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엽기 강사 정효찬





“다음은 23번 작품, 김환기의 작품으로 정물입니다. 추정가 7800만원으로 1700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숨가쁠 정도로 빠른 목소리가 간단히 그림을 설명하면 눈부신 조명아래 사람들 사이에서 이상한 흥분이 발산된다.
여기저기 번호표가 올라갔다 내려가고, 한구석에 마련된 전화들도 끊임없이 울려댄다.
“106번 손님 5000만원, 5500만원 없으십니까?” 땅, “유찰입니다.” 이 숨가쁜 경매장에 안 어울려 보이는,
느린 발걸음과 어색한 웃음을 지닌 한 사람이 와서 인사한다. 2003년 한해 동안 한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정효찬 씨가
제자 이상현(한양대 경영97)군의 권유로 ‘서울옥션페어2003’에 참여한
것이다.

어쩌면 그는 작년 최고의 인터넷 스타였을지도 모른다. 분임토의식 수업을 효과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출제한 ‘특이한’ 문제는
출제의도와는 상관없이 인터넷의 엽기사이트를 떠돌았다. 결국 그는 사과문을 쓰고 강단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으나, 전화위복일까
이 파동으로 정 강사는 ‘신선한 사고’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한양대로부터 창의력 개발 수업
진행해 달라는 러브콜
을 받았다.

다양성과 독선이 모순되는 공간, 그의 시험문제가 유출된 인터넷을 정효찬 씨는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시험 문제가 공개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며 “학생들과의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를 출제했는데,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면서 크고 작은 오해가 생기게 된 것이 아직도 아쉽다”
고 심정을 밝혔다. 사건
이후 많은 학생들이 정 강사 지지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했던 것을 기억하며,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 계획이 없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의 관심은 너무 고맙지만, 한편으론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며,
신출내기 강사이자 미술인인 만큼 가르치기보다는 배워가는 길을 택하겠다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정 강사가 일방적인 강의보다 토론 방식의 수업을 선호하는 것도 그런 이유. 올해 한양대
교양학부의 사회, 문화영역 선택과목으로 개설된 이 2학점 짜리 강의는 학생들 폭발적인 관심으로, 수강신청이
시작 1분30초 만에 정원 100명이 마감되는 진기록
을 세웠다. 이에 따라 정 씨와 한양대는 긴급히 같은
수업 한 강좌를 더 열었지만 이것 역시 금새 정원이 다 찼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인 만큼, 그의 수업에는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거리미술이나 만화 같은 정 강사의 전공을 통해 창의성의 의미를
살펴보는 시간도 있었지만, 범위를 꼭 미술에 한정하지는 않았다.

정 강사는 자신의 역할은 창의성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뿐 길을 찾아가는 것은 학생들의 몫
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강의도 상호작용을 중시해 일방적인
강의는 5주로 끝냈고, 10주는 수강 학생들 모두가 조를 이뤄 돌아가며 자유로운 주제로 발표하고 토론을 했다. 학생들은
전통놀이, 화장실 낙서, 만화 등 다양한 소재를 택했고, 심지어 2주간 합숙하며 자작곡 연주를 준비한 팀도 있었다. 정씨는
“처음에는 질문을 던져도 조용하기만 한 강의실이 부담스러웠지만 점차 참여적이
되었다”
며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뿌듯하고 평가했다.

정 강사는 이번 학기에는 학생 스스로
자신의 시험 점수를 매기는 평가 방식을 도입,
다시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다. 작년,
유명했던 40개의 객관식과는 달리, 기말고사 문제는 단 한 줄 “수업과 나를 주제로 논술하라”.

그러나 정 강사는 문제가 아닌 평가 방식에서 허를 찔렀다. 학생들에게 희망
점수
-자기가 받고 싶은 점수, ▲예상 점수-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받을 것 같은 점수, ▲양심 점수-스스로 생각했을 때 이 정도는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점수
를 적어내도록 한 것. 이중 양심 점수를 채택했다는 정 강사는 한 학기 내내 시험문제에
대해 고민했다며 수업 자체가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점수도 자율적으로 매기는 게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한 강사의 독단적인 평가를 막기 위해 이메일로
신청한 사람들 중 12명을 뽑아 구성한 평가단이 학기 내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조별 발표를 채점하고, 다른
학생들은 평가단을 찾아내는 `마피아 게임’을 시행
하기도 했다.

정 강사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유쾌한
이노베이션’ 수업에도 1급 지체장애인인 박지호씨(전기전자공학과 4학년)가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던
조원들이 나중에는 지체 장애우의 다큐를 만드는 등 태도변화가 인상적
이었다고
한다.

또한 정 씨는 한양대 장애우들의 종강파티에 참여하기도 했고, 지난 2001년에는 해체가정 아동들을 위한 교육연극프로그램인
‘아이세상 영어연극교실’을 기획 운영하기도 했다. 즉흥적인
연극놀이를 통해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 받은 어린이들의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정 강사는
‘엽기’보다는 ‘바른 생활’이 어울리는 모습
이었다.

글_이원경 / 9기 학생기자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사진_이승희 / 9기 학생기자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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