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칠수 맞습니다. 거짓말하겠습니까?”


MBC 코미디 하우스 녹화장에서 만난 그는
평범한 30대 아저씨였다. 여느 개그맨들처럼 우습게 생기지도 않았고, 가벼운 농담을 하지도 않았다. 진지하고
예의 바르게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이 멀쩡한(?) 사람이 어떻게 데뷔했는지 궁금해졌다.


데뷔 전에 헬스클럽을 운영했다는 이력은 참 독특해요. 어떠한 계기로 방송과 인연을 맺게 되었죠?

고등학교 때부터 개그맨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 목소리를 열심히 흉내 냈어요. 얼굴이나 몸으로 웃기는 건 못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때 연습하던 사람 중 하나가 지금 제 이름의 배경이 된 배철수 씨에요. 체대로 진학해서
헬스클럽을 운영하다가 99년 7월 ‘MBC 슈퍼보이스 콘테스트’에 나가 대상을 탄 후,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죠.

방송 활동을 시작한 후, 그는 많은 사람의 성대모사를 하며 공중파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 때는 ‘배칠수’가 아닌 ‘이형민’이라는 본명으로 활동했다. 그저 성대모사를 하는 수많은 개그맨
중 한 사람이었던 그가 세상에 자신을 알린 것은 DJ 배철수를 감쪽같이 흉내내면서 이다.
라디오 목소리만으로는 ‘진짜 배철수’와 ‘가짜 배철수’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흉내내면서 ‘배칠수’라는
예명을 얻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지금의 ‘배칠수’를 만든 것은 인터넷 방송 ‘배칠수의 음악텐트’를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인터넷 방송이 가지고 있는 특성 덕분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낼 수 있었고, 그것은 네티즌의
폭발적인 인기와 지지를 얻었다. 이제는 배칠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통쾌하고 재치 있는 멘트’를 기대하며
그의 세상관을 들어보았다.

공중파 TV에서 많은 섭외가 들어왔을 텐데 왜 라디오나 인터넷 방송을 고집하시죠?

라디오나 인터넷 방송이 무언가를 전달하기에 더 좋다고 봐요. TV에 비해 호흡을 좀더 길게 가져갈 수 있거든요.
TV에서는 화면상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정지된 상태에서 한 가지 얘기를 길게 하게 되면 아무래도 시청자들이
지겨워하고, 주제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져요. 반면 라디오는 듣는 매체라 진지하게 한 주제에 대해 얘기할 수가
있죠. 물론 주제에 대한 제약도 TV보다 덜하구요. 자유로움도 있어요. 그런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출연 프로그램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시나요?

‘배칠수의 음악텐트(이하 음텐)’를 시작할 때부터 굳이 인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다른
프로그램에는 출연하지 않았어요. 뉴스 프로그램의 인터뷰 정도만 했죠.
지금도 특별히 고른다기 보다 제가 잘 할 수 있거나 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간혹 여러 가지 이유로 하고 싶지 않은 프로그램에 나가야 할 때가 있지만요.


배칠수씨가 성대모사 재주보다 더 주목 받는 건 시사적인 발언 때문인 것 같아요. 대본은 직접 작성하시나요?

‘음텐’에서는 PD와 작가가 모두 회의해서 원고를 작성해요. 그 외에 애드립(즉흥 대사)은 제가 하죠.
제 또래 사람이라면 요즘 사회에 대해서 누구나 여러 가지 생각을 갖고 있죠. 차이점이라면 저는 그걸 방송에서
얘기했을 뿐이구요. 제가 시사평론가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얘기를 한 건 없어요. 우리가 다 알 만한 얘기를
한 거지. 제가 아는 수준에서만 말을 했고, 깊이 다루지도 않았어요. 다만 남들이 다 아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좀더 심도있게 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렇다면 어떤 창을 통해 세상을 보세요?

제가 돈 주고 보는 유일한 신문은 ‘한겨레신문’이에요. 일단 읽기가 편하고, 제 성향과 비슷하기도 하니까요.
물론 ‘한겨레’라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보도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 중 제 성향에 가까운 쪽이 ‘한겨레’에요.
다른 중앙일간지가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떤 한 가지 면에서 저와 잘 맞지 않을 뿐이죠.


‘음텐’ 방송을 통해 들려주신 이야기를 보면 진보적인 성향이 느껴지는데?

저를 대단한 진보적인 인물로 보시는 건 착각이에요. 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나 F-15 전투기에 대한
제 이야기를 가지고 미국을 반대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미국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그런 사업을 반대하는 거에요. 물론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요.
얼마 전에 맥도날드 광고에 목소리 더빙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반미인 줄 알았는데,
왜 맥도날드 광고에 나왔냐고. 저는 다만 상식에서 벗어난 것을 풍자했을 뿐이죠.


정치인에 대한 성대모사와 풍자를 많이 하는데, 정치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감사하죠. 하나는 정치인이 없으면 나라가 안 돌아갈 테니까. 두 번째는 정치인들이 사람들에게 씹을거리를
마련해주니까요. 배설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고나 할까. 사람들이 무언가 불만을 표출할 구석을 찾고 있을 때,
그게 바로 정치인이 되는 것 같아요. (웃음)

녹화 전 분장을 하면서 얘기를 하던 그는 라디오 녹음을 위해 재빨리 움직였다.
현재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만 해도 10개가 넘어서 지난 주 갓 돌이 된 딸의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 녹음실로
달려가는 그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요즘 대학생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자유롭게 놀되, 똑바로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유흥 문화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게 대학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봐요.”
여러 사람의 성대모사를 기대하고 간 인터뷰에서 만난 건 방송인 ‘진짜 배칠수’였다.

글_박은 / 9기 학생기자
서강대학교 수학과

사진_이승희 / 9기 학생기자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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