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연출자 극단 ‘오리사냥’ 최범순




“이 시대를 사는 20대 초, 중반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을 때, 역시 답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생각하게 된 거죠. 먼 옛날 이탈리아 젊은이들의 뻔한 사랑이야기가 오늘날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있다면 과연 그것이 어떤 면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작은 극장’ 소유주이자 ‘로미오와 줄리엣’ 연출인 극단 ‘오리사냥’ 최범순 대표의 작품 설명이다. 그는 새롭게 시도된 이 ‘뻔한 사랑이야기’가 성공하거나 실패할 확률이 50:50이라고 말했지만, 소극장의 객석은 차고 넘쳐 늦게 온 관객들은 무대 앞줄 바닥에 앉아 공연을 관람했다. 최 대표는 특별히 대학로 연극과의 차별이나 혁신을 의도한 것도 아닌데, 관객들로부터 대학로 연극과는 뭔가 다르다는 반응을 얻는 것 같다고 했다. 치장을 배제하고 관객과 직접 맞닥뜨리고자 한 비포장 연극제의 의도가 관객들에게 제대로 어필한 셈이다.

비포장 연극제는, 현란한 무대장치와 장식으로 배우와 관객과의 순수한 교류가 갈수록 배제되고, 지원금 없이는 연명이 불가능한 의존적인 대학로 연극 작업에 대한 대안으로 젊은 연출가, 교수, 극단 대표 등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었다.

“대학로 소극장의 비싼 대관료나 지원금에 연연하지 않고 자력으로 연극을 만들면 흥행이나 수입을 떠나서 진지한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의상이나 무대장치, 소품 등에 의존하기 보다는 배우와 관객과의 호흡과 교류에 치중해 연극 본연의 맛을 살리고 싶기도 했죠.”

2002년 이후 올해로 3회를 맞는 비포장 연극제는 “경이로운 테크놀로지 앞에 인간은 무력해진다. 하지만 그런 테크놀로지도 경이로운 인간 앞에 무력해 질 수 있다”는 문구를 모토로, 배우의 잠재력을 최고치로 이끌어 내는 도전연극, 최소한의 필요한 무대 요소만을 가지고 만드는 절제 연극, 빈 자리를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는 열린 연극을 표방하고 있다. 배우들의 춤과 움직임이 무대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 ‘로미오와 줄리엣’ 뿐만 아니라, 이번 연극제의 나머지 참가작품들인 ‘수전노'(박찬진 연출, 극단 서울연극앙상블),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임형수, 김도용 연출, 극단 여백), ‘외투'(홍인표 연출, 극단 원형무대) 등도 모두 이러한 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위 네 편의 참가작들은 2월 3일부터 한 달 동안 국립극장 별오름 극장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관객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극장에서 공연을 올림으로써 자신들이 하고 있는 작업의 현 위치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저 관객의 입장으로 편안하게 관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밌으면 재밌고 아니면 아닌 걸 너무 비평가처럼 보려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줄리엣이 잠들어 있는 무덤 속, 로미오는 독약을 마시고 뒤늦게 잠에서 깬 줄리엣은 로미오의 칼을 들어 자신의 배를 찌른다. 참 ‘뻔’하다. 연극이 끝나고 이어진 배우들의 커튼콜. 객석과 무대 사이가 채 1미터도 되지 않을 좁은 무대 위로 출연 배우들이 빽빽이 올라섰다. 마지막으로 줄리엣과 함께 인사를 마친 로미오가 바지춤에서 편지 한 장을 꺼냈다.

“며칠 전 이 작은 극장에 이상한(?) 편지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를 제가 지금 읽어 드리겠습니다.”

오늘로 애인과 300일을 맞아 여자친구와 이 연극을 보러 온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다시 한번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특별히 읽어주기를 부탁한 편지였다. 객석에 앉아 편지를 듣던 여자 친구는 놀라움과 감동으로 눈시울이 붉었고 옆에 앉아 두 손을 꼭 마주잡던 남자친구의 얼굴에도 사랑이 번졌다. 객석 전체가 감동과 설레임과 부러움으로 술렁였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먼 옛날 이탈리아의 이 뻔한 사랑이야기는 2004년 서울의 작은 소극장을 찾은 젊은이들에게 소중한 사랑의 추억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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