 요즘은 예전처럼 열광적으로 볼 시간이 나지 않아서 우리말로 더빙한 영화들을 주로 봅니다. 사회적인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나 진지하게 주변의 문제를 다룬 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이죠. 좋아하는 감독들은 대부분 코미디 작가들인 것 같네요. 멜 브룩스, 우디 알렌, 존 랜디스의 팬입니다. 옛날 유머들은 나름대로 품위가 있죠.”

┃만화에서 특별히 추구하거나 좋아하는 소재, 형식이 있나요?
“서민들의 이야기, 불량배, 삼류건달, 권위주의적 가장과 세대차이로 갈등하는 자식들, 적대적인 관계에서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 불안정해 보이는 초인, 비밀조직, 마초들이 모여있는 감옥, 곤경에 처해 고생하는 미형의 캐릭터들, 머리까지 나빠 더욱 고생하는 미형의 캐릭터들, 초자연적인 미스터리, 50년대 풍의 공상과학…
대체로 이런 소재들을 즐겨 다뤄온 것 같군요.”

┃’김진태 만화’의 개그는 캐릭터의 힘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을 구상할 때 캐릭터부터 설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 와서 그렇게 느껴질 겁니다.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긴 하지만 제 경우는 그에 못지 않게 캐릭터에 힘을 기울이거든요. 특히 조연들의 캐릭터에 중점을 둡니다. 그런 이유로 제 만화는 주인공이 따로 없죠. 주인공이라고 설정을 했는데도 나중에 가면 다른 조연들이 더 활약을 하는…
옛날에 유행했던 ‘민중적인 세계관’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다고 할까요? (웃음)”

┃아무래도 최근 가장 사랑받는 만화가 <시민쾌걸>인 것 같습니다. <시민쾌걸>에서 추구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애초에 의도한 것은 사회 정의의 구현이었는데 5년 넘게 연재를 하다 보니 이젠 캐릭터 쇼가 되어버렸더군요. (웃음) 만들어 놓은 캐릭터들을 골고루 출연시키다 보니 자기들 스스로의 질서가 만들어져서 그 세계를 유지하는 일이 추구하는 주제가 되어버린 듯 합니다.
정리하자면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표현하고 있는게 또한 <시민쾌걸>의 모습이죠. “

┃<시민쾌걸> 캐릭터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어떤 상황에 넣어도 조화가 잘 되는 이상필이란 캐릭터도 좋고요, 마이더스의 애완동물인 펭돌이와 황가두, 깍귀…. 아,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캐릭터가 제일 좋습니다.”

┃<시민쾌걸>은 사회에 대한 가벼운 풍자를 담고 있는데요, 앞으로 본격적인 시사 만화를 그려볼 계획은 없으신가요?
“제가 관심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사람들의 일상 모습이지 정치풍자는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도 정치풍자만화를 즐겨 보는 편도 아니고요. 처음에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 외대 학보에서 만평이나 4단 만화를 할 때도, 시사ㆍ사회ㆍ정치 풍자보다는 마지막에 웃음을 주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아마 풍속화를 그리거나 언문소설을 쓰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의 작품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도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하루 하루가 마감을 지키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이고 마감을 마쳤다 해도 그 이후에는 독자 반응에 시달리는 직종이라 그런 것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제일 큽니다. 다른 만화가들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만화가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제게 명랑만화의 꿈을 키워주신 길창덕, 윤승운 선생님, 한국 만화계의 거장 고우영, 허영만 선생님,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많은 작가들… 다 훌륭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후배 작가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고, 독자들에게는 재미있는 만화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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