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등록증을 찢어라’의 이마리오 감독

 
 
    앨빈 토플러는 미래 문명을 ‘Practopia’라고 지칭했다. ‘Practopia’는 개인 차이를 인정하고, 인종적 지역적, 종교적 소문화별 다양성을 억압하지 않고 포용하는 인간 존중의 문명을 말한다. 과연 대한민국 문명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이마리오 감독은 우리가 별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지문 날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지문은 개인의 가장 기초적인 생체정보입니다. 그래서 선진국 어디에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지문 날인은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당연한 것이 되었지요. 왜 지문 날인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당국은 지문 날인이 범인 검거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지만, 지문 날인 없는 선진국의 범인 검거율은 우리보다 오히려 높은 나라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지문 날인의 정당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요즘 속속 더 진보된 생체정보기술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지문 날인은 이런 점에서 인권 침해인식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개인생체정보가 침해되고 있는 상식적인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마리오 감독은 젊다. 그래서 그의 눈빛은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데 탁월하다.
그가 인권에 주목하게 된 것은 1988년 겨울, 우연히 광주 민주화 운동의 영상물을 보고 난 후였다. 광주의 영상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는 그날로 모든 것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어떤 사물을 보든 입체적으로 보고자 했고, 입체적 사고가 사물의 이면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열정으로 그는 대학을 박차고 나와, 세상의 눈이 되겠노라 선언하였다. 그리고 세상을 향한 그의 시선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 결실이 바로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그가 지문날인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충격적인 경험 때문이었다. 평소 그는 신분 증명을 위해 여권을 소지하고 다녔는데, 우연한 일로 경찰서에 갔다가 신분증으로 없다는 이유로 열손가락 지문 날인을 강요받았다. 그때 그는 인간의 존엄성이 거세되는 체험을 경험했다. 바로 이 경험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존중을 근간으로 한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제도이다. 과연 우리의 일상중 얼마나 많은 부분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악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대안 또한 민주주의다. 상식이 통하는 인간존중의 사회. 그래서 그의 시선은 날카롭지만, 그의 작품에는 따뜻한 희망이 올망졸망 녹아있다.
    그는 오는 5월 베트남으로 떠난다. 베트남 전쟁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또다른 상식을 찾기 위해서다. 베트남에서 만들어질 그의 다음 작품이 사뭇 궁금해진다.
한국 사회에서 독립영화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디정신으로 오늘을 살아가기엔 너무도 힘겨워 보인다. 무엇보다 작품을 보여줄 공간이 전혀 없다. 그러다 보니 작품을 만들기가 어려워진다. 방송국에도 보내보지만, 하나같이 방영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우리 사회가 무난한 보편을 선호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 속에서 당연한 상식은 점점 낯설게 변해간다.
소중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소중한 상식들은 빛바랜 모습으로 서글프게 버려져 있다.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있다는 건 그런 서글픈 현실에 맞추어 간다는 것일 게다. 슬픈 아메바처럼….
그래서 세상을 향해 자기 철학을 가지고 온몸으로 도전하고 실험하는 이마리오 감독이 더욱 돋보이는 것 아닐까.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