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환 – 탈북소년 박일환 새내기 되다

 


그가 북한을 떠난 건 1999년 1월이었다. 군홧발 소리가 들려오는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다시 몽골로, 드디어 2001년 3월 한국에 도착! 갓 스물이 된 ‘탈북소년’의 파란만장한 행보.
왜 그는 16세(당시 고등중학교 3학년)의 나이로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연고도 없는 타지를 떠돌아야
했을까?
  더구나 북한에서 아버지는 기상대 직원, 어머니는 의사인 가정에서
생활의 어려움 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밝은 청년이었다. 과연 무엇이 그렇게 절박했을까. 박일환이라는
사람, 무척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북한을 떠야 한다고 생각한 건 어렸을 적부터에요. 아버지가 약주를 하실 때면 ‘이 썩어 빠진 세상!’
하면서 한탄하시곤 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남한 출신이라는 이력 때문에 저희 집안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이
제한되어 있었어요. 17~18세가 되면 12년 동안 군생활을 해야 하구요. 결국 제 인생에 미래가 없는 거지요.
떠나오기 전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다가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릴까봐 두려웠는데 아버지는 눈물만
흘리시며 중국에 있는 지인들의 주소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위험을 염려해 그 주소를 적지 않고 모두 외우고 떠났어요.
결국 몇 글자를 틀리게 외워 찾지 못한 채 떠돌게 되고 고생 좀 했지요.”
박군은 마치 남 이야기를 하듯 웃으며 과거 기억을 떠올렸다. 그렇다고 북측의 가족들을, 떠나올 때 역전에 피어
있던 수많은 꽃제비들을 잊은 건 결코 아니다.
 
       
 
   
대개 탈북
청소년들은 검정고시를 많이 치르지만 박군은 학력평가를 거쳐 일반 고등학교에 편입했다. 2년간 학교를
등졌던 만큼 학교에서는 ‘형’ 뻘이지만 그의 별명은 ‘연변 총각’. 충북 괴산에 있는 형석 고등학교에서의
학창 시절은 그에게 너무나 쾌적한 재사회화 공간이었다.
 
    “이곳 아이들은 못하는 말이 없어요. 수업 분위기가 너무 자유스러워요. 사제지간인지
친구지간인지. 재미있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수업시간에 항상 배꼽 빠지게 웃곤 했어요. 더군다나 저희 반에
맹구 같은 애가 있는데 제가 연변 총각이다보니 완전 ‘봉숭아 학당’이었다니까요?”
북한의 중고등학교는 모두가 남녀공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학생들에게 망신당하지 않으려고 숙제도 꼬박꼬박 집에서
해오고 말이나 옷차림도 조심조심 한다고. 그런데 남한은 남녀공학이 적고, 있다고 하여도 남녀를 분반하기 때문에
남녀의 관계가 더 어색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학생기자와 박군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이다.

“충청도 친구들이 워낙 순박해서 그런지 저에게 참 잘 대해 주었어요. 선생님들도 항상 더 신경을 많이
써 주셨구요. 북한에서 공부를 잘하는 편이어서 쉽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만이었죠. 그래서
힘들기도 했는데 무작정 열심히 하다 보니 결국 성적이 올라갔어요. 18등으로 시작했던 것이 학기가 지나면서
1등으로 급상승 했죠.”
오자마자 한자 쪽지시험에서 1등을 한 마음에, 매일 3시간씩 자면서 교과서를 달달 외웠다. 북한에서 ‘올 수’를
받던 그였다. 첫 학기 성적은 18등! 암기 위주의 북한 교육과 응용력이 많이 요구되는 남한의 교육의 차이였을까.
그는 바로 공부법을 바꿨고 학원에도 다니며 교과를 폭넓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재외국민 특별전형에서 면접을
치를 때도 ‘대학입시’보다 훨씬 어려운 ‘시험’을 거쳐온 그였기에 희망과 패기가 넘쳤었다.

 
       
 
   
이제는
‘탈북소년’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어엿한 법대생이 되었다. 입시가 끝나고 이제 한시름 놓은 박군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건 바로 여행. “친구들이랑 여행을 한 번 가보고 싶구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어요.”
 
    국제 변호사가 꿈인 그가 벌써부터 공부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벌써
간파한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출세지향적이라는 것을, 그래서 각박해진 사회라는 것을.
“아녜요. 오히려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라고 생각하지요. 경쟁사회이기 때문에
발전이 있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스스로 어렵게 택한 길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있어요.”
우문현답. 지금의 그가 있는 건 몽골에 머물 때 만나 양부모의 연을 맺기도 한 미국인 선교사 노부부 덕분이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재미동포 국제변호사. 그때 알았다. 정서가 다르면 상대방의 절실한 부분을 이해하기 힘들고,
또 도와주기도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중국 대륙에 떠도는 탈북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국제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누구보다 분단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고, 탈북자들의 실상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래서 국제 변호사가
될 적임자의 자질을 갖춘 박군. 그에겐 남은 건, 이제 열심히 공부하는 일 뿐이다. 확실한 꿈이 있기에, 수많은
미소를 담고 있는 그의 얼굴은 무척 빛나 보인다.
 
       
   

글, 사진_김정하 / 8기 학생기자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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