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수업

누구나 하나쯤은 있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수업이. 그것은 나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잡고 흔든 수업일 수도 있고, 지나친 과제와 발표로 코피를 쏟았던 경험이거나, 혹은 교수님에게 반해 헤어나오지 못한 시간일 수도 있다. 미국 뉴욕과 보스턴에서 만난 대학생들에게 최고의 수업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30여 명의 학생들이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당신 인생의 ‘최고의 수업’은 무엇인가요? (이미지 출처 : 영화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중)

들어보자, 당신 인생의 ‘최고의 수업’은 무엇인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업을 들을 것 같은, 우리나라에서의 분위기와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만 같은 외국의 대학교 수업. 이들에게도 물론 수업의 난이도와 목표, 여러 상황 등에 따라 매우 좋았던, 혹은 그렇지 않았던 수업이 있을 것이다. 미국 대학생들의 ‘인생 수업’은 무엇일까.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수업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소상히 들어보자.

Case 1. “나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수업이 제 인생 최고의 수업이에요.”
– Alice Lee(다트머스 대학Dartmouth College 심리학 전공)

흰 블라우스를 입은 앨리스가 긴 머리를 드리우며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후 현재 미국 뉴욕의 한 보험 회사에 재직 중이라는 앨리스. 심리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수업에서 느낀 교훈을 통해 삶의 태도에 많은 변화를 불러온, 또한 이를 통해 자신의 진로까지 결정하게 만들어 준 ‘Social Psychology’ 수업을 자신의 ‘인생 수업’으로 꼽았다.

“제 인생 최고의 수업은 Wheatley 교수님의 ‘Social Psychology’란 수업이에요. 전 경제학과 심리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었는데, Wheatley 교수님의 ‘사회 심리학’을 듣고 경제학을 과감히 뒤로한 채 심리학에 몰두하게 됐죠. 보통 심리학이라고 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거나 인간 내면에 초점을 맞추기 쉽잖아요. 그런데 이 수업을 통해 한 사람이 속한 사회, 환경, 상황이 심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됐죠.”

심리학은 Social Science, 즉 ‘과학’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자료와 근거로 연구 결과를 증명해야 한다. 사회 심리학도 마찬가지로, 사회와 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요인을 파악하고 실험을 통해 그 요인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리적으로 증명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 그녀는 이 수업에서 이를 증명하는, 매우 의미있는 실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 심리학의 실험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가 짐바르도 교수의 ‘감옥 실험’이 있어요. 영화 <엑스페리먼트>(2010)로 영화화했죠. 쉽게 말해 실험 참가자들이 죄수와 간수의 역할놀이를 하던 실험인데요. 실험 참가자들이 역할에 과도하게 몰입해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해요. 폭력이 발생하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실험은 중단됐죠. 이 실험은 이후 심리학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어요. 상황, 역할, 조건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하는지 증명한 실험이었거든요.”

영화 <엑스페리먼트>의 장면으로 죄수 역을 맡은 사람들이 바닥에 엎드리려 한다.(왼쪽) 간수역을 맡은 사람이 죄수역을 맡은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한다. (오른쪽) 영화 <엑스페리먼트> 중

그저 학사과정의 일환으로 여겼던 이 수업은 그녀의 태도의 변화를 일으켰다. 실수를 하거나 잘못하면 스스로를 꾸짖는 편이었던 앨리스, 그녀는 이 수업을 통해 ‘그럴만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스스로의 시야를 넓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아무리 이해가 안 되는 선택 앞에서도 ‘다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다시 생각해 보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고.

“이 수업 이후에 심리학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Wheatley 교수님 밑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저의 제안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그래서 무보수로 교수님 아래서 연구를 도와드리고, 끊임없이 제 의사를 전달했더니 결국 허락해 주셨어요. 교수님 아래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죠. 결국, 교수님의 추천으로 졸업 논문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발표할 수 있게 되었어요. 더 놀라운 건 스탠포드에서 ‘감옥 실험’의 주인공 짐바르도 교수님과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거예요! Wheatley 교수님의 지도와 도움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겠죠.”

Alice가 졸업 논문 발표 날 지도 교수인 Wheatley와 함께 졸업장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졸업 논문 발표 날, 지도 교수인 Wheatley와 함께!

보험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앨리스. 자신의 업무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심리학을 공부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되는 듯 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에너지는 그 일의 성과뿐 아니라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요. 물론 1학년 때는 심리학을 전공해서 당장 취직이 되지 않을 것 같단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정말 열심히 하다 보니 예상치도 못한 행운도 만나게 됐죠. 전 심리학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현재 대학원 진학을 꿈꾸고 있어요. 심리학을 공부해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통해서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그래서 더 깊게 공부하고 싶어요.”

Alice가 스탠포드의 짐바르도 교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감옥 실험’의 주인공 짐바르도 교수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Case 2. “디자이너로서 세상을 보는 눈을 트이게 해준 수업들이 기억에 남아요. “
– 유예원 (RISD 그래픽 디자인 전공)

흰 티셔츠를 입은 유예원 씨가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RISD의 1학년이면 필수 수강해야 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3D Studio’ 수업을 본인의 인생 최고의 수업이라 밝은 유예원 씨. 모두가 들어야 하는 이 수업이 그녀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이 수업을 통해 디자이너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하는 과학적 원리를 체득했다고 말한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빨대 20개, 압정, 실을 주시더니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높은 탑’을 만들라고 하시더라고요. 당황했죠. 버벅대며 빨대를 자르고, 갖다 붙이기만을 반복했어요. 어느 정도 완성됐다 싶으면 무너지기 일쑤였죠. 그런데 정말 많은 실패를 하다 보면 ‘가장 이상적인 형태’에 직감적으로 도달하게 돼요. 결국 무너지지도 않고,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높은 탑을 완성시키죠. “어떻게 이 재료로 가장 높은 탑을 만드나?”라는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이론으로 배우는 과학적인 원리를 직접 경험하는 거죠.
이 외에 ‘7층 높이에서 날계란을 던졌을 때, 계란이 깨지지 않는 박스 만들기’, ‘콜라가 들어있는 병을 올려도 무너지지 않는 다리 만들기’와 같은 미션이 주어져요. 1주일 내로 완성해야 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거든요. 근데 결국 다 해내요. 할 때는 미칠 것 같지만 결국 해냈을 때의 성취감, 원리를 깨달았을 때의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죠.”

U모형 조형 안에 깨진 날계란이 들어있다. ‘7층 높이의 건물에서 날계란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박스를 만들어라!’ 불가능해 보이는 이 미션을 결국 해내는 과정에서 그녀는 많은 것을 느꼈다. (이미지 출처: RISD Graphic Design 홈페이지)

그녀는 이 외에도 다소 좁던 그녀의 시야를 시원하게 뚫어준, 그녀의 사고를 뒤흔들었다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수업을 더 꼽았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공부를 했고, 한국의 입시 미술의 테두리 안에 있었어요. ‘이렇게 해야 해.’ 혹은 ‘이건 안 돼.’와 같이 ‘정답’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였죠. 물론 결과적으로 그림을 잘 그리게 됐지만, 정답을 바라는 사고는 버리지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Graphic Design 전공의 필수 과목인 ‘Form and Communication’이란 수업을 들었죠. 어느 날 교수님이 다짜고짜 재활용 박스와 검정과 흰색 물감 그리고 쓰레기 봉지를 주시더라고요. ‘운송 수단’을 주제로 패션 전시를 열겠다고 하셨죠. 이 재료로 패션을 만드는 것도 모자라 운송 수단을 만들라니요. 보통 운송 수단이라고 하면 헬리콥터나 버스와 같은 매체를 떠올리기 쉽잖아요. 그런데 어떤 친구는 동화 ‘라푼젤’에서 모티브를 따서 머리카락이 운송수단이라고 해석한 친구도 있었고요. 어떤 친구는 USB가 정보를 운송하는 수단이라 해서 이를 모티브로 작업한 친구도 있었죠.”

노란 티를 입은 RISD학교의 친구들이 자신의 작업을 하고 있다.
RISD 그래픽 디자인과 학생들의 모습 (출처: RISD Graphic Design 홈페이지)

“이 수업이 제게 남긴 건 “미술엔 정답이 없다.”라는 것이에요. 한국에서 배운 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죠. 물론 각 교육 방식의 장단점은 있어요. 그러나 이 수업을 통해 제가 다소 경직됐다는 걸 알게 됐고, 시야가 정말 넓어졌어요. 디자이너는 기존의 생각을 깨고 다른 길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RISD의 여러 프로그램이 제 사고의 틀을 다시 잡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무일(無逸) 정신.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있게 한다는 중국 주나라의 『서경』에서 비롯한 사상이다. 편안함을 경계하고, 불편함이 주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 살아가는 것이 결국 상처받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뒤흔든 수업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쳐서일 수도 있고, 과도한 과제 요구로 몸과 마음이 지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든 간에 ‘최고’라는 수식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 나를 바꾸고, 삶의 결정적 순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절대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나를 바꾸는 것은 불편함과 상처를 감내해야 한다. 자신 앞에 놓인 불편함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수업이 ‘최고’의 수업인가를 결정지을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최고의 수업’은 무엇인가?

그들의 수업을 만나는 방법

교육의 도시 보스턴엔 세계적인 대학이 많다. 하버드와 MIT가 대표적이다. 세계적인 석학이 모인 이 자리의 강의는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에 ‘무엇이 옳은가’라는 화두를 던진 정치 철학가 마이클 샌델 교수의 <JUSTICE>가 있다. 18년간 하버드 대학생들이 꼽은 명강의로 전 세계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인 대학 수업을 이제 집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하버드와 MIT를 비롯한 세계적인 대학이 대중을 대상으로 강의를 배포하고 있다. ‘오픈코스웨어(OpenCourseWare,OCW)’를 통해 미처 채우지 못한 지적 갈증을 해소해보자. 대체로 무료이지만 소정의 수업료를 내는 코스도 있다. 웬만한 대학 강의처럼 과제와 시험을 포함함은 물론 교수와 질의응답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수업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면 이곳에서 ‘내 인생 최고의 수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코세라(http://www.coursera.org)
스텐퍼드, 시카고, 예일, 도쿄대, KAIST 등 세계 100여 개의 대학이 참여한 세계 최대의 지식 공유 플랫폼.

에덱스(http://www.edxonline.org)
2012년 MIT와 HARVARD가 개설한 비영리 기관으로 MIT, 하버드, 코넬, 베이징 대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유다시티(http://www.udacity.com)
주로 컴퓨터 공학 중심 수업으로 제휴 대학 없이 스탠퍼드 출신 교수들이 강의를 배포한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emoticon

스티커 댓글

스티커를 사용해서 댓글을 남겨보세요!

댓글달기
  • 감동
  • 부들부들
  • 눈물
  • 두근두근
  • 좋아요
  • 사랑해요
  • 멋짐
  • 하하
  • 신남
  • 행복
  • 멘붕
  • 헉
  • 시무룩
  • 하이파이브
  • 응원
  • 쓰담쓰담
  • 뽀뽀
  • 박수
  • 선물하기
  • 고마워
  • 귀여워
  • 셀카
  • 저요
  • 열공
  • 쓰러짐
  • 씻기
  • 팩

소챌 스토리 더보기

대학생 집콕러를 위한 월간 소비

편지가게 글월,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게 언제예요?

비전공자를 위한 교양서

비전공자를 위한 전공자의 교양서 큐레이션

일본어 번역가 강민하 | 마음까지 전하는 번역

VEGAN ESSAY 의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입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식생활 실전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먹고 있습니다

VEGAN ESSAY 입문편ㅣ스물 한 살의 비건인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2012년, 빙의하고 싶은 영화 속 주인공2