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더를 위한 행보_부드러운 진보논객, 홍세화와의 만남




바람이 매서운 2월 어느 날, 공덕동 한겨레 신문사 7층 편집실에서 홍세화를 만났다. 요즘 일이 많아서 바쁘다는 그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끊임없이 전화가 온다. 그럼에도 조용한 목소리에서 힘과 활기가 느껴진다. 그 나이 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진행형의 활력이다.
Q.1
한국사회의 극우와 수구세력, 보수에 대해 일침을 놓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국 사회가 현대 50 여 년 간 전근대적인 늪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A.1
분단의 질곡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청산을 제대로 못한 것도 분단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죠. 일제 친일세력이 군사독재세력으로 한국의 사회 축이 내려오면서 사회의 모든 공적 부분을 이 세력들이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민주공화국’이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인 공익 개념이 이 세력들에 의해 공유할 기회조차 없어진 거지요. 그로 인해 공익, 자유, 평등, 연대 등의 긍정적 가치가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데 일찍이 실패한 것입니다. 교육을 통한 개선, 자신의 정체성과 민주공화국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또한 진보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보수조차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게 된 거죠. 수구세력, 지역 패권주의, 패거리 문화 등이 마치 보수처럼, 즉 ‘가짜 보수’가 판을 치게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Q.2
보수와 가짜 보수의 차이는?

A.2
‘보수’라고 할 때에는 무엇을 보수하는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지금의 거대 언론은 공화국의 가치인 자유나 평등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기득권의 입장을 대변하고 보수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들은 보수를 단지 참칭하고 있을 뿐, 진정한 보수가 아니라고 봅니다. 진정한 보수의 대표적 인물이 김구 선생님 같은 분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진정한 보수 층을 몰아낸 세력이 바로 일제 부역 세력들과 그에서 이어진 군사 독재 세력 아닙니까. 또한 군사 독재 세력의 하위 수단에 불과했던 조선일보를 비롯한 거대 언론 세력들도 한 맥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익을 추구하고,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막는 세력을 어떻게 다양한 목소리 중 하나로 볼 수 있겠습니까. 이미 거대 언론사들은 보수라 볼 수 없는 철저한 사회축의 집단입니다. 권력과 자본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언론을 무기화하고 있고, 보수를 팔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3
진보주의자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한겨레신문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이유는?

A.3
그것은 긴장의 문제입니다. 현실과 지향점 사이의 긴장, 나와 한국 사회 대중의 의식 사이의 긴장…. 그 긴장의 역할을 누가 하느냐, 저는 한겨레 신문이라고 봅니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처럼 소수가 혁명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다수의 생각을 조금 바꾸는 것이 더 혁명적입니다. 소수가 아무리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사회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다수가 바뀌어야 합니다. 이렇게 봤을 때, 한겨레신문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가치를 가지고 있가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Q.4
보수학생연대나, 시대연대 등, 청년보수의 활동을 평가한다면?

A.4
청년보수가 진정한 의미의 보수로서, 지금까지의 보수를 참칭했던 것에 대한 성찰적 대안으로 나타난다면 참 고맙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청년 보수를 보면 그다지 동기가 순수해 보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보수라면 한국 사회에서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가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죠. 단순히 기득권 세력에 응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Q.5
70년대에는 우리나라 총선의 모습이 어떠했나요?

A.5
그때는 박정희 폭압 유신 체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선거권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총선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보다는 의석의 3분의 1은 거의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였죠. 그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열려있습니까. 제가 20대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한국에서 진보정당이 한국 땅에서 활동할 수 있을까?” 지금은 민노당과 사회당의 지지 세력도 크게 존재하고, 총선도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죠. 이렇게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비해 젊은 세력들이 친화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진보정치에 대한, 사회를 바꾸려는 치열성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Q.6
한국 정치와 사회를 바꾸는 주체인 현재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정치적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요?

A.6
한 마디로 말하면 탈정치화입니다. 요즘의 사회 헤게모니는 물신주의이고, 그로 인해 많은 가치관의 붕괴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경제 동물화’ 되어 버린, 돈만 있으면 능력 있다는 풍토 속에서 젊은 세대들이 탈정치화로 귀결된 것이죠. 젊은 세대들이 인간이나 사회에 대해 관심도, 고민도 없다면 그것은 배부른 돼지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면서 한총련과 같은 세력은 소수로 밀려나고, 그에 따라 보다 급진적이 되다보니 오히려 대중에게서 유리되고 있죠.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Q.7
신자유주의, 물신주의는 세계적인 추세가 아닌가요?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심각하다는 것입니까?

A.7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한국처럼 그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가령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교육을 통해서도 사회적 연대, 시민의식 등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부의 크기로 재단하는 풍토는 절대 용납하지 않죠.
요즘 ‘학교보다 학원이 더 낫다’라는 식의 사고가 자리 잡힌 사회는 가치관이 이미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 중심을 둔 교육을 통해 나아져야 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교육과정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교육의 중요성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첫 번째 과제는 냉전, 반공, 친미 사대, 안보 등의 의식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국가주의 교육에 대한 탈의식화죠. 두 번째는 경쟁체제를 연대체제로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학벌 타파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Q.8
대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A.8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깨닫는 게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요즘 한국 대학생들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한국에 대해 참담할 정도 무식합니다. 대학생, 엘리트 집단이라는 이유로 그걸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회문화적 소양을 쌓기 위해서 먼저 한국 현대사 공부를 하길 권합니다. 역사에 대한 공부는 지금까지 쌓아온 것에 대한 이해니까요. 두 번째는 대학 서열화를 통해 자기 규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규정이라는 게 참 무서운 일입니다. ‘내가 이 대학에 들어왔으니 한국 사회에서 이 정도의 위치다’라는 무의식. 결국 이는 자기 성숙의 모색을 대학입시에서 끝낸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자기 규정을 거부하고, 죽는 날까지 자기 완성의 기회를 열어두어라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홍세화와의 긴 대화를 끝내고 한겨레 신문사를 나왔다. 아직 겨울이라 바람은 차가운데도 등에 내리쬐는 햇볕만은 따뜻하다. 벌써 봄이 다가오는가. 계절의 흐름을 막을 수 없듯이 역사의 진보 역시, 어떠한 탄압이 있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홍세화, 그가 바라는 부드럽고, 정의로운, 평등한 사회는 아직 저 너머에 있지만,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천천히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임은 틀림없다. 그와의 인터뷰, 그의 생각을 하나로 담은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중 한 귀절로 홍세화의 뜨거운 목소리를 마친다.

– ‘김구’ 나의 소원 中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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