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교수 – 여성, 그리고 사회 부조리를 노래하는 여성시인

 
 
   
 
    그는 시와 비평을 통해 여성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다. 하지만 노 교수님의 노래는 시를 통해서만
표현되지 않는다. 사회 속의 부조리와 잔인함에 대해 신들린 무당과 같은 힘으로 소리치는 교수님의 실천력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또 하나의 노래가 되었다. ‘여성시 운동’에서 <밥꽃양> 검열반대, ‘안티조선’ 운동에 이르기까지
노 교수님의 노래는 지금도 우리 곁에 가까이 존재하고 있다.
     
 

   

노혜경 교수님은 1991년 <현대시사상>을 통해 문단에 등단했고, 1995년 첫 시집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를 펴냈다. 고교시절부터 시를 써오던 교수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한 사람의 아내가 될
때까지도 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등단 자체에 대해 별로 긍정적이지 않았고, 문학사에
교수님의 시가 별다른 기여를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 때문에 등단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 일쑤였다고. 그러나 주부로 살아가는 그 알 수 없는 억울함과 직장생활에서 겪은, 여성에게
맹목적 부담을 지우는 사회에 대한 인식을 계기로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내부에서 강렬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성에 대한 자의식이 내부에 생성되면서 시를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며 노혜경 교수님은 이렇게 당시를
회고한다.

“내적으로 여성 인식이 자라날 무렵, 이윤택 씨가 연출한 <죽음의 푸가>라는 연극을 봤어요. 10편의 시를 엮어 만든 시극이었죠. 거기서 김수경 씨의 <펑크 펑크 펑크>라는
시가 여러 명의 여자들의 대화로 연극화된 장면을 봤는데, 그 때 선배시인의 여성적 영감에 충격을 받았죠.”

하지만 이때까지도 교수님은 자신만의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시인으로 등단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들의 목소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문단의 현실을 직면한 뒤로는 스스로 직접 시인이 되어 발언권을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등단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남성 시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자리를 내주고 그 나머지를 여성에게 할당해 주는
방식으로 시의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고, 여성을 구색으로 생각하는 시단의 분위기를 묵과할 수 없었던 교수님은, 뜻을
같이 하는 김정란 교수님과 함께 ‘여성시 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시를 ‘여류시’ 라고 부르면서 문학적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 시단에 맞서기 위해 여성들이 온전한 여성적 자질로 쓴 시에 도발적으로 ‘여성시’ 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문단이 문학에 가해놓은 성차별에 저항해 갔다.

“엄밀한 문학적 잣대로만 가치가 평가되어야 할 시를 두고 남자가 썼나
여자가 썼나 내지는 어느 학교출신이 썼냐, 나와 친한 사람이 썼냐는 것이 알게 모르게 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왔어요.
문학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 자체도 사회제도와 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보고 문학과 사회가 둘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그래서 여성의 시가 가치있음을 주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노혜경 교수님가
던진 이 질문 한마디에서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지운 짐의 무게를 가늠케 해준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여성 혼자만의 몫으로
돌아가고 그것이 족쇄가 되기 때문에 출산을 기피하는 기혼자가 증가하는 최근의 현상을 꼬집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사회가
보장해야 할 복지 문제를 가정에게 떠넘기고, 이것이 결국 여성들의 일거리로 귀결된다는 것이 바로 교수님이 말하는 요지다.
여성들에게 사회의 짐을 떠안게 만드는 사회제도는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고 가정이 노인봉양을 꺼리게 하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사회제도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정치연대를 만들어서 여성성을 가진 사람을 지지해야 한다고
노교수님은 강조한다.

“내가 말하는 여성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예요. 여성성 그러니까 타자에 대한 배려와 미래에
대한 직관을 가진 사람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록 육체적으로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남성의
부패와 권력에 동화된 여성이라면 이미 여성성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고 봐야죠.”

이렇게 노혜경 교수님은 여성성과 자의식이 미래를 이끌어갈 ‘핵임’을 주장한다.
더불어 여성적 자질이 풍부한 남성 즉, 여성들은 이해하고 있는 여성적 직관력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한 나라를 이끌어갈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여성의 권한을 찾기 위해 정치연대를 통해 ‘여성의 상층부 진입장벽 낮추기’ 에 힘쓰며
여성적 자질이 인정받는 사회 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혜경 교수님은 아직까지 박사과정 논문을 끝마치지 못했다. 사회 부조리와 잔인함을 대하면 저절로
움직이는 어떤 여성적 자질의 발로가 ‘학자로서의 삶을 태만 하게 했다’는 것이 늦어지는 박사논문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이다.
다양한 사회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안티조선 운동’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교수님은 최근에는 유시민씨가 발족한 개혁적 국민정당 여성위원회 구성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쉽게 손대지 않는 궂은 일에 손이 먼저 간다’ 는 교수님의 천성은 세상의 부조리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지난 해 울산인권영화제에서 무겸열로 상영되기로 한 <밥꽃양>이 기본원칙을 깨고 검열대에 오르게 되자 노혜경
교수님은 소리 높여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인권영화제에서 검열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힘들게 노동영화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감독들과 바로 그 노동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보고 받은 충격과 그로 인해 생긴 의문들을 풀기 위해 <밥꽃양> 사이트에 올린 글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 같아요. 사회적 부조리의 희생자들이 보일 때면 도와주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는 교수님. 타자를
배려하는 교수님의 여성성과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있었기에 우리는 세상의 부조리를 알 수 있었으리라.

한국의 근대사 속에 흐르고 있는 여성성을 더듬어 간다는 노혜경 교수님의 논문은 그 대강의 흐름을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복잡하다. “대학 교수가 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인정 받는 지름길이죠. 만약 나에게 인정 욕구가 있었다면
이렇게 여러가지 일에 뛰어들기 보다 빨리 논문을 끝냈겠죠.” 사회로부터의 인정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는 노혜경 교수님. ‘여성시’라는 장르 형성에 기초를 닦은 시인 연구를 통해 여성시사(女性侍史)를
되짚어보겠다는 교수님의 논문이 빨리 소개되기를 세상 속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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