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사는 세상”을 꿈꾸며





서울대 법과대학 17동 317호, 바쁘게 뛰어오는 조 교수를 만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낮고 정중한 목소리다.
“학생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많다고 들었어요. ‘조각’ 교수님이라고 불리신다고.” 가벼운 질문으로 말문을 열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교수를 시작해서 학생들이 편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노력하고 있죠.” 겸손하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왜 학생들이 이 젊은 교수를 그토록 따르는지 조금은 납득이 간다. 그래서 오늘은 나 역시 학생의 입장으로 돌아가 법에 대한 얘기를 듣기로 했다. 일반인들이 낯설게 생각하는 법과 우리나라의 사법현실에 대한 얘기를 조 교수는 조목조목 상세하게 얘기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법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루하다거나, 무섭다거나. 법은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만든 장치인데, 왜 이렇게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헌법이 확립된 것은 해방 이후라 할 수 있는데, 그 이후 민주주의 체제가 발현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겠죠. 군사 독재, 권위주의 체제가 수 십 년간 지속되어 오면서 법은 시민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닌, 억압하고 구속하는 장치로 사용이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법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 동안의 한국 사회에서 법을 집행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맞습니다.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들어오는 시기부터 운용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사실 법에 대한 인식이 틀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엉터리로 한다면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문제점은 사회와 법이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과 의무도 느낍니다.
교수님의 전공분야가 형사법과 인권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왜 그것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20년 동안 일관되게 주장해오시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법의 이름 아래, 국가 폭력이 난무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법을 계속 공부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어요. 오히려 법학 전공 서적보다는 사회 과학 서적을 더 많이 읽었죠. 법 집행에 대한 회의도 있었기 때문에 고시 준비도 할 생각을 안 했죠. 지금의 상황이라면 진로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제 과 동기들도 법보다는 다른 쪽으로 진로를 모색하고 있었죠. 법과 법학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중에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이 발생했어요. 권력에 의해 고문치사 당한 대표적인 경우였습니다. 그 무렵, 평민의 입장에서 인도주의 형사법의 기초를 놓은, 60년대 미란다 원칙을 비롯한 형사절차 혁명을 주도한 미국의 얼 워런 연방 대법관의 판결을 알게 됐어요. 형사법을 통해 피고인과 피의자의 인권이 신장될 수 있음을 알고서 형사절차를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교수님께서 2001년 펴내신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에서 교수님께서 궁극적으로 말씀하시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국가주의 사회에서 수 십 년 간 지속되어 왔다는 것에 기인합니다. 그 속에서 국가의 공식 이데올로기나 논리에 반하는 사상이나 양심은 – 그것이 양심적 병역 거부든, 좌파사상이든 – 바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처벌만으로 풀어나가는 게 정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것이죠.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것은 민주주의란 다수의 지배라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으로 불안정한 논리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다수자의 지배에,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전체주의를 경험하면서 전자만이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국가 이념에 따라 다수자에 의해 국가 통치를 하면서도 소수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배려를 해줘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인권 실정이 매우 좋지 않던 시절이 있었는데, 현재는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많이 좋아졌죠. 앞으로도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역사의 흐름에 맞는 일이기도 하구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인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인권은 결국 생존의 권리와도 같고, 이것을 국가는 최대한 보장해줘야 합니다. 요즘은 인권에 대한 교육도 잘 이루어지고 있고, 학생들이 인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으니 더욱 개선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선배로서 요즘의 대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요즘의 대학은 마치 취업을 준비하는 기관으로 바뀐 것 같아요. 대학에서는 지성과 지식이 함께 교육되어야 합니다. 대학 시절처럼 자유로운 시절이 없습니다. 대학의 자치가 헌법에 인정되어 있는 것만큼 대학 시절에는 실험, 도전 정신을 가지고 창조적으로 활동했으면 합니다.

‘Something of everything, everything of something’이라는 말이 있죠. 요즘 학생들은 모든 분야에 대해서는 조금씩 알고 있지만, 한 분야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한계 설정은 나중에 하고, 하나에 대해서 끝없이 파고들 수 있는 것이 대학생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것이구요.”

Everything of something…. 연구실을 나오면서 되뇌어 보았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인권에 대하여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정말 어떤 하나에 대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것을 느꼈다. 아직 그가 꿈꾸는 ‘법 없이도 사는 세상’은 미완의 상태이지만, 이 하나의 과제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도 분명 변화할 것은 틀림없다.

글,사진_박은 / 9기 학생기자
서강대학교 수학과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